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주의보] 평범한 기자에게 찾아온 고통스런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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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주의보] 평범한 기자에게 찾아온 고통스런 딜레마
  • 황영화 기자
  • 승인 2018.03.2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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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문학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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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황영화 기자] "이번에 뽑힌 인턴들은 정규직 전환형 인턴이잖아. 열심히 일하고 별다른 사고를 치지 않으면 우리 식구로 들어올 가능성이 높은 녀석들이라고. 최악의 취업 빙하기가 계속되는 데다 다른 곳에 취업이 보장된 것도 아닌데, 어느 정도 보장된 자리를 걸고 감히 회사에 불리한 행동을 나서서 할 수 있을까?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 게 인간사야."(130쪽)

정진영 문화일보 기자가 '침묵주의보'를 냈다. 일상에서 은밀하게 작동하는 잔악한 권력의 시스템과 폭력성에 대해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 소설이다.

작가는 '박대혁'이라는 일간지 기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언론사의 생리와 이해관계를 흥미진진한 서사 속에서 풀어냈다.

그가 겪는 사건을 통해 우리 일상에 만연한 권력형 부패와 비리를 폭로하는 한편, 자의와 다르게 동조자 혹은 하수인이 될 수밖에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심리에 주목한다.

대혁과 같이 항상 '을'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이다.

정의롭지 못한 윗선 비리와 이에 엮이게 된 힘없는 '을'이 겪게 되는 내적 갈등은 물론, 현실에서 언론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점, 정직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언론인 역할 등 폭넓은 이야기를 담았다.

"기자로 밥벌이를 시작했을 때 놀랐던 사실 중 하나는, 동료 선후배 기자들의 출신교가 서울 소재 상위 몇 개 대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몇몇 매체는 특정 대학 이하 출신자는 기자로 선발하지 않는다는 소문까지 이 바닥에서 공공연한 비밀로 돌고 있을 정도다. 기사로 학벌 타파를 외치면서 취재원을 학벌로 판단하고, 고고하게 권위주위를 비판하지만 철저한 상명하복 구조에 따라 움직이며, 열정페이를 고발하지만 인턴들에게 당연히 열정페이를 지급하는 곳이 이 바닥이다. 언론계는 내가 아는 가장 심각한 모순투성이 집단이다."(28쪽)

'메이저 언론사의 말석'으로 통하는 '매일한국'의 디지털뉴스부에서 일하는 기자 박대혁은 국장의 노골적인 학연 편애와 불합리한 정기인사도 별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말단 기자다.

문화부의 대중문화 취재팀에서 디지털뉴스부로 발령이 난 후 회사 홈페이지 트래픽 증가를 위해 온갖 낚시기사들을 쏟아내느라 자괴감에 젖어 있다. 그런 그에게 국장이 '인턴기자 교육'을 맡으라는 지시를 내린다.

남자 셋과 여자 셋인 인턴기자들 중 대혁은 김수연이라는 기자의 고충을 들어주고 조언을 주면서 친분을 쌓게 된다. 알고 보니 수연은 서울 소재 명문대 출신의 동료 인턴기자들과 달리 지방 사립대 출신으로 나이 또한 스물아홉이나 되었다.

대혁은 나이보다 실력이 우선이라는, 스스로가 생각해봐도 위로되지 않을 위로를 건네며 그녀를 독려하지만, 안쓰러운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행히 수연은 동료들 사이에서 발군의 기량을 선보이며 '매일한국' 내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어느 날, 대혁은 국장에게 이끌려 점심을 먹으러 간 음식점에서 수연을 비롯한 인턴기자들과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인턴기자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는 사이, 대혁과 국장이 가까운 자리에 앉게 됐다. 하지만 대혁과 달리 인턴기자들을 등지고 앉은 국장은 그들이 있는 줄도 모르고, 수연의 학벌과 나이를 문제 삼으며 정규직 기자 선발에서 떨어트릴 것을 대혁에게 암시한다.

그날 밤, 기자의 당직을 대신 맡았던 수연은 유서를 회사의 온라인기사로 유포하고 5층에서 투신하고 만다. 수연의 죽음 이후 직장생활에 소극적이었던 대혁은 내면에서 큰 갈등을 겪게 된다.

무엇보다 그를 더욱 괴롭히는 건 타인의 이중적 행동이 아니라 위선적인 자신의 태도다. "선배는 수연이 언니를 위해 자리를 걸고 회사에 문제를 제기하실 수 있으세요?"라는 질문에 대혁은 아무런 답을 하지 못한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의 틀을 벗어난다. 회사 측 입장에서 사건을 무마하려는 인물들에게는 '악인'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유약함이 있고, 수연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선인'이라 할 수 없는 영악함이 엿보인다.

작가는 현실인지 허구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생생한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끝까지 몰고 간다. 문학수첩 SW

hy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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