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칼럼] 딸바보, 아들바보들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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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칼럼] 딸바보, 아들바보들의 나라
  • 오세라비 작가
  • 승인 2019.09.30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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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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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오세라비 작가] “치맛바람보다 바지바람이 더 세!” 학교 인근 브런치 카페에서 들려오는 대화다. 자녀 등교 후 오전 브런치 카페는 어머니들의 사교 장소다. 이곳에서는 자녀들의 교육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오간다. 학교생활뿐 아니라 과외 강사들의 실력과 스펙, 강사비, 생활기록부 관리, 학생부종합전형 전략 등 어머니들이 삼삼오오 무리 지어 소곤거리는 대화에는 서로를 의식한 듯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곁들여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화제는 상류층 인사들의 자녀 스펙 관리와 그들의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이다. 옆 테이블에서 누가 명문대 입학했다는 대화가 들려 올라치면 찻잔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갑자기 커진다. 어떤 이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자리를 떠나는 광경도 목격된다. 남의 자식이 명문대 들어갔다는 소리는 결코 듣고 싶지 않다는 의미로 느껴진다.

대화의 중요한 부분은 ‘그 집 아빠의 직업’이다. 그 집 아빠 다음으로 ‘그 집 엄마의 직업’이다. 학교 성적 관리, 명문대 진학 과정에서 무엇보다 이 부분의 비중이 큼을 암묵적으로 다 알고 있다는 의미다. 자녀의 스펙 관리는 부모의 능력에 따른 결과물이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586세대는 특징 중 하나가 딸바보 아들바보들이다. 베이비붐 세대에서 586세대로 이어지는 시기에 약 15년 동안 한 해 100만 명 정도 출생하였다. 2018년 기준 출생아 수는 32만 6,900명으로 3분의 1로 줄어들었지만, 당시 세대는 경제적으로 빈곤한 가운데 산업화 과정과 과밀경쟁의 시대를 겪었다. 베이비붐 세대와 민주화 과정에 기여한 586세대는 자녀세대에게 경제적 풍요로움, 소비문화를 아낌없이 누리게 하였다. 자녀는 평균 2명으로 자신들이 살아온 역사와 사회적 경험을 바탕으로 뭐든 부모가 모두 알아서 해결해주며 오냐오냐 귀하게 키웠다. 딸바보. 아들바보가 된 것이다.

“우리 아빠는 딸 바보에요 내가 해달라는 건 모두 다 들어줘요.” 어느 여고생이 필자에게 자랑하듯 한 말이다. 아빠만 딸바보가 아니다. 엄마는 무서운 딸바보다. 진로에 결정적인 생활기록부 관리, 학생부종합전형 전략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주최하는 모든 대회와 봉사활동, 자율동아리 선택, 독서 활동은 엄마의 치밀한 프로그램으로 설정된다. 타 학생과의 차별화된 전략을 위해 입소문 난 교육 서비스 컨설팅 업체와 상담하며 로드맵을 짠다.

예컨대 독서 활동에 있어 자녀가 평소 읽고 감동을 받은 저서가 아니라 전략적 선택이다. 너무 어렵거나 흔하지 않으면서 고리타분하지도 않은 베스트셀러 중에서 정한다. 엄마는 하버드대 정치철학 교수인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독후감을 A4 한 장 반 분량으로 출력해서 가져온다. 독후감이 짧거나 길면 안 되므로 약 1500자가 적당하다. 물론 자녀는 당연히 이 책을 읽지 않았다. 어떤 경로를 통한 것이다. 

몇 해 전 학교에서 주최하는 고교생 소논문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어느 고교생도 논문의 출처는 엄마가 어디선가 받아온 것이다. 위의 사례는 필자가 직접 목격한 바 있다. 자녀, 부모, 교사, 교육 서비스 컨설팅 업체 모두의 공동 작품이다. 물론 이런 일에 관해서는 서로 입 밖에 꺼내지 않는다. 묵시적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이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 대다수의 학생은 정상적으로 성적향상을 위해 노력을 경주한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학생부종합전형을 통해 지원 학교 및 학과를 선택하여 명문대학을 진학하는 학생들의 부모들은 소수의 상류 기득권층에 속하거나 중간 계급층에서 자녀 학업 스펙 욕망이 누구보다 강한 이들이다. 일반적인 보통 학부모보다 월등한 고급 정보력, 인맥 카르텔을 가진 부류라야 가능하다. 

학생부종합전형 불신이 깊은 가운데 이에 따른 비리 교사도 증가 일로에 있지만, 2021학년도 전체 모집인원의 44%를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선발하여 비율이 더 높아졌다. 금수저 자녀들에게 유리한 환경인 동시에 금수저 부모들의 딸바보, 아들바보 사랑은 비이성적인 방식을 택할 공산이 크다. 금수저 부모들의 자녀 스펙 편법 쌓기는 우리 사회를 불공정이 만연하고 신뢰 상실로 이끈다. 

딸바보, 아들바보 부모에게서 성장한 자녀들은 어떨까. 부모가 만들어준 스펙에 양심의 가책을 느낄까. 아니면 익숙한 나머지 당연한 일로 여길까. 부모는 투정을 부리건 무조건 다 받아주는 응석받이로 키우는 것이 옳은 방식이라 착각하는 것일까. “나는 딸바보야” 이는 자랑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딸바보, 아들바보를 자청하는 풍토가 되었다. 

발자크 문학 작품 중 내가 최고로 꼽는 <고리오 영감>의 가엾은 고리오 영감은 오늘날의 시류로 보면 딸바보 원조다. 소설의 줄거리를 축약하면 이렇다. 

딸에 대한 사랑이 유별난 고리오 영감은 왕년에 제면업으로 큰돈을 벌어 두 딸을 백작 부인, 남작 부인으로 신분 상승시켰다. 딸들은 낭비와 사치, 쾌락적인 귀족 생활을 즐기며 고리오 영감의 재산을 모두 탕진한다. 고리오 영감은 예순아홉 살쯤에 ‘보케르 하숙집’이라 불리는 하숙집에서 살며 남아있는 은그릇, 금 시곗줄, 보석, 고급 옷 등을 죄다 팔아 딸 둘의 욕망에 맹목적으로 헌신한다. 결국, 수중에 한 푼도 남아있지 않고 자식을 망쳤다는 후회의 눈물과 어리석은 자신을 한탄하며 몸부림치지만, 딸들은 이를 외면한다.

고리오 영감이 병이 들어 죽자 하숙집에서 기숙하는 인물 중 한 명인 20대 초반의 가난한 법학도 라스티냐크와 하인 한 명만이 영감의 장례를 치러준다. 딸들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의 이야기에서 요즘의 딸바보, 아들바보 부모들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SW

 

murphy8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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