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웰페어 투게더 캠페인⑪] 우리가 ‘동정 복지’를 달라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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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웰페어 투게더 캠페인⑪] 우리가 ‘동정 복지’를 달라했나
  • 현지용 기자
  • 승인 2019.05.2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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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 회원들은 2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더불어민주당 여의도 당사 앞에서 열린 민주당 행사에 난입해 시각장애인의 특성을 반영한 장애인서비스지원종합인정조사 실시를 요구하고 나섰다. 사진 / 이원집 기자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오는 7월 도입될 장애인서비스지원종합조사 평가에 시각장애인이 배제돼있다는 비판이 큰 가운데 이에 대한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2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더불어민주당 여의도 당사 앞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참석한 故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순례행사 출정식이 열리던 가운데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 회원 20여 명이 난입해 기습시위를 벌이며 경찰과 충돌했다.

시각장애인과 그 가족 등 연대 회원들은 ‘가짜 등급제 폐지 중단’과 시각장애 특성을 반영한 장애인서비스지원종합인정조사(종합조사) 실시를 요구했다. 이에 이 대표 등 민주당 관계자들은 당사로 바로 몸을 피하고 회원들은 경찰 등 행사 진행 인력들과 충돌해 제지당하기도 했다.

같은 날 청와대 효자 치안센터 앞에서는 시각장애인 권리보장 집중결의대회에 경기도시각장애인연합회, 서울맹학교 학부모회 등 20개 시각장애인 시민단체와 시각장애인 수십여 명이 참가해 정부에 시각장인에게 맞는 종합조사 실시를 촉구하고 나섰다.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장애인서비스지원종합인정조사 문항에는 지체·발달 장애인의 특성이 고려된 문항들이 많은 반면 시각장애인이 겪는 식별 능력 관련 기능 제한 문제들은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

◇ 시각장애인에게 ‘배변·배뇨’ 묻는 종합조사

강윤택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보건복지부가 장애인등급제 폐지 이후 도입한 종합조사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강 소장은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장애인활동보장서비스는 종합조사라는 것을 통해 받게 된다. 문항 결과에 따라 장애인 서비스가 결정되나 해당 문항들에는 식사, 배뇨 등 신체·발달 장애인의 문제에 맞춘 형태일 뿐, 터치스크린 기기 이용 및 낯선 곳에서의 이동 등 시각장애인들이 겪는 실제 어려움과 요구들은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종합조사가 시행될 시 “1차적으로는 서비스 하락이 우려되나 시각장애인으로서는 가장 굴욕적인 것은 장애인서비스지원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스스로를 배변도 어려운, 말도 안되는 과장과 거짓으로 응답하도록 만든 것”이라 지적했다.

강 소장은 ”지금의 조사대로라면 시각장애인은 지금의 장애 도움 서비스 혜택이 절반으로 줄어들거나 아예 필요 없는 사람으로 분류된다“면서 ”시각장애인들은 장애를 거짓·과장해야하는 모욕적이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건복지부의 현행 종합조사표를 둘러보면 조사영역을 기능제한(X1), 사회활동(X2), 가구환경(X3)으로 나뉘어있다. 그러나 조사표에는 일상생활동작(ADL)과 인지행동특성 등 조사항목이 6개로 나뉜 가운데 ‘음식물 넘기기’, ‘배변·배뇨’나 ‘환각·환청·망상’, ‘집단부적응’ 등 지체·발달장애인에 초점이 맞춰진 종합조사 문항들로 구성돼있다.

반면 연대 측이 정부에 요구하는 새 종합조사 안에는 ‘자필로 서류 작성’, ‘인쇄자료 읽기’, ‘의약품 식별’ 등 실제 시각장애인 겪거나 겪을 것으로 충분히 예상되는 식별 능력 관련 기능제한 문제가 반영돼있었다.

상식적으로도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시각장애인이기에 겪거나 겪을 수 있는 문제가 반영돼야하나 현행 종합조사 문항들에는 이러한 점이 매우 적게 반영돼있기에 이에 따른 장애지원서비스 하락·탈락이 예상되므로 이처럼 강하게 반발하는 것이다.

이 같은 반발의 목소리에도 현행 종합조사 기준이 다가오는 7월 이대로 실시될 시 시각장애인들은 당장의 장애지원서비스 확보를 위해 없는 지체·발달 장애를 ‘있다’고 답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 더불어 제도 시행 이후 행정적으로 변경이 어려운 특성도 있어 제도의 고착화 가능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강윤택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장애 서비스를 받기 위해 시각장애인들에게 거짓·과장을 하도록 만드는 종합조사는 명백한 시각장애인 차별이자 모욕적인 조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사진 / 이원집 기자

◇ “동정 복지 아닌 정당한 권리·서비스”

강 소장은 기습시위와 관련 “시각장애 자녀를 둔 어머님들 입장으로서는 아이 (눈이) 안 보이는 것도 속 터지는데 장애 서비스를 받기 위해 과장·거짓을 해야 한다는 입장은 참담한 심정”이라면서 “명백한 시각장애인 차별에도 복지부가 ‘점수를 더 줘서 서비스 하락은 없게 하겠다’는 식은 사실상 ‘동정 복지’를 의미한다. 우리는 동정 복지가 아닌, 시각장애인으로서 정당한 종합조사와 정당한 서비스, 시각장애인의 권리를 보장받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당 종합조사 입안 과정에 대해 “복지부는 조사안이 만들어질 때 기존 활동 보조 서비스에 일부 문항과 발달장애 영역을 추가해 만들었으나 시각장애인의 목소리는 원천적으로 배제돼왔고 입안 과정은 은밀하게 이뤄져 작년에야 비로소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장애등급제 폐지 논의는 2012년 대선 무렵부터 수면위로 떠올라 폐지 이후의 평가 지표에 대해 지난해 9월3일 최초로 공개됐다”면서 “장애유형에 맞춰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있어왔으나 올해 4월15일 발표된 수정안에는 평가지표상 변동된 것이 없다. 복지부는 세부 평가 매뉴얼을 만들 것이라 밝혀 연합회는 이를 기다리는 상황”이라 설명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관련 논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비서실장은 시각장애인연대의 이날 기습시위 이후 “일주일 내로 당 정책위원회 등 정식 회의를 열어 장애인 단체와 복지부 등의 이야기를 듣도록 할 것”이라며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어디서 왜 막혔는지 들어보고 시각장애인들의 건의를 최대한 반영할 것”이라 밝혔다. SW

 

hj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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