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큰 별' 지다…롯데 창업주 신격호 70년 경영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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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계 '큰 별' 지다…롯데 창업주 신격호 70년 경영史
  • 이보배 기자
  • 승인 2020.01.1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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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으로 이룬 성공신화, '재계 5위'까지 수직상승 눈길
남다른 카리스마 '현장경영'으로 일본·한국 오가며 사업
숙원사업 '롯데월드타워' 개장 2017년 경영일선 물러나
70년 경영인생, 두 아들 경영권 분쟁으로 말년은 '쓸쓸'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맨손으로 재계 5위 기업을 일궈낸 한국 유통업계의 '큰 별'이 하늘의 '별'이 된 것. 신 명예회장의 별세로 이병철 삼성회장, 정주영 현대 회장, 구인회 LG 회장, 최종현 SK 회장 등 '창업 1세대'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됐다. '별'이 된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의 발자취를 돌아봤다.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별세했다. 향년 99세. 신 명예회장은 1921년 경남 울산에서 태어나 1948년 일본 도쿄에서 롯데홀딩스의 전신인 롯데를 창업했다. 신 명예회장은 1967년 롯데제과로 국내에서 사업을 시작해 한일 양국에 걸쳐 식품·유통·관광·석유화학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으며 롯데그룹을 국내 재계 순위 5위 재벌로 성장시킨 바 있다. 사진은 신격호 명예회장의 생일 때 모습. 사진=롯데지주 제공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별세했다. 향년 99세. 신 명예회장은 1921년 경남 울산에서 태어나 1948년 일본 도쿄에서 롯데홀딩스의 전신인 롯데를 창업했다. 신 명예회장은 1967년 롯데제과로 국내에서 사업을 시작해 한일 양국에 걸쳐 식품·유통·관광·석유화학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으며 롯데그룹을 국내 재계 순위 5위 재벌로 성장시킨 바 있다. 사진은 신격호 명예회장의 생일 때 모습. 사진=롯데지주 제공

[시사주간=이보배 기자]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 재계발 비보가 날아들었다.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향년 9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는 것.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 중이던 신 명예회장은 최근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고, 19일 가족과 롯데 임직원들이 급히 병원을 찾았지만 이날 오후 4시30분께 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故 신 명예회장은 '맨손의 거인'으로 불리며 한·일 양국에 굴지의 기업을 만든 1세대 창업주다. '껌과 과자를 팔아 모은 돈으로 거대 유통공룡 롯데를 만들었다'는 꼬리표는 늘 신 명예회장을 따라다녔다. 

평생의 숙원사업이었던 롯데월드타워가 개장한 2017년 명예회장으로 추대되기 전까지 롯데와 70년을 함께한 것만 봐도 그의 남다른 경영철학을 엿볼 수 있다. 

신 명예회장은 1922년 경상남도 울산에서 5남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배움에 대한 열망으로 1942년 일본행을 택했지만 낮에는 신문과 우유배달을 하는 등 '주경야독' 생활을 이어갔다. 

1944년 아르바이트생으로 잠시 인연을 맺었던 하나미쓰라는 60대 노인으로부터 5만엔을 투자 받은 신 명예회장은 첫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2차 대전 미군기의 폭격을 받아 공장이 전소하는 불운을 맞게 된다. 

1945년 전쟁은 끝났지만 신 명예회장에게 남은 것은 빌려쓴 5만엔에 대한 차용증 뿐이었다. 신 회장은 포기하지 않고 사업에 열중했고, 세탁비누, 세수비누, 포마드, 크림 등 유지제품을 만들면서 성공을 맞았다. 

물자가 부족했던 그 당시 일본에서 유지제품을 불티나게 팔렸고, 신 회장은 공장가동 1년 반 만에 5만엔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19일 타계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젊은 시절. /사진=뉴시스
19일 타계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젊은 시절. 사진=롯데지주 제공

신 명예회장의 사업가 기질이 빛을 발한 것은 '껌'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패전국이었던 일본에는 미군이 머물렀고, 일본 아이들은 이들이 나눠준 껌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같은 시장상황을 단번에 파악한 신 명예회장은 껌을 만들기 시작했고, 껌이라면 없어서 못 팔던 시기에 큰 돈을 모은 신 명예회장은 드디어 자본금 100만엔, 종업원 10명의 법인사업체를 만들고 회사 이름을 '롯데'라고 지었다. 

당시 문학에 심취했던 신 명예회장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이름 '샤롯데'에서 따왔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이후 초콜릿시장의 성장성을 미리 내다본 신 명예회장은 유럽에서 최고의 기술자와 시설을 들여오면서 일본 초콜릿시장을 장악했고, 이는 롯데가 종합메이커르 부상하는 밑거름이 됐다. 롯데는 이후에도 캔디,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부문에 진출해 성공을 거듭했다. 

1960년대 한일 수교 이후 한국에 대한 투자의 길이 열리자, 신 명예회장은 1967년 대한민국에 '롯대제과'를 설립, 식품산업 현대화 및 국민생활 수준 향상의 계기를 마련했고, 1970년대 들어서는 식품부문을 확대하면서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냈다.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 △롯데햄·우유 △롯데리아를 설립해 국내 최대 식품기업으로 발전시키는 데 만족하지 않고 △호텔롯데 △롯데쇼핑의 설립으로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유통·관광산업의 현대화 토대를 구축한 것. 또 △롯데건설 △호남석유화학 △롯데기공 △롯데전자 △롯데상사를 설립해 국가 기간 산업에 본격 진출했다. 

1944년 첫 사업을 시작한 신 명예회장은 2017년 총괄회장 임기 만료까지 70여년을 롯데그룹 경영에 참여했다. /사진=뉴시스
1944년 첫 사업을 시작한 신 명예회장은 2017년 총괄회장 임기 만료까지 70여년을 롯데그룹 경영에 참여했다. 사진=롯데지주 제공

1970년대의 고도성장을 토대로 1980년대의 롯데는 유통·관광·식품산업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며 명실상부한 '한국 10대 기업'에 진입했다.  

이 시기에 신 명예회장은 롯데월드를 완공하고 호텔롯데부산과 롯데물산을 설립해 국내 유통·관광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고, 현대화에 총력을 기울였다. 아울러 롯데캐논과 한국후지필름 설립을 통해 첨단산업 진출을 가속화하는가 하면 그룹 내 문화 인프라 구축을 위해 롯데자이언츠와 대홍기획을 설립했다. 

1990년대 들어 유통·관광·식품산업에서 1위를 고수하며 내실경영과 과감한 투자로 글로벌기업의 기반을 마련한 신 명예회장은 1997년 말부터 시작된 'IMF'의 위기에도 업계 최고의 경쟁력과 우량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성장을 이어갔다. 

이는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신중하게 선택하고, 선택한 일에 대해서는 모든 역량을 집중해 전문화하는 신 명예회장의 전략이 이뤄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산업불모지나 다름없던 1960년대 기업보국의 정신으로 설립된 롯데는 2000년대 웅비기를 거쳐 업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 국내 재계 5위 그룹으로 우뚝 섰고, 2010년대에는 '아시아 TOP 10 글로벌그룹'이라는 비전 달성을 위해 적극적인 사업 확장과 해외 진출 가속화로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창립 50주년이었던 2017년에는 신 명예회장의 숙원사업이었던 '롯데월드타워'가 개장하면서 그의 평생 소원을 이루게 됐다. 당시 그해 4월 진행된 개관식에 참석하지 못한 신 명예회장은 한 달 뒤 롯데월드타워를 방문, 두 눈에 '롯데월드타워'를 담아갔다. 

롯데월드타워가 개장한 2017년, 故 신격호 명예회장이 타워를 직접 찾아 활짝 웃고 있다. 사진=뉴시스
롯데월드타워가 개장한 2017년, 故 신격호 명예회장이 타워를 직접 찾아 활짝 웃고 있다. 사진=롯데지주 제공

이같은 롯데의 성공신화 비결로는 신 명예회장의 남다른 경영철학이 꼽힌다. 고령의 나이에도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직접 지휘봉을 들었던 고집스런 현장경영 방침은 지난 2011년 당시 신동빈 롯데 부회장을 회장으로 승진시킨 후에도 계속됐다. 

반면, 일본에서 첫 사업을 시작한 이후 70년간 경영에 힘을 쏟은 신 명예회장의 말년은 순탄치 않았다. 2015년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의 경영권 분쟁이 불거지면서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에서 해임됐고, 2017년 국내 계열사 이사직에서도 퇴임해 경영에서 손을 놓게 된 것. 

또 2016년부터 불거진 롯데 경영비리 의혹으로 오너 일가를 겨냥한 공판에 출석하면서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기도 했다. 경영권 분쟁이 이어지면서 정신건강 문제가 공개되는 등 안타까움을 더했다. 

지리한 법정 공방 결과, 2017년 12월 징역 4년에 벌금 35억원을 선고받았으나 고령인 점 등 건강상의 이유로 법정 구속은 면했다. 이후 롯데월드타워 레지던스에서 소공동 롯데호텔로 거쳐를 옮긴 신 명예회장은 건강 악화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하늘의 '별'이 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 여사와 장녀 신영자 이사장,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 차남 신동빈 회장,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씨와 딸 신유미씨 등이 있다. 

장례는 롯데그룹장으로 치러지고, 이홍구 전 국무총리,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명예 장례위원장을 롯데지주 황각규·송용덕 대표이사가 장례위원장을 맡는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2일 오전 6시다. 발인 후 22일 오전 7시 서울 롯데월드몰 8층 롯데콘서트홀에서 영결식이 열린다. SW

lbb@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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