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주간=조명애 워싱턴 에디터·불문학 박사]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에서는 여자와 남자가 다투는 이유를 이성간의 차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차이를 잊고 종종 서로 옳다며 논쟁을 벌인다.
보통 남자와 여자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과거 어떤 일에 대해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런 문제와 관련한 새로운 연구는 흥미롭다. 즉, 여성들은 지나간 이야기나 얼굴 등을 기억할 때 남성보다 더 잘 기억한다는 것이다.
기억의 핵심 유형 중에는 ‘일화기억(episodic memory)’과 ‘의미기억(semantic memory)’이 있다. 전자는 구체적인 자서전적 사건들에 대한 기억으로 공간적·시간적 맥락정보를 포함한다. 즉, 언제, 어디서 그 사건이 발생하였는 지에 관한 기억이다. 자신이 경험했던 크고 작은 사건들, 예를 들면 학창 시절 선생님께 꾸중을 들었던 일을 기억하는 것 등이다.
후자는 일화기억과 달리 시공간과 관련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대통령의 이름을 물었을 때 쉽게 대답할 수 있지만 언제 어디서 그 정보를 처음 알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일화기억이 제공하는 정보를 ‘기억한다(remember)’로 표현할 수 있다면, 의미 기억에 저장된 정보는 ‘알고 있다(know)’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모든 유형의 일화기억을 동등하게 회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연인들의 불일치같은 것이다. 여자는 과거의 특정 사건에 대해 화가 났었다고 기억하지만 남자는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많은 요소들이 일화기억을 회상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나이 관련인지저하와 치매와 관련된 인식 저하가 있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Karolinska Institutet)가 13일 ‘사이코로지컬 불리튼(Psychological Bulletin)’에 발표한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생물학적 성별 또한 일화기억 회상 능력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연구를 주도한 아그네타 헤를리츠 박사와 연구진은 1973~2013년, 남성과 여성이 일화적인 정보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120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617건의 연구에 대한 메타분석을 실시했다. 그 결과, 여성이 남성보다 특정한 유형의 일화기억을 더 잘 회상하는 것으로 결론내렸다.
특히, 여성은 대화를 기억하고,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영화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 지를 잘 기억했다. 또한 얼굴과 냄새 같은 감각적인 이미지를 기억하는데 더 적절했다. 반면에 남성은 추상적인 정보와 한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되돌아 오는 것 같은 탐색 데이터를 기억하는데 더 나은 능력을 발휘했다. 원시시절 사냥하러 돌아다니면서 위치 기억 능력을 발달 시켰다는 인류학자들의 주장에 무게가 실리는 이론이다.
헤를리츠 박사는 “여성과 남성이 기억하는 것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으므로 일상 생활을 하면서 서로 다르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는 남성과 여성은 화성이나 금성에서 와서 서로 이해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차이 때문에 이해를 못한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각자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게 된다. 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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