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칼럼] ‘강남 건물주’ 되는 것이 삶의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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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칼럼] ‘강남 건물주’ 되는 것이 삶의 목표?
  • 오세라비 작가
  • 승인 2020.02.03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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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시사주간=오세라비 작가] 서울 강남구의 빌딩숲을 보노라면 빽빽한 침엽수림이 떠오른다. 더구나 초고층 건물이 경쟁하듯 건축되고 있다. 이렇다보니 누구나 한 번 쯤 “저렇게 수많은 빌딩 중에 왜 나는 건물 한 채 소유하지 못했을까”라는 자괴감을 맛보며 한숨을 쉬어 봤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는 잠시뿐,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을 열심히 살아간다. ‘강남의 건물주가 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부를 늘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조차 불가능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언감생심 강남 건물주라니!

그럼에도 삶의 목표를 강남에서 번듯한 건물 한 채 소유하는 것에 둔 사람도 있다. “내 나이 현재 58세다. 남편이 정부 요직 최상층부에 있는 10년 동안 열심히 재테크해 70세가 되기 전에 강남에 빌딩 한 채 장만하자. 100세 시대 아닌가. 그런 다음 자식들에게 물려주면 그들은 평생 강남 건물주로 편히 살 것이다” 이런 염원으로 정경심 동양대 교수는 남편이 최고위직에 오르자, 강남 건물주가 되기 위한 경제 플랜에 박차를 가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2017년 5월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되자, 정 교수가 ‘내 목표는 강남에 건물을 사는 것’이라 문자메세지로 말한 사실이 법정에서 공개됐다. 빌딩 한 채가 보통 수백억 원대인데, 이를 소유하려면 엄청난 재테크 실력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인지 조 전 장관이 민정수석에 취임한 직후 정 교수는 사모펀드에 투자를 시작하였다. 이미 50억 원대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이들 부부의 자식 사랑은 보통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스케일이 대담하고 크다.

조국·정경심 부부는 대한민국 최고의 학벌에 정부 최고위층으로 명실상부한 엘리트계급이다. 욕망은 가진 것에 비례한다. 자식에게 그들끼리의 인맥과 카르텔을 활용해 장학금 독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스펙 만들어주기에 여념이 없다. 자식들이 부모의 바람대로 의사나 변호사가 된 후 강남에 건물만 소유한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그림이요 성공한 인생이다. 불쾌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생생하게 목도하는 기득권 세습의 방식이다.

기득권은 이미 세속적 성공을 누리고 있음에도 가지고 있는 자본의 힘을 자신의 욕망 충족과 유지를 위해, 또 그들의 자녀들에게 이전시키기 위해 안간 힘을 쓴다. 부자가 즐비한 현 정부의 인사들도 자녀 해외 유학은 당연하다. 한 해 학비만 수천만원에서 1억 원 가까이 드는 미국 대학으로 보내고, 본인들이 거주하는 강남 아파트는 몇 년 사이에 수 억 원이 상승한다. 주변이 다 이런 마당에 조국·정경심 부부가 강남 건물주로 되지 못하란 법이 어디 있으랴.

그는 공정한 법치 제도를 확립해야 할 업무를 수행 중인 자리에 있다. 하지만 한쪽 발은 공직자이자 지식인이요, 다른 쪽 발은 부르주아 삶을 유지하며 물질적인 성공을 위해 안간 힘을 쓰는 데 걸치고 있다. 스탕달은 부르주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기들의 작은 계획을 실현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이들 엘리트 계급은 특별한 선민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자신들의 방식이 옳다는 자기 정의감에 빠져있다. 이로 인한 도덕적·윤리적 정당성은 둔감해지고, 그들이 방패처럼 앞세우는 정의와 공정의식은 짜증스러운 데다 의심스러워진다. 이토록 물질적 추구를 노골화하는 것은 개인적인 행복은 만들 수 있으나, 우리 사회 대다수가 행복한 문명을 만들지 않는다. 영적인 행복은 강남의 건물주가 된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건물주가 돼 높은 장벽을 쌓아올리고 안락한 성 안에 거주하면서 명성을 누리고 ,자기 자신들이 중요한 존재임을 거리낌 없이 과시하는 것이 덕목은 아니다. 속물근성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다섯 단계의 욕구계층설로 유명하다. 인간에게는 선천적인 욕구 단계가 있다는 이론이다. 생리적인 욕구, 안전에 대한 욕구, 소속과 애정에 대한 욕구, 자기존중의 욕구, 그리고 마지막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다.

하지만 요즘 세태를 보면 자아실현의 욕구 다음 단계로 ‘강남 건물주’라는 단계가 하나 더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물질적 가치가 중시된다. 그러니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생겨나고, 초등학생들 장래 희망이 건물주라는 씁쓸한 조사도 있는 것 아닌가.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자식은 부모가 묵묵히 실천하는 행동을 보고 배운다는 의미다. 자식에게 하나부터 열에 이르기까지 손발 노릇을 하며 다 해주고 건물까지 물려주는 것이 미덕일까? 자식은 부모에게 진실로 무엇을 배우고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까.

필자는 빌딩을 가진 이들을 제법 알아봤다. 그들이 딱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느껴본 적은 그다지 없었다. 오히려 자식들이 하는 일 없이 놀고먹으며 부모의 재산에만 잔뜩 관심을 둬 분란이 그치지 않은 집이 흔하다. 그렇지 않으면 소유한 건물로 납부해야할 세금 부담 골머리를 앓는 이들이 더 많았다. 그들이 끌어안고 있는 불행이나 고통도 빌딩 높이만큼 컸다.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유산은 빌딩 보다 훌륭한 정신이다. 자식은 부모에게서 그 점을 보고 배우며 후대에 본인 또한 그런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다. SW

murphy8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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