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최저임금 최저 인상, '당나귀를 메고 가야하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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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최저임금 최저 인상, '당나귀를 메고 가야하는' 정부
  • 황채원 기자
  • 승인 2019.07.14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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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는 12일 새벽 13차 전원회의를 통해 사용자 위원 측에서 제시한 최저임금 인상안(8509원)이 위원 27명 전원 중 15대 11(기권 1)로 채택됐다.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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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황채원 기자] 처음에는 당나귀를 끌고 갔다. 그랬더니 사람들은 '왜 타고 가지 걸어가냐'라고 수군댄다. 아버지는 아들을 태웠다. 그랬더니 '어떻게 어린 아들이 편하게 당나귀를 타고 늙은 아버지는 걷느냐'고 비난한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타고 아들이 걷는다. 그랬더니 '저런 비정한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라는 비난이 나온다.
 
이번엔 아버지와 아들 둘 다 당나귀를 타고 다닌다. 그랬더니 '동물이 힘들어하는 걸 생각 안하냐?'라는 비난이 나온다. 그럼 이제 어떡해야하나? 결국 아버지와 아들은 당나귀를 메고 가기로 한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팔러가는 당나귀'라는 우화다. 이 우화가 떠오른 이유는 최근 결정된 최저임금 때문이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간당 8590원으로 결정됐다. 올해보다 2.87%가 올랐는데 이는 1998년과 2008년 이후 가장 낮은 인상률이다.
 
이에 대해 각계 반응은 정말 천차만별이다. 노동계는 "소득주도성장 폐기, 최저임금 참사"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고 중소기업중앙회는 "동결을 이루지 못해 아쉽지만 적응 노력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반응했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는 "경영계 부담이 가증된 수준"이라고 하고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동결 필요성이 있는데 오른 것이 매우 아쉽다"고 한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인상률이 낮아보는 건 착시현상에 불과하다"며 반발한다. 
 
정부는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최저임금 인상률을 낮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발이 심하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정의당은 "최저임금 1만원을 이야기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은 물거품이 됐다"고 반발했고 자유한국당은 "작은 폭탄도 폭탄이다"라고 인상 자체를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14일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1만원'은 그렇게 또다시 '이루지 못한 꿈'이 됐다.
 
최저임금은 인상을 해도 비판이었고 동결을 해도 비판이었다. 인상 이야기를 하면 소규모 자본가들의 반발을 이야기했다. 임금을 인상하면 바로 기업이 어려워지고 이로 인해 일자리가 어려워진다는 말도 나왔다. 심지어 보수언론에서는 새벽 시간 술집에 사람이 없는 이유가 최저임금이 올라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최저임금을 동결을 하면 노동계의 반발을 피할 수가 없었다. '최저임금 1만원'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라는 점도 컸다.
 
그렇기에 최저임금 문제는 당나귀를 팔러가는 과정과 똑같았다. 어떤 결정을 해도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올리면 기업과 상인들이 어렵고 동결하면 노동자가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고 그렇기에 논의의 시간보다 파행의 시간이 더 길었다.
 
이번 결정도 논의를 해서 결정한 것이 아니라 결국 정부 측의 위원들이 결정을 밀어붙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다면 이번 소폭 인상은 해결책이 아니라 여러 비난을 피하기 위해 '당나귀를 메고 가는' 것을 결정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팔러가는 당나귀'의 결말은 다 알 것이다. 당나귀를 메고 가던 아버지와 아들은 결국 외나무다리에서 당나귀를 놓쳐버리고 당나귀는 물에 떠내려간다. 차라리 모든 것을 무시하고 밀어붙였으면 이런 결말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밀어붙일 수 있는 힘은 '지혜'지만 이번엔 그 지혜조차 나오지 않았다. 또다시 희생으로 경제 상황을 메꿔야하는 결말이 되고 만 셈이다. '을'의 희생이 또 강요됐다.
 
그렇게 지금 우리는 외나무다리가 나오지 않기를, 그 외나무다리를 무사히 건너기를 기다려야하는 상황을 맞고 말았다. 그리고 그 역할을 정부가 해야한다. SW
 
hcw@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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