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진상 일본의 생체실험③] 관동군731 특수부대 진상조사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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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진상 일본의 생체실험③] 관동군731 특수부대 진상조사 개요
  • 황채원 기자
  • 승인 2019.09.0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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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 배치됐던 일본 세균전 부대 A 1855부대의 실험실 사진. 일본 침략군은 1932~1945년 중국에서 군인 1만 명으로 구성된 세균전쟁 부대 60개를 만들었다. 중국 시민 최소 27만 명이 생체실험의 피해자다. 악명 높은 '731부대'를 포함한 일본군은 생체 세균실험에 기반을 둔 세균무기를 개발했다. 또 이 세균무기를 전투에서 사용해 중국 시민에게 페스트와 탄저병을 유발했다. 사진 / XINHUA


Ⅱ.731부대 설립 배경과 기점

 

1. 731부대 설립 전후의 상황

 

일본은 1905년 러시아와 맺은 포츠머스조약에서 군 주둔권을 승인받았다. 이때 생긴 것이 관동군이다. 관동군은 남만주에서 일본의 권익을 지키고 남만주철도 등을 경비하기 위하여 뤼순(旅順)에 주둔했다. 이후 관동군은 일본의 대륙 진출의 교두보로서 전략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더구나 대륙침략의 강경파들이 사령부 참모의 중심부를 이루었는데, 이들은 중국혁명의 진전과 함께 독자적인 정치·군사 공작에 착수, 장쭤린(張作霖)의 폭사사건을 일으키고 만주사변 등을 주도하였다. 일본군은 1932년 초까지 거의 만주 전역을 점령하고, 같은 해 3월 1일에는 일본의 괴뢰국가인 만주국을 만들고 만주를 병참 기지화했다. 국제연맹은 중국 측의 제소에 따라 리턴조사단을 파견하고 그 조사보고서를 채택, 일본군의 철수를 권고하였으나, 러허성(熱河省)을 점령한 일본은 이를 거부하고 1933년 3월 국제연맹을 탈퇴하였다. 이를 계기로 일본은 정당내각에 종지부를 찍고 파시즘 체제로 전환, 1937년의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1941년의 태평양전쟁에 뛰어들었다.

 

731부대를 관할하던 관동군은 일본이 만주를 지배하는 동안 산동반도 및 만주에 주둔하는 전 일본육군을 장악하였다. 그 후 관동군은 대 중국전뿐만 아니라 대 소련 전에 대비하여 병력을 증강했으며 1941년에는 약 70만의 대군이 되었다. 1943년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세가 위급해지자 관동군은 남방과 일본 본토로 많이 이동하여 세력이 약화되었으며, 1945년 소련이 침공할 때에는 한반도 북반부인 38˚선 이북 지대까지도 방위지대로 삼았다. 1945년 일본의 항복과 더불어 붕괴되었다.

 

 

2. 세균전의 의미와 731부대 창설배경

 

세균전이란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생물학 무기(biological weapon) 즉 질병 매개체를 포함한 생물학적 작용제에 의해 생물을 살상·가해(加害)하는 무기를 말한다.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은 기원전 184년 페르가몬의 유메네스 왕과의 해전을 준비하면서 흙으로 만든 항아리에 코브라등 맹독성 뱀을 가득 채워 적들이 타고 있는 배에 항아리들을 던지는 방법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다. 기원전 1세기에는 스키타이 궁수들이 퇴비나 썩은 시체에서 흘러나온 물에 화살촉을 적셔서 쏘기도 하였으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살상용 독화살촉이나 단검 등의 무기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14세기 유럽에서 창궐한 페스트는 30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으며 아즈텍 문명과 잉카문명은 두창에 의하여 멸망했다. 1710년에 러시아군은 페스트로 죽은 사람의 시체를 스웨덴군 주둔지에 투입하기도 했는데 물에 독약을 타는 방법은 6.25, 1. 2차 세계대전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군은 탄저병과 비저병에 걸린 가축을 이용하여 미군 등에 사용하였으며 이탈리아와 러시아에 콜레라를 전파하기도 했으나 부인했다. 1925년의 제네바 협정에 의하여 전쟁 시 생물무기와 화학무기의 사용을 금하기로 하였으나 거의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일본군의 731부대는 바로 이런 세균전에 대한 정점을 이룬다. 만주에서 생체실험을 행한 일본군 특수부대 중 가장 악랄한 것이 731부대이며, 그 외에도 여러 부대에서 생물무기 관련 연구를 진행하였다. 1932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군은 중국, 러시아 필리핀, 한국, 몽골, 호주 등의 죄수들을 대상으로 탄저병, 브루셀라, 콜레라, 이질, 뇌수막염, 페스트 등의 인체실험을 실시하였다. 독일도 제2차 세계대전 중 리케차, A형 간염 바이러스, 말라리아 등의 인체실험을 진행하였으나 사용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영국 또한 1942년 스코틀랜드 연안 그루이나드 섬에서 탄저균이 실린 작은 폭탄을 터뜨리는 실험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은 중국대륙을 가장 효과적으로 점령하고자 하였다. 중일전쟁, 러일전쟁 등으로 피로가 누적되고 군수물자의 부족 등으로 새로운 모색이 필요하였다. 최소의 자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누려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전차, 비행기, 독가스 등 유럽 전선에서 사용된 근대무기를 눈 여겨 본 일본군은 전력의 수준 차에 강한 쇼크를 받았다. 일본은 곧 신속하고 효과가 큰 특수 무기로 일거에 적군을 타멸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냈다. 바로 세균전이었다. 이시이 시로(石井四郞)는 이 작전의 적임자로 지명 받았다. 이시이는 쿄토(京都)대학의학부를 졸업하고 1927년 의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38년 3월, 육군군의대좌로 임관되었다. 이후 육군군의소장, 제1군 군의부장을 거쳐 1940년 8월에는 관동군방역급수부장에 임명되어 731부대의 생체실험을 총괄하였으며 1945년 육군중장으로 종전까지 관동군방역급수부장으로 근무하였다. 그는 생체실험 자료를 종전 후 미국에 넘겨주는 조건으로 전범재판을 면제받기도 했다. 이시이는 뇌막염 발발이 동시 다발적이지 않을 때 사용되는 효과적인 수막(water filter)을 개발함으로써 유명해졌다.

 

이시이는 도쿄대학, 게이오대학 등의 동료들을 모아 세균무기 개발에 나섰는데 일본 녹십자를 창설한 나이토료이치(內藤良一)도 있었다. 이시이는 1932년 중국 하얼빈시 외곽의 베이인허(背陰河)에 731부대의 전신인 도고(東鄕) 부대를 설치하고 생체실험을 실시하였으나 포로가 탈출하는 바람에 일단 폐쇄했다. 생체실험을 본격 연구하게 된 731부대는 1938년 하얼빈(哈爾濱)시 핑팡(平房) 구에 건설됐다. 일본은 이 지역을 ‘특별군사구역’으로 지정하였으며 핑팡을 통과하는 기차는 전 역에서부터 커튼을 내려야 했으며 승객 중 밖을 내다보는 자가 있으면 체포하였다. 지역 내 거주자는 16세 이상일 경우 남녀를 막론하고 경찰서에서 발급하는 특별거주증명서를 소지해야 했다. 그렇지 아니하면 헌병대로 압송되어 신문 받았다. 731부대는 일반인은 물론 일본 군인들, 심지어 일본군 비행조차 금지되었으며 3000명의 대원이 있었다. 731부대의 정식 명칭은 ‘관동군 방역급수부 본부’다. 표면에 건 간판는 급수 방역이었지만 실제로는 세균무기의 개발 연구를 위한 기관이었던 것이다. 731부대는 부대의 안전과 비밀을 보장하기 위해 대외로 ‘가무부대’ ‘석정부대’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일본육군참모본부는 731부대를 건립하는 동시에 신징에 100부대를 건립하였다. 그들은 노구교사변 후 중국의 화북(華北), 화중(華中), 화남(華南)등 지역에 세균전부대를 건립하였다. 그 중 중요한 부대는 베이핑(北平)의 베이지지아(北支甲) 제 1855부대, 난징(南京)의 ‘영’자(‘榮’ 字 )제 1644부대와 중국광주의 ‘파’자(‘波’ 字)제 8046부대이다. 그 외 싱가포르에도 한 개의 세균전부대를 건립하였다.

 

3. 731부대의 편성

 

731부대는 부대장은 이시이가 주로 운영했으나 독직사건으로 1942년 8월부터 1945년 3월까지는 기타노마사지(北野政次)가 맡았다. 부대편성은 세균연구부, 세균제조부, 총무부 등 전 8부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핵심그룹은 1부에서 4부까지였다. 로_ロ(ㅁ자 형태로 만들어져 있음)이라 부르는 호동 안에는 제1부인 세균연구부와 제4부인 세균제조부만 있었다.

 

가. 각부서 책임자 및 세부업무

 

제1부 세균연구부

 

부장/.기꾸치히토시(菊地齋)

티부스과 / 다베이가즈(田部井和)

콜레라과 /미나토마사오(湊正男)

동상과/ 요시무라히사토(吉村壽人)

이질과 / 에지마심페이(江島眞平)

페스트과/ 다카하시마사히코(高橋正彦)

병리과 /오카모토게이조(岡本耕造) 이시카와다치오마루(石川太刀雄丸)

윌스과/ 가사하라시로(笠原四郞)

결핵과 /니키히데오(二木秀雄)

탄저과 /오타기요시(大田澄)

천연두과/ 기호인아키오(貴寶院秋雄)

리케치아 및 벼룩과/ 야고게이이치 (野口圭一)

약리연구과/ 소우미헤이후(草味正夫)

혈청과 / 나이가이 (內海)

X-선과 / 제이타 (在田)

 

제2부

 

부장/오타기요시(大田澄)

식물절멸연구반/ 야키사와유끼마사(八木澤行正)

곤충연구반/ 다나카에이오(田中英雄0

항공반/ 마스다미호(增田美保)

 

제3부

 

부장/에구치호게쓰(江口豊潔)

운수반/하얼빈 시 난강(南崗)에 있는 육군병원에 위치. 이시이식 여수기 및 페스트균을 넣을 수 있는 도기형 폭탄의 용기도 제조했다

 

제4부

 

세균제조부부장 /하가와시마기요시(川島淸)

세균제조반 /가라사와도미오(柄澤十三夫)

발진티부스 및 왁찐 제조반 /아사히나마사지로(朝比奈正二郞)

아리따_有田 반 / 아리타마사요시(有田正義)

  

4. 세균감염 시험 및 생체해부실험

 

1. 세균의 종류

말라리아균, 페스트균. 탄저균, 콜레라균, 티부스균 등

 

2. 감영방법

주사, 음식물에 섞는 등의 방법으로 마루타를 병원균에 감염시킴

 

5. 생체해부실험

 

1. 생체해부

균이 살아 있는 인간의 장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조사하기 위해 마루타가 죽기 전 에 생체해부를 함.

 

2, 건조 및 아사실험

마루타를 건조기에 넣어 수분을 어느 정도 빼내야 죽음에 이르는가 또는 단식, 단수에 의해 죽음에 이르게 되는가 하는 실험.

 

3, 전채혈실험

난징 소재 1644부대 같은 곳에서는 세균에 감염시킨 마루타의 혈액을 모두 추출하는 전채혈(全採血)실험을 시도함.

 

4. 매입법 실험

피 실험대상의 피부를 벗겨낸 후 세균을 근육 속에 묻는 실험.

 

5. 관균실험

페스트 탄저 등 각종 세균을 밥과 요리에 혹은 과일과 음료수에 바르거나 투입하는 실험.

 

4. 동상, 동사실험

마루타를 동상에 걸리게 하여 치료법을 연구. 겨울에 알몸 혹은 얇은 옷 하나만 걸친 채로 밖에서 냉동시켰고 여름에는 냉동실에 넣어 실험함. 냉동이 되면 냉수를 붓거나 온수에 담그며 때로는 끓는 물에 녹였음. 피 실험대상의 동상부위에 각종 약품을 발라 병변과정을 관찰하였으며 섭씨 37도의 온수에 담그었을 때 동상치료 효과가 제일 좋았다는 결론을 얻음.

 

5.독가스실험

유리 실험실에 마루타를 집어 고 독가스로 죽어 가는 경과를 다큐멘터리나 그림으로 기록하는 실험.

 

6. 야외실험

하얼빈 130km 떨어진 안따(安達) 야외실험장에서 마루타를 나무 기둥에 묶어 놓고 비행기로 세균폭탄을 투하하고 그 효과를 살펴보는 등 세균무기 개발을 위한 실험.

 

7. 동물사육

페스트균에 감염된 벼룩을 대량사육 함. 페스트균을 주사한 쥐에 벼룩을 모아 페스트균에 감염된 벼룩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냄. 이시이는 그의 셋째형인 이시이산난(石井三男)을 반 장으로 임명하여 쥐를 위주로 한 각종 동물사육을 책임지게 함. 생산 능력은 페스트균을 매달 300Kg, 콜레라균 700Kg을 생산할 수 있음. 1941년 5월 제4부 제1과에서 탄저균. 페스트균을 수백 kg 제조하였고 1942년 7∼9월에 상한 콜레라균을 약 70Kg을 제조하여 항공편으로 난징 1644부대로 보내 중국군민을 살해하는데 사용함. SW

hcw@economicpost.co.kr

<이 기사는 네이버 중국판 메인에 게재되었습니다. 네이버 포스트 원문보기> [충격! 진상 일본의 생체실험③]관동군731 특수부대 진상조사 개요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4471223&memberNo=16745602&searchRank=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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