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어머니와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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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어머니와 밥
  • 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 승인 2020.01.22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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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예전에 본 드라마 <전원일기>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어머니(김혜자 분)는 아들 금동이의 학교 담임 선생님을 만나자마자 식사시간이 맞건 안 맞건 상관없이 국밥집으로 끌고 갑니다. 선생님이 학부모님의 이런 극진한 성의를 어찌 함부로 물리칠 수 있었겠습니까. 배가 고프건 안 고프건 숟가락을 들어야했습니다. 

여자 담임 선생님은 금동이 엄마 앞에서 의무적으로, 그러나 적극적으로 밥을 먹어야했습니다. 그런데 밥 먹기의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미약하게 흐르는 조짐이 나타났습니다.  

아무리 선생님이 젊었어도 우걱우걱 먹는 것도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절반 쯤 국밥을 비우고 숟가락을 놓으려 했는데, 그 순간!! 금동이 엄마는 선생님 국에 남은 밥을 다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다 비우라고 합니다. 아!!우리 한국인과 밥은 이렇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우리 가족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도 온통 밥이 주제이자 소재이었습니다. ‘밥은 먹었냐?’, ‘밥 드셨어요?’, ‘밥 좀 드세요.’ 밥 좀 먹고 산다, 밥을 제대로 못 먹고 산다, 밥맛 달아나, 밥값, 밥줄, 밥도 못 얻어먹을 놈, 밥벌레, 밥도둑, 밥정, 밥심, 밥보...어머니의 대화는 이런 것들이 3분의 2는 차지하는 것 같았습니다.

전 이런 어머니가 답답하고 창피하기까지 했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예술, 국제정세는 아니더라도 밥 이외의 이야기는 왜 못하실까? 혼자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아주 나중에 장철문 시인의 <어머니가 쌀을 씻을 때>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혼자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먼저 보낸 자식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절절한 사랑이 드러나 있더군요. 제게 형인 큰 자식을 먼저 멀리 보낸 울 어무이, 그 자식에게 평생 얼마나 밥을 먹이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으니까요.

“이 쌀 씻는 소리를 들을 수 없구나, 너는 바가지 밑에 앉는 이 그늘을 볼 수 없구나. 
내 아가, 에미 손으로 씻어서 안친 따순 밥 한술 멕여서 보내고 싶은 내 새끼야.”

우리 한국인에게 '밥 한번 먹자'는 말은 의례적 표현이면서도 특정 상황에서 의사소통을 충분히 대신 해줍니다. 딱히 모른 척하기 어려운 사람에겐 ‘밥 한 번 먹자’고 합니다. 모처럼 만난 모든 사람에게는 ‘밥은 먹고 다녀?’라 합니다. “저랑 밥 한번 드실래요?”는 이성에게 작업을 걸 때의 멘트, 누군가가 고마울 때도 “밥 한번 살게”, 누가 아프면 “밥은 꼭 챙겨먹어”라고 말합니다. 종편 TV드라마에서도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라는 게 있었죠. 서로에게 관심과 사랑이 깊은 연인에게는 이 말이 딱 맞아 떨어집니다.

밥 이상의 인간관계 매개체는 따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는 데, 1위로 중요한 건 먹는 것이니까요.

함민복 시인은 시가 겸손키로 유명합니다. ‘긍정적인 밥’도 마찬가지입니다.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된다". SW

erobian20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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