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견본주택에 부는 '고급화' 바람… '사전예약제'가 씁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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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견본주택에 부는 '고급화' 바람… '사전예약제'가 씁쓸한 이유
  • 이보배 기자
  • 승인 2019.12.2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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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방객 줄세우기 옛말, '고급화' 전략 인기… '사전예약제' 도입 늘어
견고해진 '그들만의 리그', "안보고도 산다" 현금 부자 부추기는 '新 풍속도'
과거 견본주택을 방문한 내방객 수는 분양 흥행를 가늠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했다. 사진은 GS건설이 지난해 분양한 한 아파트 견본주택 내부. 사진 / 시사주간 DB
과거 견본주택을 방문한 내방객 수는 분양 흥행를 가늠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했다. 사진은 GS건설이 지난해 분양한 한 아파트 견본주택 내부. 사진 / 시사주간 DB

[시사주간=이보배 기자] 견본주택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다. 길게 줄을 선 내방객의 숫자로 청약 흥행을 예상하고, 여론의 관심을 집중시키던 과거와 달리 브랜드 이미지 강화와 '고급화'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는 것. 최근 그 전략 중 하나인 견본주택 '사전 예약제'를 도입하는 건설사가 늘고 있다. 

청약경쟁률 212.1로 올해 서울 청약경쟁률 1위를 기록한 '르엘 대치'가 바로 이 예약 방문 시스템으로 공개됐고, 이로 인해 사전 예약을 하지 않은 내방객들은 번호표를 뽑은 채 기다려야 했다.

또 현재 공급 중인 송파구 소재 고급 오피스텔 '르피에드'의 경우 100% 사전 예약제로 견본주택 내부를 공개하고 있으며, 앞서 한남동 외국인아파트 부지에 들어선 최고급 주택 '나인원 한남'과 '한남 더힐' 역시 100% 사전 예약제로 견본주택을 운영했다.

이와 관련 개포 주공 4단지를 재건축해 3375가구 중 255가구를 일반분양하는 '개포 프레지던스자이'도 오는 27일 견본주택을 개관, '사전 예약제'로 운영한다. 고급 아파트와 오피스텔에서 시작된 사전 예약제가 일반 아파트 분양 현장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물론 일반분양 물량이 적고 견본주택이 강남 한복판에 위치해 "효율적이고 안전한 관람을 위해 사전 예약제로 진행된다"는 건설사의 설명이 이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대형 건설사는 강남권에 주택전시관을 운영하고 있어 대기줄이 길어지면 일반인들의 통행에 불편함을 주고 안전사고 위험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견본주택 '사전 예약제'가 견본주택 조차 둘러보지 않고 청약 경쟁에 뛰어드는 이른바 '묻지마 청약'이라는 부동산 시장 분위기를 반영한 결과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실제 최근 분양 아파트들의 청약 결과를 살펴보면 견본주택 방문자 수와 상관없이 높은 청약경쟁률을 보인 곳을 발견할 수 있다. 롯데건설이 서울 대치동과 잠원동에 분양한 '르엘 대치'와 '르엘 신반포 센트럴'이 대표적이다.

1순위 청약 결과 최고 461대 1의 경쟁률로 올해 아파트 청약 시장에 새 기록을 남긴 두 곳은 각각 31가구 모집에 6600여개, 135가구 모집에 1만1000여개의 청약통장이 몰렸지만 1순위 청약 당일까지 견본주택을 다녀간 사람은 6000여명으로 청약 신청자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최근 분양을 마친 '더샵 파크프레스티지'는 견본주택은 한산했지만 높은 청약경쟁률을 기록하며, '로또 청약', '묻지마 청약'을 확인시켰다. 사진은 '더샵 파크프레스티지' 견본주택 외관. 사진 / 이보배 기자
최근 분양을 마친 '더샵 파크프레스티지'는 견본주택은 한산했지만 높은 청약경쟁률을 기록하며, '로또 청약', '묻지마 청약'을 확인시켰다. 사진은 '더샵 파크프레스티지' 견본주택 외관. 사진 / 이보배 기자

물론 두 곳의 견본주택은 '사전 예약제'로 운영됐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내방객들의 발걸음이 쉽지 않았던 점을 감안했을 때 예상 가능한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이달 분양한 '신길 더샵 파크프레스티지'는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를 보여줬다. 사전 예약제를 도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산한 분위기가 지속됐지만 청약 결과 1순위 최고 711.67:1, 평균 경쟁률 114.26:1을 기록, 올해 서울 청약경쟁률 5위에 오른 것.

해당 단지 뿐만 아니라 11월에 분양했던 '효창 파크뷰데시앙' 역시 견본주택은 한산했지만 청약 결과 186.81:1로 올해 서울 청약경쟁률 순위에서 세 번째를 차지했다. 내방객 수와 청약경쟁률이 비례하던 과거와는 확실히 양상이다.

서울 주요지역 청약은 분양가가 시세에 비해 월등히 저렴하기 때문에 당첨만 되면 '로또'라는 심리가 강해 굳이 내부 구조나 인테리어를 확인할 필요가 없어 "안보고도 산다"는 이른바 '묻지마 청약설'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아울러 최근 정부가 잇따라 내놓은 부동산 규제가 그들만의 리그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면서 청약이든 매매든 손에 현금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유리해 진 것도 '묻지마 청약'을 부추기는 이유 중 하나다. 실수요자가 아닌 투자 목적의 '현금 부자'들은 굳이 견본주택을 두 눈으로 확인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견본주택 '사전 예약제'는 '로또 분양'이 예상되는 지역의 경우 "어차피 청약 할 사람은 한다"는 건설사의 오만한 자신감과 '그들만의 리그'로 평가 받는 부동산 시장이 만들어낸 자화상은 아닐까. 내 집 마련의 꿈을 품고 사는 서민들에게 동기부여가 돼준 '견본주택'의 문턱 마져 높아져 버린 작금의 현실이 씁쓸하다. SW

lbb@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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