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누구의 것도 아닌’ 광화문광장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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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누구의 것도 아닌’ 광화문광장의 하루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9.07.05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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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은 정말 누구의 것인가?' 그 질문이 이번 취재의 시작이었다. 사진 / 임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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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임동현 기자]광장’. 국어사전에는 공공의 목적을 위하여 여러 갈래의 길이 모일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마당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최근 우리에게 광장이라고 하면 바로 광화문광장을 떠올릴 것이다. ‘빛이 되는 문광화문과 경복궁,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의 동상, 세종문화회관과 미국대사관, 그리고 세월호의 아픔과 촛불의 외침, 광장을 차지하려는 이들의 우격다짐,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그곳이다.

폭염경보 예보가 나온 5일 광화문광장을 찾았다. 새삼스럽게 이 곳을 찾은 이유는 하나의 궁금증을 풀고 싶어서였다. ‘광장은 정말로 누구의 것인가?’ 물론 어떻게 보면 너무나 뻔한 질문이고 또 어떤 답이 나올지 뻔히 예상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광화문광장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접하면서 기자는 그 뻔한 의문을 가지게 됐다. 그 의문을 안고 광장으로 향했다.

AM 8:50 광장을 채운 대형 화분과 경찰들을 보며

출근을 위해 광화문 횡단보도를 부산하게 건너는 시민들. 사진 / 임동현 기자   

출근길을 서두르는 시민들의 발길이 여전히 부산하다.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는 횡단보도와는 반대로 광장의 아침은 한산했다. 광장 주위에는 이전보다 많은 인원의 경찰들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 동상 뒤편, 이곳은 우리공화당이 불법으로 천막을 설치해 서울시와 대치했던 바로 그 곳이다. 서울시의 강제 철거에 천막을 더 짓겠다고 나선 우리공화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임시로 퇴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공화당이 떠나자 서울시는 139개의 대형 화분을 설치해 아예 우리공화당이 천막을 칠 수 없게 만들어놨다.

서울시가 우리공화당 천막 설치를 막기 위해 설치한 대형 화분들. '미관상 보기 좋다'는 반응과 함께 시민 통행에 불편을 준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사진 / 임동현 기자   

서울시는 대형 화분 설치로 우리공화당 천막 설치 방지는 물론 미세먼지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화분이 광장의 미관을 해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화분 설치로 인해 길이 좁아진 부분은 아쉽다. 광장이 좁아진 느낌이 들었다. ‘광장은 누구의 것인가?’ 역시 이 의문이 들었다. 광장을 거니는 사람들을 생각해야하지 않았나라는 아쉬움이 살짝 들었다.

그 때 !’ 분수대에서 물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광장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는 것처럼 분수의 물줄기는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AM 11:00 얼마만에 누리는 광장의 여유인가, 그러나...

오전 11, 광화문 앞에서 수문장 교대식이 열렸다. 조선 왕실의 수문장 교대식을 그대로 재현한 행사다. 북소리에 맞춰 수문장과 종사관들이 질서있게 행진을 하고 이를 보는 사람들, 특히 외국인들은 연신 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더위에도 우리의 전통을 보여주려는 노력이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광화문 앞에서 열린 수문장 교대식. 사진 / 임동현 기자 

광화문광장은 한창 때는 곳곳에서 기자회견, 집회, 1인시위가 이어지던 곳이었다. 한 단체가 기자회견을 마치면 곧바로 그 장소에서 다른 단체가 집회를 시작하고 다시 그 집회가 끝나면 같은 단체에서 또 다른 단체가 시위를 하는, 마치 바톤 터치를 하듯 집회와 기자회견이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날 광장은 평화로웠다. 시끄러운 방송 소리나 음악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 광장이 매일 투쟁하는 곳이 되면 안되지, 이런 여유있는 모습, 얼마나 좋아그렇게 광장의 평화를 느끼려던 순간,

학교부터 비정규직 즉각 폐지하라!”, “우리 아들에게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물려주자!” 파업 3일차를 맞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광화문광장으로 오고 있었다. 이들은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집회를 가진 뒤 광화문 광장을 지나 청와대까지 행진을 하고 있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집회를 가진 뒤 광화문광장을 지나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사진 / 임동현 기자   

비정규직 폐지를 외치며 광장을 지나가던 노동자들은 마이크에서 흥겨운 노래소리가 나오자 몸을 흔들며 행진을 하기도 했다. 잠시나마 그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나왔다. 광장에 퍼진 비정규직의 외침. 아직 광장은 완전히 평안하지 않다.

PM 1:30 우리는 아직 세월호를 잊지 않았다

광화문광장에는 기억과 빛이 있다. 바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공간이다. 세월호 천막이 처진 바로 그 곳은 기억의 집이 되어 지금도 세월호의 아픔을 시민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묻지 않았는데 자원봉사자가 화면 작동법을 설명해준다. 안타깝게 우리의 곁을 단원고 학생들의 이름과 그들의 이야기,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참사들, 그리고 세월호 참사 이후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화면을 통해 볼 수 있었고 한켠에는 세월호 참사 후 유족들의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상영되고 있었다. 세월호를 추모하는 책들과 참사 전 찍은 단원고 학생들의 수학여행 사진 등이 그냥 지나치려는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기억과 빛'. 여전히 세월호 진상규명을 외치는 목소리는 높다. 사진 / 임동현 기자  

그리고 그 주변에는 가족협의회 회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피켓을 펼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아직 세월호의 슬픔은 현재진행형이었던 것이다.

한 자원봉사자의 말을 전한다. “우리공화당 지지자들이 저희 주변에 천막을 쳤었는데 그냥 지나가면 좋을텐데 꼭 욕을 하고 폭언을 해서 마찰이 많았어요. 특히 토요일에 더 심했던 걸로 기억나요(웃음). 서울시가 대형 화분으로 이번에 천막을 막았는데 미관에 좋다는 말도 있고 사실 돌아다니기에는 좀 불편한 것도 있지만... 일단 우리공화당 천막 설치를 막았으니까 그게 크다고 봐요”.

PM 3:00 광장에 대한 우문현답

광화문광장은 한동안 쉬는 날이 없었다. 각종 행사가 열리고 가을에는 여러 축제의 공간이 됐다. 그렇지만 이날 광장은 무대 설치도, 고성도 없었다. 자유롭게 사람들이 오가는, 도심 속 휴식처 역할을 하고 있었다.

▲ 세종대왕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외국인 관광객들이 주로 사진을 찍는 곳이 이 세종대왕상 앞이다. 사진 / 임동현 기자     ©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과 연결되는 해치마당에는 광화문광장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조선시대 육조거리에서 촛불집회에 이르는 사진들을 보다가 이 글귀를 마주하게 됐다.

국가주의 시대에 광화문은 국가의 공간이자 차량을 위한 도로였을 뿐 시민을 위한 공간, 시민의 광장은 아니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광화문은 시민의 공간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민주집회를 통해 민의가 표출되는 시민의 광장이 되었다

시민의 광장’. 누구나 광화문광장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오늘 기자가 찾으려 한 질문의 답이 아니었다. 광화문광장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더운 날씨에도 사진을 찍고 함께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기자는 생각했다. ‘광장은 시민의 것, 국민의 것이라고 보지 말자. 광장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그 광장에서 함께 어울리면 된다’.

그렇다. 광장은 어울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유나 우격다짐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와서 함께 어울리고 함께 손잡고 함께 보듬어주길 원하고 있다. 광화문광장은 다툼이나 분쟁의 공간이 아닌 어울림의 공간을 추구하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이 지키는, 광화문과 경복궁, 청와대로 연결되는 통로. 광화문광장은 시민의 어울림을 원하고 또 원하고 있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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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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