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칼럼] 586, 그들의 정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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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칼럼] 586, 그들의 정의란 무엇인가
  • 오세라비 작가
  • 승인 2019.09.20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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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라비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 『그 페미니즘이 당신을 불행하게 하는 이유』(공저) 저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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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오세라비 작가2019년 현재의 대한민국 메인스트림은 386세대로 불리던 586세대다. 그들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상층부에 포진하고 있는 명실공이 지배계층 엘리트 집단으로 불러도 무방하다. 하지만 이제 젊은 층을 중심으로 586을 바라보는 시각은 냉정하다. 586의 내재 가치와 효용 가치를 엄밀히 따져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어느 시대든 젊은 세대는 기존의 권위와 질서에 저항해 왔다. 과거 젊은 세대가 구시대에 반기를 들었을 때는 독재정권 타도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었다. 2019년 현재는 과거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를 비판하던 세대담론과는 양상이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민주화를 이끌었던 이른바 386세대가 집권하고 있다. 이들이 586이다.

  

586세대는 60년대 출생, 80년대 대학생, 현재 50대 이상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베이비붐 세대, 즉 1955~1963년생 사이의 50년대 출생자들도 다수 포함된다. 정치권에서 파워를 행사하는 정치인들 상당수가 베이비붐 세대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현재 정치권과 사회 각계각층에서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환갑 나이이거나 환갑을 훌쩍 넘겼으나 무대에서 퇴장할 기미는 찾아보기 어렵다. 어쩌면 노동계와 함께 65세 정년연장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던질 기회를 엿보고 있을 지도 모른다. 

 

586세대라 불리는 용어는 태생부터 다분히 소수 엘리트 의식이 담겨있다. 1980년만 해도 대학진학률은 남성 27.2%, 여성 22.2%(자료: 통계청)였다. 586세대 대다수 인구 집단은 산업화, 민주화의 주역으로 한국 사회의 변화를 이끌었다. 또 대부분이 경제활동의 주역이기도 했다. 그러나 586세대라 일컬어지는 대학교 졸업 엘리트 집단은 정치권, 노동계, 사회단체 등 각 분야로 진출하여 과실을 얻으며 지도층, 식자층을 형성하며 권력화 되었다.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 정년 은퇴연령이 시작되어도 이들 586은 그들만의 계층을 더욱 공고히 만들고 있다. 

 

586세대는 막강한 인구집단이기도 하다. 연령별 인구구조에 있어 2018년 말 기준 50대는 861만 5884명(16.6%)으로 가장 많은 대규모 인구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유권자 수로도 우세한 연령대이다. 현재 586에 저항의식이 높은 20대는 50대보다 인구수에 있어 약 180만 명이 적다. (자료: 대한민국정부브리핑)

정부여당이나 야당이 20대 문제에 관심이 적은 이유도 투표로 결정되는 정치권력의 향배에 따른 득실이 적용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예컨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직무수행평가 (2017/6 한국갤럽) 20대 남성 81% 지지, 20대 여성 82% 지지였다. 그러나 집권 일 년 반 만에 대통령 직무수행평가(2019.3.3.주 한국갤럽) 20대 남성 20% 긍정, 20대 여성 56% 긍정으로 바뀌었다. 특히 20대 남성층의 이탈이 급격하며 이들은 586세대의 강력한 비토세력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권력의 정점에 위치한 정치권 586의 세계관 렌즈는 여전히 80년대에 머무르고 있다.

 

586 정치인 중 한 명인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오히려 20대가 보수화되었다면 “전 정권의 반공교육 탓”이라고 했다. 20대 중반 남성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공교육을 받은 세대이다. 586은 밀레니엄 세대 군에 속하는 20.30세대의 분석과 시각은 무디다. 586 세대와는 완전히 새로운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홍 의원처럼 과거의 가치판단으로 현상을 본다. 586은 젊은 시절 투쟁해왔던 구질서 저항운동의 대상이 오늘날 자신들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인간은 과거의 경로의존성에 익숙한 존재다. 몸에 배인 방식으로 계속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뇌의 노화로 이어지게 됨은 심리학에도 나오는 이론이다. 노화 현상을 보이는 586에게 필요한 것은 시대를 진단하는 새로운 렌즈로의 교체다. 

 

586세대가 자기중심적이라면, 밀레니엄 세대는 자기과잉 상태다. 디지털 신기술의 발달을 누리며 성장한 밀레니엄 세대는 무엇보다 정치이념 갈등이 희박하다. 이들은 자기성취를 중요시 여기며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에는 매우 민감하다. 개인의식은 파편화 되었다. 디지털 신기술의 발전 속에서 성장한 젊은이들은 586세대와 삶의 방식과 사고가 다르며, 586세대는 꼰대 아니면 꼴통 둘 중 하나로 본다. 

 

필자는 평소 2030세대와 자주 소통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연이어 2030 청년과 인터뷰를 하였다. 그중 한 명인 청년 A씨는 이렇게 토로했다. “586세대 중 특히 남성들은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이다. 본인들이 권력을 놓지 않으니 청년층과 갈등이 생긴다.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 젊은 정치인들 예를 들어 임종석, 유시민 등이 대거 등장하였다. 본인들은 기회와 특혜를 받았으면서 자신들이 내려놓아야 할 때를 모르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청년들이 미숙하다, 경험이 없다 생각하면 안 된다. 그렇다면 586은 젊은 시절에 그렇지 않았다는 말인가?” 

 

오늘날 586 권력자들에게서 낡은 모습을 고집하는 리더, 자신들이 역사를 만드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선민의식, 도덕적 우월감, 자신만의 정의가 옳다는 독단적인 행동,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 한다”는 마키아벨리즘까지 횡행하는 것을 목도한다. 586은 자신의 자녀를 명문대 입학시키기 위해 편법과 부정한 행위를 저질러도 자기합리화와 정당화한다. 이렇게 된다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정하고 균형 있는 사회는 멀어지게 된다.

무엇보다 586세대의 특징은 “나는 정의롭다”는 정의에 대한 독점이다. 하지만 세상 어디에도 자신만이 옳은 정의는 없다. 절대 진리가 존재하지 않듯 절대 정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여당, 언론매체, 사회지도층 리더들은 균형을 상실했다. 집권세력은 진부하고 상상력이 부족하다. 갈등과 마찰은 어디서나 있기 마련이나, 권력화 된 586은 극심한 진영논리, 세대 간 단절을 야기한다. 균형 잡힌 정책수립과 올바른 의사결정이 요구된다. 권력의 정점에 선 순간 내리막은 가파르다.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며 흐르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태양은 586없이도 스스로 뜨고 스스로 진다. SW

murphy8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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