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산가옥 문화재 지정', 능사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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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산가옥 문화재 지정', 능사가 될 수 없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9.04.03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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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대표적인 적산가옥인 동래별장. 사진 /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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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적산가옥은 적이 남긴 유산, 즉 일제가 남긴 유산입니다. 지금 19개의 적산가옥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친일을 청산하겠다면서 일제 유물을 문화재로 등록한다는 게 말이 안됩니다. 고칠 생각 없으십니까?"
 
지난달 2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박양우 문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조경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박양우 후보자에게 한 질문이다. 이 질문은 '목포 근대역사 문화공간 살리기'를 표방했지만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손혜원 무소속 의원을 겨냥한 질문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정치적인 의도와는 별개로 '적산가옥을 어떻게 보아야하는가?'라는 화두를 제시하고 '문화재 지정이 과연 옳은 방향인가?'라는 정책적인 물음을 던졌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적산'은 앞에서 말한대로 '적의 재산'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광복 이후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기업과 토지, 주택 등 각종 부동산과 동산류를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다. 이승만 정부 당시에는 적산을 헐값에 넘기는 과정에서 비리와 부패의 온상이 되기도 했고 결국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 일본이 적산에 대한 청구권을 완전히 포기한다는 내용이 명시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 적산가옥은 다양한 방면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근대식 건물, 옛날의 추억을 더듬는 건물로 인식되면서 게스트하우스, 카페 등으로 활용되기도 하고 전북 군산의 '히로쓰 가옥' 같은 경우는 영화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면서 관광상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일본의 건물을 꼭 보존해야하느냐는 목소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친일 작곡가들이 작곡한 교가를 바꾸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일제의 잔재를 청산해야하는 상황에서 일제가 남긴 건물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독립운동의 성지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일본 건물을 지키는데 세금을 들이는 건 무슨 이유인가?'라고 묻고 있다.
 
이에 보존을 주장하는 이들은 "일제 수탈도 우리의 역사이기 때문에 교훈적인 차원에서 남겨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독일이 나치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 역사의 교훈으로 삼는 것과 같은 의미로 보는 것이다. 또 근대 건축의 역사가 담긴 건물이자 공간이기에 무조건 철거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입장도 제기된다. 
 
한 문화계 관계자는 "근대 가옥이라고 할 수 있는게 현재로서는 적산가옥 외에는 없다. 적산가옥은 일제 시대에 상가가 형성됐던 곳이고 해방 후에도 지속적으로 사용됐다. 일본 건물이라는 문제가 있지만 역사를 생각하면 함부로 없앨 수 없다. 딜레마인 건 사실이다"라고 전했다.
 
문제는 적산가옥을 문화재로 등록시키는 것이 '문화재'의 취지에 맞는가라는 것이다. 일단 문화재보호법을 살펴보면 '문화재'란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 민족적 또는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큰 자료 및 유산'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것만 놓고보면 적산가옥도 근대의 자료이자 유산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에 충분히 문화재 등록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그로 인해 현재 19개의 적산가옥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됐고 지난 3월 경북 경주시는 감포항 주변에 있는 적산가옥 등 근대문화유산을 문화재로 등록해 신해양시대를 여는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일제 시대의 건물을 문화재로 지정한다는 것은 '문화재'의 본 의미를 훼손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당시 인사청문회에서 조경태 의원은 초등학교 사회 개념 사전을 거론하며 "문화재는 선조들이 남긴 유산이다.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재즈 잘하는 사람, 팝송 잘하는 사람을 인간문화재로 안 보잖나. 외부에서 흘러들어 온 것은 보존하는 가치로만 봐야지 그것을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참고로 조경태 의원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적산가옥 중 70%가 지난해에 지정된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반면 안민석 국회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은 "적산가옥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이다. 전 정권과 무관하지 않아보인다"라는 생각을 밝힌 바 있다.
 
현재로서는 '적산가옥을 없애기 어렵다면 '역사보존물'로 놔두고 문화재 지정까지는 하지 말라'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 적산가옥을 카페나 음식점으로 바꾸기보다는 온전히 가옥으로 남기고 일제의 건물이라는 점을 상기해 일제의 역사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야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적산가옥의 문제는 어느 개인의 욕심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각계각층의 의견을 통해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만들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욕심보다 '공공성'이 먼저가 되어야한다. 이 곳을 정말로 역사를 보존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면 말이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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