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질병이 된 '게임중독', 모든 '중독' 뿌리뽑을 기회로 만들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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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질병이 된 '게임중독', 모든 '중독' 뿌리뽑을 기회로 만들려면
  • 박지윤 기자
  • 승인 2019.05.26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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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지정했다. 이를 기점으로 '중독의 이유'까지 치료하는 논의가 있어야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 / 시사주간 DB     

[시사주간=박지윤 기자] 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지정됐다. 25일(현지시간)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보건총회 B위원회에서 게임중독에 질병 코드를 부여하는 내용이 담긴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 개정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이다. 28일 열리는 총회 전체회의에서 새 기준이 보고되면 도입이 확정되고 오는 2022년 1월 발효되면 WHO 회원국은 WHO 권고사항을 바탕으로 새로운 질병코드 정책을 시행한다.
 
WHO는 게임중독의 판단 기준을 지속성, 빈도, 통제 가능성에 맞췄다. 게임 통제 능력이 손상되고, 다른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이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계속하는 것이 12개월 이상 지속되면 '게임이용장애' 판단이 내려진다. 하지만 증상이 심각하게 나온다면 12개월보다 적은 기간에도 게임이용장애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물론 WHO의 결정과 발효가 내려진다고 해서 바로 우리나라에서 질병이 되는 것이 아니다. 게임이용장애가 국내에서 질병으로 분류되려면 통계법에 따라 통계청에서 관련 기관 및 전문가 의견 수렴을 거쳐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를 개정, 고시해야한다. KCD가 5년 주기로 개정되고 현재 2021년 1월에 제8차 개정안이 시행되기 때문에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한 이번 결정이 반영되더라도 빨라야 2026년 1월 이후부터 가능하다.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지정된 후 보건당국과 정신건강의학 전문가들은 WHO의 분류에 따라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한다고 하는 반면 게임업계는 국내 도입 반대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상태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이미 지난달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함께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화를 반대하는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게임중독의 심각성은 누구나 다 인식하고 있다. 문제는 게임중독을 어떻게 치료하느냐다. 기자가 얼마 전 WHO의 결정에 우려를 표시하는 이들을 취재하면서 여러 질문을 했지만 결국 마지막으로 나오게 되는 질문은 '그렇다면 게임중독이란 뭡니까?' 였다.
 
WHO가 이번에 기준을 제시한 것은 바로 이런 우려에 대한 대답이라고 볼 수 있다. 일상생활을 다 작파하고 게임에만 집중하고 자신이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 어느 정도 기준이 잡힌 듯 하지만 좀 더 명확한 기준 마련이 더 필요해보이고 우리 실정과도 맞는 기준이 필요해보인다. 
 
더 결정적인 한 가지 문제가 남아있다. '왜 당사자가 게임에 중독됐는가?' 사실은 이것을 뿌리뽑아야한다. 이는 WHO의 질병 코드 부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내세운 논리이기도 하다. 당사자가 게임에 중독되게 만든 사회적 환경이나 과도한 강요, 스트레스 등 원인을 규명하지 않고 질병으로 규정하는 것은 환자만 양산할 뿐, 아무 것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어떤 사람이 게임을 하다 스트레스로 죽었다'. 이렇게 쓰면 그 사람은 게임 때문에 죽었다고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무조건 게임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게임이 문제인건지, 스트레스가 문제인건지, 다른 병이 있는 것인지 여러 다른 이유가 있을 텐데 게임 탓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치료가 가능하겠는가?" 한 관계자가 전한 말이다.
 
다른 관계자는 이런 말을 전했다. "게임중독이 질병이 되면 의사들은 정말 편할 것이다. 상담을 하려면 수십가지 질문을 해야하는데 게임하는 청소년이라고 하면 몇 마디만 묻고 '게임중독'이라고 진단내리면 끝난다. 학부모도 아이들이 게임에 빠지면 '게임중독'이라고 무조건 단정짓는다. 아이들이 성적, 경쟁 등 여러 요인으로 힘들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게임 때문'으로 무조건 결론내릴 수 있다"
 
물론 이들의 말은 기우일 수도 있고 과장일 수도 있다. 그렇게 만들어야하는 것이 앞으로 해야할 일이다. 뿌리를 뽑아야 다시 자랄 수 없다. 질병으로 분류됐다는 것을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보기보다는 이 기회에 게임중독을 완전히 고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해야 하고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중독의 이유'를 찾고 고치는 것이다.
 
누구나 '마음의 병'을 안고 산다. 중독자를 보면 '마음의 병'을 깊게 앓고 있는 이들이 많다. 만약 그 마음의 병이 더 깊어지면 그때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단순히 '게임중독'을 고치자는 생각에서 더 나아가 '중독' 자체를 뿌리뽑을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5~6년의 시간이 좋은 기회일 수 있다. 시간은 있다.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학업 스트레스로 게임에 빠져든 아이들이 평생 '게임이용장애'라고 낙인찍히는 일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SW
 
pj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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