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과 변명의 인질극] 사할린 한인, 기밀자료로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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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과 변명의 인질극] 사할린 한인, 기밀자료로 분석했다
  • 황영화 기자
  • 승인 2018.06.04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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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한인 문제의 실체적 진실을 다룬 '책임과 변명의 인질극'. 사진 / 채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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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황영화 기자"종전 초기 소련 중앙정부는 유럽과 사할린 등 새로운 점령지에서 '적성 민족의 제거'를 통한 '지배 안정의 추구'라는 대원칙 아래 민간인의 본국 송환을 추진했다. 이러한 배경 하에 일본 국적자들이 본토로 돌아간 것이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사할린 한인에 대해서는 일단 송환을 보류했다. 소련 정부 안에서도 주로 군부는 사할린 한인을 '북한'으로 송환하려고 했으나, 사할린 현지의 민정국은 이들을 최대한 늦게까지 붙잡아두고자 했다."

'책임과 변명의 인질극'은 사할린 한인 문제의 실체적 진실을 다룬 연구서다. 종전 직후부터 한국전쟁 전후 시기까지 소련 중앙정부와 사할린 지방당국 사이에 오간 내부 기밀문서를 분석했다.

이연식 일본소피아대 외국인 초빙연구원·아르고인문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 방일권 한국외국어대 중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오일환 아르고인문사회연구소 대표, 아르고인문사회연구소 직원들이 함께 썼다.

번역서, 르포르타주, 구술자료집, 소설이 아니다. 한·러·일 3국에서 새로 발굴한 공문서 자료를 기초로 한 실증적인 연구성과다.

저자들은 기밀 해제된 옛 소련 정부의 내부자료를 통해 소련이 굳이 한인들을 붙잡아 두려고 한 이유를 추적했다. 지금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진 노동력 부족설이나 점령지의 생산력 유지설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소련 중앙정부와 군부는 처음부터 한인을 억류할 생각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가설을 뒤엎는 해석이다.

"1946년 말 '미소 간의 민간인 송환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무려 30만명이나 되는 일본인들을 그 후 몇 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송환한 상태다.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까지 감수해가며 2만5000명 남짓한 한인들을 애써 붙잡아두려고 한 이유로 이러한 가설들은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또 "노동력 부족을 메우거나 점령지의 생산력을 유지하고자 했다면, 강제로 끌려가 탄광이나 군수시설 등지에서 단순노동에 종사한 한인을 억류할 것이 아니다"며 "설령 '인권문제'가 제기되어도 어떻게든 미소 간의 민간인 송환협정을 거부함으로써 수적으로 10배가 넘는 일본인, 그것도 고급기술과 각종 산업정보를 독점하고 있던 일본인 하이테크 인력을 어떻게든 붙잡아 두고자 했을 것"이라고 본다.

한인의 억류가 고착화된 요인들에도 주목한다. 소련 중앙정부·군부·사할린 지방 민정국의 견해 차이, 일본인의 송환과 러시아인의 사할린 이주 상황, 북한의 개입과 한인의 한반도 송환 논의, 한국전쟁의 발발 등 대내외적 요인이 향후 '한인의 억류'를 기정사실화하는 과정에 미친 영향을 짚어냈다.

이 연구원은 "사할린은 약 1세기에 걸쳐 켜켜이 쌓인 식민지배, 남북분단과 동서냉전, 민족이산의 상흔들이 곳곳에 지독하게도 배어있는 또 다른 한국근현대사의 현장이었다"며 "그곳은 한국, 북한, 일본, 러시아, 미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물려 있는 복잡한 외연을 지닌 곳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식민지배, 강제동원, 세계냉전, 남북대결, 민족이산이라는 거의 1세기 동안 우리를 그토록 짓눌러온 굵직한 현안들이 한데 얽혀 기구한 수많은 사연을 빚어낸 곳이라는 한국의 내셔널 내러티브 역시 그 가운데 한줄기를 차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과연 우리는 이 문제를 얼마나 냉정하게 상대화하며 바라볼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까지 사할린한인 문제와 관련해 놓치고 있는 정말 중요한 고리는 무엇일까. 이 책을 내기로 결정한 이후로 필자들이 번번이 서로 얼굴을 붉혀가며 토론하고 고민했던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다." SW

hy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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