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죽어도 기업은 산다? 잠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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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죽어도 기업은 산다? 잠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9.11.2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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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해 사망 사고에도 최고 경영진 처벌 어려워 “반복 막아야”
지난 10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지난 10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지난해 12월 10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홀로 작업을 하다가 서부발전의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졌다. 그의 죽음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을 해야하고 외주화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비정규직의 현실을 우리에게 알렸다.

분노한 시민들은 '우리가 김용균이다',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노동자와 만납시다'라는 구호로 자신들도 김용균씨와 다를 바 없다고 외쳤고 가족과 시민들의 눈물겨운 투쟁은 마침내 '김용균법'(산업안전보장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최근에야 나온 경찰 수사 결과는 태안화력본부장 등 업체 관계자 11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넘긴 것으로 마무리됐다. 문제는 검찰에 기소된 이들은 태안발전 본부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원하청 업체 실무진급들이며 원청은 한국서부발전 대표와 하청업체 대표 등 핵심 경영진 7명은 모두 무혐의 처리가 됐다는 것이다.

故 김용균씨 추모위원회는 "몸통 대신 깃털만 처벌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위원회 측은 김씨가 숨지기 전 경영진이 8년간 12번의 산재 사고를 냈고 28번의 안전 시정요구를 묵살해 사실상 죽음을 방조한 책임이 있으며 중대재해 가능성을 알고도 인력도 보강하지 않고 안전설비를 갖추지 않은 것은 살인과 다름없다며 검찰의 재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문제는 현 형법,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직접적인 사망 요인과 관련된 이들에게는 죄를 물을 수 있지만 최고 경영진, 책임자를 처벌할 방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지난해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는 2,142명이었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기소된 건수는 699건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실형을 산 경우는 0.4%에 불과했으며 평균 벌금액도 400만원에 불과해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가 일어나도 실제 실형을 사는 경우는 0.5%에 불과하고 평균 벌금액도 400만원에 불과했다는 점이 이를 잘 말해준다.

이를 계기로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실질적 책임이 있는 개인사업주,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제정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고로 다치거나 죽는 일을 막고 기업들이 책임을 지게 하려면 결국 법으로 이들 기업과 경영진들에게 무거운 책임을 지워야한다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는 2017년 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다. 이 법률안은 위험방지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업주, 경영책임자는 물론 인허가 공무원에게도 무거운 형사책임을 지우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가 위험방지 의무를 어겨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기업에도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이 부과되며, 특히 경영책임자가 명시적, 묵시적으로 위험 방지 의무를 소홀히 하도록 지시한 경우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해당 기업의 전년도 수입액의 10분의 1 범위 내에서 벌금을 가중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역시 발의한 지 3년이 되어가도록 법안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내년 1월부터 적용되는 김용균법에도 안전조치를 위반한 사업주의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해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원청 및 하청 사업주에게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내게하는 현행법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형 확정 후 5년 이내 같은 죄를 범하면 그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하는 것을 새로 추가했다.

또 사망 사고 발생시 안전책임자뿐 아니라 회사에도 함께 부과하는 벌금의 상한선을 종전 1억원에서 10억원으로 대폭 상향하고 안전 및 보건조치 위반으로 노동자를 사망하게 한 자는 법원에서 유죄 선고를 받을 시 수강명령을 병과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 법안 역시 사업주 및 기업들에게 면죄부를 줄 여지를 남긴 것은 물론 현행법과 큰 차이가 없어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법안 제정 시 '1년 이상 징역' 등의 '하한형'으로 해야한다고 노동자들이 요구했고 정부도 이를 따르겠다는 식으로 말을 했지만 국회에서 논의가 되면서 이 부분이 빠진 채 현행법 그대로 처벌을 유지했다. '7년 이하 징역'이라고 정해놓으니 형을 가장 가벼운 수준의 형벌인 벌금이나 집행유예로 끝내는 일이 다반사가 됐는데 이것이 고쳐지지 않았다. 가중처벌을 새로 만들어 처벌이 강화됐다고 말하지만 가중처벌은 결국 같은 사업장에서 같은 사람이 다시 문제를 일으켰을 때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원청이나 사업주의 처벌을 강화한 것이라고 볼 수 없고 근본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도 볼 수 없다. 실효성이 없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도 서약식까지 하며 약속을 한 법안인데 정부나 정치인들이 이 법을 통과시킬 의지가 없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범죄에 대한 처벌이 미약하기에 재범률이 높아졌다는 통계가 나오고 인권위의 권고도 나왔다. 처벌이 약하니까 충격 효과도 적고 위반을 하는 것이 오히려 사업상으로는 이익이니 안전조치를 안하고 그렇게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 반복된다. 제도 개선과 더불어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질 때 중대재해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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