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십여년이 지나도' 장애인의 아픔은 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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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십여년이 지나도' 장애인의 아픔은 가시지 않았다
  • 최성모 기자
  • 승인 2019.04.2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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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등을 요구하며 행진에 참여한 장애인. 사진 / 임동현 기자    
 
[시사주간=최성모 기자] 십여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야겠다. 기자가 처음으로 '취재'라는 것을 한 곳은 서울시청 앞. 장애인들의 시위 현장이었다. 당시 장애인들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격렬하게 외치던 때였다.
 
장애인 리프트 사고로 장애인이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일이 벌어졌고 장애인 엘리베이터도 드문 상황이었다. 저상버스는 그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장애인들의 시위가 계속 됐고, 기자가 처음 취재를 했던 시위에서는 경찰과의 몸싸움까지 발생했다. 경찰의 완력에 장애인들이 울부짖었다. '우리는 집을 나설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한다'는 외침이 이어졌다.
 
다음날, 인터넷을 본 기자는 당혹스러움을 느껴야했다. 전날의 치열했던 시위 소식이 전해지지 않은 것도 그랬지만 포털을 장식한 것은 모 일간지가 한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인터뷰였다.
 
그는 인터뷰에서 "서울시의 장애인 엘리베이터가 늘어나고 있다"며 장애인의 이동권이 보장되어 있다는 말을 했다. '그렇다면 내가 어제 본 것은 뭐지? 왜 이렇게 말이 다른거야? 왜 장애인의 어려움은 알려지지 않았지?' 기자의 당혹함이었다. 그 때 느낀 그 감정이 지금까지 기자를 하게 된 이유가 됐다. 
 
기자가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기억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항상 이 날 장애인들의 집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날을 '장애인의 날'이 아닌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만들고 싶어한다. 장애인을 우대하고 기억하는 날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직 많은 장애인들은 장애인의 날에도 고통을 느끼고 있다.
 
얼핏 보면 장애인의 삶이 나아졌다고 볼 수 있다. 장애인 엘리베이터가 지하철 역마다 있고 저상버스가 움직인다. 공공시설에 장애인 주차장, 장애인석 등이 갖춰지고 장애 학생들도 학업을 지속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방송, 화면해설 영화가 상영되고 장애인을 위한 각종 복지 혜택도 마련하고 있다. 여기에 오는 7월에는 그동안 장애인들의 비판을 받아온 '장애등급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여전히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다. 동네에 해가 된다며 특수학교 설립을 막고, 기업들은 벌금을 감수하면서까지 장애인을 채용하려 하지 않는다. 여전히 장애인을 비아냥거리는 말이 오가고 장애인을 보면 피하는 일이 다반사다. 이 때문에 장애인이 취업을 하고 사회에 진출해도 결국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내가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다 회사를 떠나는 일도 벌어진다.
 
중증장애인의 경우 활동보조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아직도 24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밤중에 집에 불이 나도 피하지 못하고 결국 죽어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장애인 시설이 들어서지만 시설은 오히려 장애인들에겐 '감옥'이다. 인권침해, 성폭력, 모욕 등이 벌어지고 여전히 시설에서 벌어진 일들은 숨겨져 있다. 
 
재난이 와도 장애인들은 피할 수 없다. 수어통역이나 화면해설이 이루어지지 않고 장애인을 위한 대피 메뉴얼도 없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게 장애인이다.
 
기자가 장애인 집회를 처음 취재했던 때부터 지금까지 십여년이 지났지만 그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물론 많은 노력이 있었던 것은 인정하지만 여전히 미진하다. 그나마 바뀐 것도 장애인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지난 19일 장애인들은 다시 거리로 나왔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가짜 폐지', '서비스 지원 조작 종합조사표 규탄' 등이 이들이 낸 목소리였다. 등급제를 폐지한다고 해놓고 이에 대한 예산 편성이 없고 장애인의 입장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작작 좀 해라', '정부가 혜택을 준다고 해도 반대만 하느냐'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왜 이들이 이렇게 목소리를 내는 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 혜택들이 와닿지 않을 정도로 삶이 힘들었던 것이다. 
 
올해도 4월 20일이 왔다. 장애인을 위한 각종 행사가 열리고 기업들은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혜택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관심은 4월 20일 하루만으로 끝나면 안 된다.
 
물론 많은 것을 한번에 바꿀 수는 없지만 바꾸려는 노력이 없다면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이 내용으로 '기자수첩'을 써야할 지도 모른다. 바뀐 것에 만족하기보다는 '아무것도 안 바뀌었다'는 생각으로 장애인 문제를 해결해야한다. '함께 사는 세상'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SW
 
csm@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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