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폭염 속 숨겨진 주거 빈곤 ‘쪽방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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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폭염 속 숨겨진 주거 빈곤 ‘쪽방촌’
  • 현지용 기자
  • 승인 2019.07.03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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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본지는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쪽방촌 일대를 둘러봤다. 2평이 채 안되는 다세대주택에 상당수 1인 가구·기초생활수급자로 사는 쪽방촌은 지난해 기록적인 폭염을 맞았음에도 올해도 선풍기 한 대로 여름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 현지용 기자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지난해 기록적인 폭염으로 재난 지정이 된 가운데 쪽방촌 등 주거 빈곤층에 대한 실질적인 폭염 대책과 주거복지가 필요해 보인다.

도시 내 주거취약계층이 슬럼으로 몰리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쪽방촌은 도심 속 대로변의 화려한 빌딩 숲에 가려진채 안쪽에 모여 있는 형태다. 고시원처럼 오늘날의 빈곤이 가진 특징인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명제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3일 본지 기자가 직접 다녀온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모습도 그러했다. 서울역 동쪽 한강대로변 서울남대문경찰서와 빌딩 벽을 지나면 가파른 언덕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쪽방촌의 모습이 드러났다. 2평이 채 안되는 공간에서 쪽방촌 주민 1200여 세대가 살고 있다.

쪽방촌 거주민 전체는 아닐지라도 이곳의 거주민 대부분은 노인 등 기초생활수급자인 빈곤층이 주를 이루고 있다. 다세대 주택에 칸칸이 나눠진 방은 고시원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일부는 콘크리트로 칠해진 어둡고 비좁은 원통형 계단을 따라 합판으로 덧댄 간이 문으로 방을 나누고 있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3년 째 거주중인 A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아직까지는 괜찮으나 뜨거울 때는 잠을 자지 못한다”며 “바깥의 콘크리트 벽이 햇빛과 높은 기온으로 열을 받아 방이 한증탕, 사우나처럼 뜨거워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사진 / 현지용 기자

쪽방촌 주택의 복도에서는 곰팡이와 낡은 여관방, 노년층의 체취를 주로 맡을 수 있었다. 오히려 유흥가처럼 쓰레기와 담배 같은 악취는 덜했다. 이곳의 주요 거주민 다수가 빈곤 노인층이라는 것과 함께 숨겨진 한국 고령화 문제의 실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8월 서울은 최대 39.6%까지 올라갈 정도로 사상 최악의 폭염을 기록했다. 올해 여름 날씨도 이를 따르듯 이날 기상청은 전국적으로 자외선지수가 ‘매우 높음’ 수준이라고 밝혔다. 최악의 더위를 기록한 이래 이달 본격적인 여름 시기에 접어든 가운데 쪽방촌 거주민들에게 생활 실태와 여름나기를 물어봤다. 

이곳에서 지낸지 3년째에 접어든 A씨(62)는 지난해 폭염이 “기억에 남을 만큼 힘들었다”고 말했다. A씨는 “올 여름은 아직까지는 괜찮은데 뜨거울 때는 잠을 자지 못한다. 바깥의 콘크리트 벽이 햇빛과 높은 기온으로 열을 받아 방이 한증탕, 사우나처럼 뜨거워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A씨는 여름에 점점 열대야가 잦아져 걱정이다. 그러면서 “해가 뜨는 낮에는 요 앞 공터 같은 시원한 곳 아래에 가있다. 낮에는 방에서 잠을 잘 수가 없다”며 “에어컨 같은 건 구경도 할 수 없고 선풍기 한 대로 견딘다. 겨울에도 난방 지원은 해주나 추운 곳은 여전히 춥다”고 답했다.

통계청의 인구 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쪽방촌, 고시원 등 공간에서 사는 인구는 2005년 5만명에서 2015년 35만명으로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소득 빈곤에 따른 주거 빈곤은 청년, 노인, 경제난으로 추락한 중장년층 등 가장 약한 계층에게 제일 먼저 찾아오기실질적인  이들에 대한 주거 대책이 절실해 보인다. 사진 / 현지용 기자

이곳에서의 삶에 대해 B씨(73)는 “월세 20만원에 그냥 사는 사람들도 있고, (기초생활)수급자도 있고, 다들 먹고 살기 팍팍해 제대로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산다”며 “살기 힘들고 아프다 보니 이곳에 오게 됐다. 그래도 여름이라도 냉장고나 약값 부담이야 정부나 병원에서 다해준다.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냥 다 산다”라고 말했다. 

국일고시원 화재 참사의 여파 때문인지 쪽방촌 내 많은 다세대 주택에는 소화기와 화재대피용 자급식호흡기구가 배치돼있었다. 그러나 방치된 시간을 의미하듯 대부분은 복도의 구석에 한데 몰려 먼지를 뒤집어 쓴 모습이었다. 

서울시는 지난해 살인적인 폭염을 겪고 폭염도 재난으로 구분해 주거취약계층에 대해 에어컨 같은 냉방용품 지원 및 무더위쉼터 운영 연장 등 ‘서울형 긴급복지’를 편성했다. 하지만 이날 둘러본 쪽방촌의 상당수 거주민들은 대부분 선풍기 한 대로 여름을 나는 모습이었다.

통계청이 조사한 인구 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쪽방촌, 고시원 같은 공간에서 사는 인구는 2005년 5만명에서 2015년 35만명으로 집계됐다. 소득 빈곤에 따른 주거 빈곤은 가장 약한 계층에게 제일 먼저 찾아오는데, 청년과 노인, 경제난에 의해 추락한 중장년층이 그 주요 대상이다. 폭염으로 주거빈곤의 무게가 더욱 무거워질 이들에 대한 실질적인 주거복지 실현이 절실한 시점이다. SW

 

hj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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