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진상 일본의 생체실험⑥] 관동군731 특수부대 진상조사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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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진상 일본의 생체실험⑥] 관동군731 특수부대 진상조사 개요
  • 황채원 기자
  • 승인 2019.09.25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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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7일 자료사진 복사본으로 지난 1940년 11월 중국 북동부 지린(吉林)성 눙안(農安)에서 사실상 일본군 '731부대'가 지휘했던 생체실험이었던 전염병 예방조치의 소속대원들. 중국 지린성 기록 보관소가 2014년 1월 10일(현지시간) 일제 식민지 시대 세균전에 관한 일본 자료를 공개했다. 이 자료에는 일본군이 2차 세계대전 중 생물학 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세균부대 기지들을 중국 내 식민 지역에 조성해 인간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벌인 사실을 자세히 보여준다. 이 기록보관소는 731부대를 비롯해 일본 세균부대들은 20여개 성, 161개 시에서 세군전쟁범죄를 자행해 27만 명 넘게 숨지고 2370만 명 이상이 페스트에 감염됐다고 밝혔다. 사진 / XINHUA 


12. 6.25
전쟁과의 상관관계  

 

이시이가 가져간 실험자료로 인해 5년 후 6.25 전쟁에서 일시적으로 세균무기가 사용되었다는 주장이 제기 되기도 했다. 녹십자는 731부대의 중추였던 육군군의학교 교관 나이토료이치(內藤良一)1951년 창업한 일본혈액은행이 모체다. 1964년 녹십자로 개명하였으며 731부대 니키히데오(二木秀雄) 등 수많은 부대원이 핵심원으로 활약했다. 6.25731부대가 개발한 건조혈장 등의 기술을 미군에 제공,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증거가 있다.  

 

소련, 중국, 북한은 6.25전쟁 중에 미국이 황열을 전파하는 모기와 기타 전염성 병원체를생물무기로 사용했다고 주장하였으나 미국은 실험용이지 실전용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북한 통일신보는 200595일자에서 미국이 731부대 생체실험자료를 얻으려고 이 부대원들에게 전범면제와 거액의 돈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난 것과 관련, "침략과 약탈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미국의 본성"이라고 비난했다. 북한 웹사이트 '우리 민족끼리'에 따르면 북한의 통일신보 20068.27자는 "이것은 저들(미국)의 범죄적인 세계제패 야망에 이들(731부대원)을 적극 써먹기 위한 것"이라면서 "미국이 731부대 성원들로부터 얻어낸 생체실험자료는 미국의 생화학무기 개발에 적극 이용됐으며 그 후 실전에 적용됐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이어 미국은 조선민족 학살을 위해 도처에 세균전, 화학전을 감행했다"면서 그 결과 공화국 북반부의 여러 지역이 각종 생화학무기에 오염됐으며 수많은 사람이 페스트와 콜레라, 장티푸스에 걸려 죽음을 당하지 않으면 안됐다"고 비난했다. 1970년에 우리나라는 북한이 생물전 준비를 위해 일본으로부터 탄저균, 콜레라균, 페스트균을 수입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 당시 북한은 남한을 침공하기위해 전쟁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또 구()소련은 자체 생물무기 개발에 731부대 생체실험기술 이용하기도 했다. 일본 교도통신 자료에 따르면 구소련은 중국 만저우(滿洲)에서 세균무기의 생체실험을 실시했던 일본군 731부대로부터 세균폭탄 제조기술 정보를 입수해 2차대전 이후 본격적인 생물무기 개발에 이용했다고 한다. 1992년 미국으로 망명한 구소련 생물무기연구소 간부 켄 알리베크는 그의 저서에서 "구 소련 국방부의 키로프 미생물연구소에 방대한 분량의 731부대 연구자료가 보관돼 있었다"고 전했다. 한편, '켈로'라고 알려진 한국전쟁 무렵 정보수집과 북파공작 전문 첩보부대 'KLO' 대원 출신인 이창건(李昌健) 씨는 자신의 증언집 'KLO의 한국전 비사'(지성사)에서 세균전은 북한 측과 소련군 혹은 중공군이 벌였다고 증언했다. 그는 정보 수집을 위해 KLO대원들은 함경도로 침투하기도 했다고 부언했다

 

기타 관련 참고자료

 

1. 마루타 인육 

 

19세때 함북 함흥에서 처녀공출로 강제동원 돼 해방 때까지 5년 동안 중국 지린성(吉林省) 인근에서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던 황금주(黃錦周 서울 강서구 둔촌동)씨의 증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살이 되던 1940년 음력 116일 각 마을마다 처녀 1명씩을 강제로 징발한 이른바 처녀공출로 인근 마을 다른 처녀 10여명과 함께 열차와 트럭에 차례로 옮겨져 지명도 알 수 없는 만주 북쪽 일본군부대에서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하루평균 군인 2030명씩 상대하던 그가 인육을 먹는 일본군의 만행을 목격하게 된 것은 태평양 전쟁이 말기로 치닫던 해방 1년 전 쯤이다.  

 

"해방을 1년 정도 앞두고 군부대 지원이 뚝 끊기더라구요. 식량배급도 안되니까 위안부들 뿐만 아니라 일본군인들도 먹을 것을 구하느라 야단이었어요. 또 이상한 것은 이 때부터 우리나라 처녀들도 더 이상 위안부로 끌려오지 않았다는 거예요. 아마 조선처녀들이 씨가 말랐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어느 날 위안소 바깥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하는 거예요. 위안소는 군부대 안에 있었어요. 워낙 배가 고파 나갔더니 군인들이 철판 비슷한데다 기름으로 고기를 구워먹고 있더라구요. 군인들에게 얻어터지기는 했지만 고기 몇 점을 얻어 먹었어요. 며칠을 굶어서 그랬는지 사람고기가 그렇게 맛있는 줄 처음 알았어요. 나중에 일본군인들이 수군대는 말을 듣고 내가 먹은 고기가 사람인 줄은 알았습니다. 해방을 앞두고 군부대 보급이 거의 끊겨 일본군인들도 거지와 다름이 없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푸대에 싸인 고기들이 트럭에 실려 오더라구요. 가뜩이나 먹을 것이 없어 아우성이었는데 그 고기가 인육이었어요"라고 말했다.  

 

황씨는 "처음에는 사람고기가 어디서 실려 오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해방이 되고 얼마 후 지린성을 거쳐 귀국을 하는 길에 731부대를 지나게 됐어요. 일본군에 끌려갔던 우리나라 남자들이 '저기(731부대)에서 사람들이 실험용으로 죽어갔는데 그 고기를 일본군이 먹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어요.  

 

2. 731부대 유네스코 문화지정에 대해

 

Since wars begin in the minds of men, it is in the minds of men that the defences of peace must be constructed.-전쟁은 인간의 마음 속에서 비롯되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속이다.' `유네스코 헌장` 전문에 나오는 말이다

 

유네스코는 국제 이해와 협력을 통해 항구적인 세계 평화를 건설하는 것을 목적으로 19451116일 설립된 국제기구다. `국제 연합 교육·과학·문화 기구(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의 영문 머릿 글자를 따서 UNESCO라고 부른다

 

상상할 수 없는 재난을 몰고 온 1,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인류는 정치적·군사적 노력만으로는 평화를 보장할 수 없으며, 온 인류의 지적 고양과 상호 이해 증진이 평화의 참된 기초가 됨을 절실히 인식하게 됐다. 전쟁을 일으킨 직접 원인을 주로 정치·군사·경제적 이해 관계의 충돌에서 찾아왔으나, 다른 국가나 민족의 문화와 가치에 대한 불신이나 편견 같은 지적·문화적 갈등이 평화를 해치는 더 위험한 요인이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 하얼빈의 731 부대 박물관이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야 하는 이유 또한 2차대전의 만행을 거울삼아 같은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고 평화와 화해의 정신으로 인류평화를 도모해 나가는데 있다. 중국은 지난 2000년 하얼빈시에 위치한 일본 관동군 731부대 유적지에 평화공원과 박물관을 조성해 영구히 보존키로 결정하고 20054월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했다. 신청이유는 이렇다

 

폴란드의 아유슈비츠 수용소, 일본의 히로시마 평화 박물관이 이미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어 전쟁 유적지의 세계유산 등재가 전례 없는 일은 아니다. 731 부대는 다수의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위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실험을 했다. 그들은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잔혹 행위를 했으며, 이런 측면에서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돼야 한다.’ 

 

중국정부는 이 박물관에 731 부대 본부 건물을 그대로 옮겨 놓았고 731 부대의 잔학상을 보여주는 사진과 당시 실험에 쓰였던 집기류, 모형을 이용한 생체 실험 장면, 비디오 영상물도 함께 전시했다. 또 온도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테스트하기 위해 수감자들을 고온과 저온에 노출시키는 실험을 했던 방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박물관에는 731 부대의 책임자인 이시이 시로와 다른 일본 관료들의 초상화도 있다. 731부대가 하루 빨리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원혼들의 넋을 위로해줘야 할 것이다. [시사주간=황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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