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장애인 차별 발언', 인권위 '미온 대처'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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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장애인 차별 발언', 인권위 '미온 대처' 논란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0.01.0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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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인정했음에도 진정 5건 모두 각하
인권위 "특정 피해자 없어 조사 불가", 장애인 "정치적 결정 아닌가 의심"
지난해 9월 사회복지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향해 장애인 단체 활동가가 '장애인 비하 발언'의 사과를 요구하며 기습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지난해 9월 사회복지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향해 장애인 단체 활동가가 '장애인 비하 발언'의 사과를 요구하며 기습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국가인권위원회가 정치인들의 '장애인 비하' 발언에 대해 국회의장에게 "주의 촉구 및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는 의견을 표명했지만 이와 관련된 5건의 진정에 대해 모두 '각하'를 결정하면서 장애인 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인권위는 지난달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국회의장에게 국회의원이 장애인 비하 및 차별적 표현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를 촉구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도록 의견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장애인 단체 등은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장애인 비하 발언을 한 정치인들을 상대로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정치권에서 말하는 것을 보면 저게 정상인가 싶을 정도로 정신장애인들이 많이 있다"고 말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그 말을 받아치며 "국민은 그 말을 한 사람을 정신장애인이라고 말한다"고 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모두 피진정인이 됐다.

또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미사일 도발에는 벙어리가 돼버렸다"고 말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김정은이 문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조롱해도 민주당과 문통 지지자들은 꿀 먹은 벙어리"라고 밝힌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 "조국 법무부장관은 정신병이 있다. 정신병자를 믿는 사람은 뭔가"라며 정신장애인을 비하한 박인숙 자유한국당 의원, 국정감사에서 한 의원에게 "병신 같은 게..."라고 말한 여상규 자유한국당 의원도 진정 대상이었다.

인권위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10조와 '장애를 이유로 장애인 또는 장애인 관련자에게 모욕감을 주거나 비하를 유발하는 언어적 표현이나 행동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32조 제3항을 근거로 들며 "이같은 표현 행위는 장애인을 열등한 존재로 낙인찍는 것일 뿐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 혐오를 공고화하여 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나 차별을 지속시키거나 정당화시키는 것으로 확장될 수 있기 때문에 용인되어서는 안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또 "피진정인과 같은 정치인 등은 인권 존중의 가치를 세우고 실천하는 데 앞장서 모범을 보여햐 할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로서 개인과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인 비유대상으로 장애인을 언급하며 장애인 비하 용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예방할 책임이 크다"면서 "국회의장은 국회의원들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조장하는 혐오, 차별적 표현을 사용하지 않도록 관심과 주의를 촉구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권위는 진정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피해자가 존재하고 구체적인 피해 구제가 가능해야하며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는 조사를 통한 구체적 구제를 할 수 없으므로 위원회법에 따른 진정사건으로 성립되지 않는다"며 5건의 진정 모두 '각하' 결정을 내렸다.

인권위 관계자는 "중요한 사항이기에 인권위가 의견을 제시했지만 진정에 대해서는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기에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라 각하 결정을 내린 것이다. 법은 피해자가 개별적으로 특정되어 피해 구제가 가능한 경우에 한해 조사가 가능하도록 했지만 이번 건은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아 조사를 할 수 없고 구체적인 구제를 하기도 어렵다. 국가인권위법상 진정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라고 각하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2일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인권위는 방송 등 언론매체를 통해 전국민에게 장애인에 대한 비하발언이 전달되고 그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들이 느꼈을 모욕감은 모두 배제한 채 인권위법상의 문구만으로 장애인의 차별행위를 판단했고 명백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행위조차 '시정권고'가 아닌 '의견표명'이라는 한발 물러선 입장으로 정치인들의 행위를 용인했다"며 인권위의 결정이 정치인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밝혔다.

조현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최초로 진정을 한 것이 지난해 1월이었다. 물론 중간에 여러 사람들이 추가가 되기는 했지만 오랜 시간이 걸렸고 공개도 회의 후 한 달이나 지나서야 했다.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의심이 드는 이유"라면서 "인권위는 '당사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법리적 판단으로 결정했지만 정치인들의 발언이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주는 모멸감, 수치심, 비관적인 인식의 재생산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처벌은 할 수 없어도 어떤 조치를 취해야한다는 것을 발표했어야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이다"라고 밝혔다. 

김철환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활동가는 "국회에 방안을 마련하도록 한 것에는 동의하지만 각하 결정이 과연 옳은 결정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진정을 낸 분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만이 많을 것이다. 진정 내용을 대부분 수용하고 차별이라는 판단도 했는데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며 각하를 시킨 것이 온당한가라는 생각이 든다. 인권위가 판단을 잘못한 것 같고 정치적인 생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도 든다"고 밝혔다.  

한편 전장연은 이 사례를 계기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의 개정을 요구함과 동시에 행정심판 청구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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