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차이나머니’에 머리 숙이고 학생 입 막는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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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차이나머니’에 머리 숙이고 학생 입 막는 대학
  • 현지용 기자
  • 승인 2019.11.2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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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닌 18일 광주 북구 전남대학교 인문대 주변에 붙인 2019 홍콩 민주화 운동지지 대자보에 중국인 유학생으로 추정되는 이가 홍콩 시위 지지를 비난하는 낙서를 적은 모습. 사진 / 뉴시스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대한민국의 86세대는 1980년대 군부독재 시기에 피로 민주화를 일궈냈다는 뿌리 깊은 자부심이 있다. 특히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던 대학생들은 거리와 대학에서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외쳤다. 그렇기에 군이나 경찰의 대학 침범은 곧 민주화 성역의 침범임을 의미하게 됐다. 

엄혹한 독재시절을 살아남고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한 대학은 지역을 막론하고 민주화의 성지라는 자긍심이 깃들어있다. 그렇기 때문인지 최근의 홍콩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고 이를 표현하는 학생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중국 본토인 유학생들의 반달리즘과 모욕, 홍콩 유학생 협박에 대한 반발도 있으나, 무엇보다 이들의 목소리는 한국의 대학이 유지해온 자유·민주주의 가치가 후배 세대까지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반증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 학생들의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외침은 충분히 자긍심을 가질 만하다. 반면 최근의 홍콩 사태에 침묵하는 대학을 보면 그들은 “그 때만 민주화 세대였을 뿐인가”라는 의문을 들게 한다. 심지어 선배로부터 배워온 자유와 민주주의 정신을 표현할 때, 한국외대는 ‘대자보 금지령’으로 아예 학생의 입을 막아 학생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중국 출신 시사만평가 왕리밍(王立铭 ,필명 RebelPepper)이 지난달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와 디즈니, NBA의 홍콩 민주화 운동 지지 제재를 비판한 만평. 사진 / 트위터

80년대 대학생들은 군홧발에도 피 흘리며 싸웠다. 그렇기에 그들의 캠퍼스는 민주화의 총본산이었다. 그런데 왜 지금의 대학들은 자유·민주주의 훼손에 대해 침묵하거나, 군부독재도 막지 못한 학생들의 입을 막으려 하는 걸까?

한국교육개발원은 올해 5월 기준 국내 4년제 대학에 재학 중인 유학생은 11만1587명이라 집계했다. 이 중 중국인 유학생이 5만1313명(45.9%)이다. 지방 대학의 경우 중국인 유학생이 전체 학생의 절반을 넘는다는 말도 들리기도 한다.

이 같은 중국인 유학생 의존에 대해 대학은 한국인 학생 정원 제한 및 등록금 인상률 상한제를 이유로 변명한다. 하지만 외국인 유학생 유치는 무제한, 상한제로부터도 적용 범위 밖이다. 특히 유학생 등록금을 비싸게 올리면 수익은 배가 되기에, 대학은 지불능력이 있고 수가 많은 중국인 유학생 유치에 혈안이 된 것이다. 

이로 인해 대학은 중국인 유학생, 정확히 말해 ‘차이나머니(China-Money)’를 상전으로 모신다. 한류에 반해 한국을 배우러 온 세계의 유학생들은 한국이 문화 강국이 아닌, 돈에 머리 숙이는 현실임을 대학을 통해 깨닫는다. 그러니 홍콩 민주화 운동을 폄하하는 중국 본토인 유학생들은 버젓이 홍콩 유학생을 협박하고, 한국인 대학생에 동전을 던지며 모멸하는 것이다. 

소득이 낮은 다른 국가의 유학생들은 중국인 유학생 유치를 위해 대학이 높인 등록금 문턱에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현실이다. 훼손된 가치는 자유·민주주의뿐만 아니라 배움의 기회도 포함되겠다. 

지난 2008년 4월 27일 서울에서 열린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 당시 중국인 유학생 및 여행객 등 중국인들이 티벳 인권 탄압을 비판하는 인권운동가와 시민단체에 집단 린치를 가하는 폭력시위가 발생했다. 사진 / 뉴욕타임즈

돈에 머리를 숙이니 ‘속물적’이란 변명으로 면피는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한국의 대학이 차이나머니에 머리 숙인 블리자드, 디즈니와 다른 점은 그들이 가진 이름이다. 현실적인 대학 운영이 어떠할지라도 대학은 대학이다. 기업의 태생적인 목적과 본능이 이윤추구라는 집합체임과 달리, 대학은 사상과 학문을 논하고 지식을 쌓으며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와 상징을 가진 곳이다.

그렇기에 대학이 한국전쟁 휴전 이래 쌓아온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침묵한다면, 심지어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까지 입막음한다면 대학이라는 명패는 떼고 회사라 개명해야할 것이다. 그래야 학생을 돈으로 보고, 등록금 고공행진으로 대학 난립을 가열시키고, SKY니 서성한이니 대학을 서열화 시키게 만든 것도 이해할 수 있겠다. 

중국인 유학생들의 홍콩 시위 대자보 반달리즘 등 폭력성은 이미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 당시 티벳 인권운동가들에 대한 무차별 집단 린치로 증명됐다. 그때부터 한국은 이들이 버젓이 폭력을 저지르고도 활보할 수 있는 나라임을 보였다. 

정확히 말해 故 이한열 열사와 86세대 학생들이 쌓은 자유·민주주의라는 자존심이 타국민의 횡포에 의해 떨어질 때, 기성세대가 된 그들은 돈에 굴종하고 침묵했다는 민낯을 보였다. 정말로 지금의 대학이 과연 민주화 열사들의 후배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겠다. SW

 

hj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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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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