'잇따른 공연계 성추문에 환멸·증오' 외면하는 관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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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공연계 성추문에 환멸·증오' 외면하는 관객들
  • 황영화 기자
  • 승인 2018.02.2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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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00명이 몰린 이날 집회에서는 '성범죄자는 관객 박수를 받을 자격이 없다' '공연계는 성범죄자를 퇴출하라' 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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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황영화 기자] 이명행·이윤택·오태석·윤호진·한명구 등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으로 공연계에서 성추문 가해자들이 잇따라 폭로되고 있다. 이런가운데 침체를 거듭하고 있는 공연계에서 관객들이 이탈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26일 공연계에 따르면, 성추문에 휩쓸린 가해자들이 배우나 스태프로 참여하는 공연들에 대한 보이콧 조짐이 일고 있다. 연극·뮤지컬 관객이 중심이 된 '연극·뮤지컬관객 #위드유(WithYou)' 측은 전날 오후 공연계 성지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미투를 응원하는 집회를 열었다.

성추문 피해자들에게 공감하고 함께 하겠다는 뜻을 담은 '위드유'(#With You·당신과 함께 하겠다) 운동이 관객들에게도 퍼진 것이다. 지난 19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일부 관객들이 뜻을 모으면서 시작됐다.

약 500명(경찰추산 300명)이 몰린 이날 집회에서는 '성범죄자는 관객 박수를 받을 자격이 없다' '공연계는 성범죄자를 퇴출하라' '성범죄자 무대 위 출연은 관객이 거부한다' 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또한 가해자에 대한 정당한 처벌과 동시에 피해자를 보호하고 공연계에서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요구했다.

이와 함께 공연계에서는 가해자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성폭행에 연루된 인물들이 몸을 담았거나 그와 관련된 배우 또는 스태프가 참여하고 있는 공연 제작사 등이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있다.
 
한 예로 이윤택이 이끈 연희단거리패에 몸 담았던 배우 이승비가 이 전 감독의 성폭력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자신의 남자 친구에 대한 언급한 이후 네티즌들은 이 배우를 찾는데 혈안이 돼 있다. 당시 남자친구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일부 관객은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연희단거리패 연출 겸 배우 오동식이 극단 내부를 폭로한 글에서 언급한 선배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난도 나오고 있다. 해당 선배가 스태프로 추정된 이후, 역시 당사자에 대해 입장을 밝히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증권가 정보지를 중심으로 성추문 관련자 이름이 언급되다가 지난 24일 먼저 사과문을 발표한 윤호진 에이콤 대표가 연출한 뮤지컬 '명성황후' 역시 코너에 몰렸다.

오는 6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막 예정인데, 에이콤은 우선 공연은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28일 예정이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다룬 뮤지컬 '웬즈데이' 제작발표회는 무기한 연기됐다.

문제는 공연계 전체에 대한 관객들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성추문 관련자들이 연루되지 않은 공연들도 특별한 이유 없이 예매자들이 취소하고 있는 조짐이 일고 있다. 상반기 기대작 중 한 작품의 관계자는 "이미 예매한 관객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공연을 취소했다"면서 "최근 미투와 관련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공연계 보이콧 조짐의 중심에는 20~30대 여성 관객이 있다. 이들은 공연계에서 큰 손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 최대 티켓예매 사이트 인터파크(대표 박진영)가 2017년 인터파크에서 공연 티켓을 구매한 164만822명을 분석한 결과 여성 예매자 중 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34.3%로 가장 높았다. 20대 여성 관객은 33.7%였다. 전체 공연 예매자 가운데 여성과 남성 관객의 비율으 각각 71%, 29%다.

이들 여성 관객들의 공연계 충성도는 이미 유명하다. 최근 사태가 더 충격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이미 소문이 파다했던 방송계, 영화계 성추문의 미투 운동보다 그간 고결하게 여겨지던 공연 예술계라 그 민낯을 목격한 관객들의 충격은 더 클 것"이라고 봤다.

페미니즘 연극제를 준비 중인 나희경 페미씨어터 대표는 "이번 '연극·뮤지컬관객 #위드유(WithYou)' 집회 주축이 된 '디시인사이드 연극뮤지갤러리' 유저 관객들은 대부분이 여성이고 한 작품을 여러번 볼 만큼 높은 충성도를 가진 소비자"라면서 "정말 통장 걱정할 만큼 애정을 가지고 작품을 관람해 왔는데, 어떤 관람은 가해자들에게 권력을 부여해 왔던 것이다. 이런 소름끼치는 상황이 관객들에게도 상처가 된 것"이라고 짚었다.

'페미니스트 연극인 연대' 차원에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는 나 대표는 "예술가니까 '망나니 짓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이 주축인 문화 예술계 전반에 대한 환멸과 증오도 느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관객들이 공연을 계속 봐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우선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최근의 보이콧 조짐 등이 일고 있는 것으로 봤다.

나 대표는 "처음부터 가해자와 함께하지 말았어야할 프로덕션에 전하는 관객들의 경고, 긍정적인 제작환경을 촉구하는 유의미한 행동이라 생각한다"면서 "이런 보이콧은 당연한 것이고 오히려 연극인들이 관객들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공연계 미투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연극배우협회 이사장인 최일화 역시 성추행 의혹에 휩싸였다. 국공립예술극장 대표 물망에 있던 연극과 교수 역시 성추문 의혹에 휩싸인 상태로, 그가 임명될 경우 미투 운동으로 폭로하겠다는 예고도 떠돌고 있다. 당사자는 이미 극장장 자리에서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SW

hy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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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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