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칼럼] ‘신종 코로나’ 마스크와 청각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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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칼럼] ‘신종 코로나’ 마스크와 청각장애인
  • 김철환 활동가
  • 승인 2020.02.04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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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환 활동가
김철환 활동가

[시사주간=김철환 활동가] 중국 우한시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감염증)이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달 30일 국제공중보건비상사태(PHEIC)를 선포했으며 우리나라도 2, 3차 감염자가 나오고, 확진판정을 받은 사람이 15명(2월 2일)이 나오는 등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WHO는 물론 우리나라 정부, 지방지단체 등에서 신종 코로나 감염 예방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손 씻기 일상화, 마스크 쓰기, 기침할 때 팔로 얼굴을 가리기, 다중 이용시설 자제 등이 그것이다.

전염병이 돈다고 일상생활을 멈출 수 없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안 갈 수도 없다 그러다보니 손을 씻는 것이나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대중 매체마다 손 씻기를 강조하고 있고, 길거리에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이다.

하지만 마스크 착용이 일반화되면서 위축되는 사람들이 있다. 독화법(oral method)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청각장애인들이다. 

일반적으로 청각장애인 하면 ‘수어(手語)’를 떠올린다. 하지만 수어가 아닌 구화(口話)로 소통하는 경우도 있다. 구화는 듣지는 못하지만 발성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상대의 입모양을 읽어 소통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독화법이다. 즉, 독화법은 상대의 입술 모양이나 얼굴 표정 등을 파악하는 방법(기술)인 것이다. 

독화법은 구화를 하는 청각장애인에게 꼭 필요하다. 수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사람에 따라 독화법을 같이 사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독화법은 청각장애인들이 소통을 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상대가 마스크를 쓰고 말을 할 경우이다. 마스크를 쓰면 입술이 가려서 말을 읽어내지 못한다. 이것이 무슨 대수냐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독자 여러분이 사정이 있어서 귀를 막아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수어 등 별도의 소통 방법을 익히지 않았다면 상대와 소통은 쉽지 않을 것이다. 상대가 마스크를 쓰고 말을 할 경우 입술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못해 난감한 상태가 된 청각장애인들의 심정이 그럴 것이다.

마스크 사용으로 청각장애인이 겪는 불편은 많다. 불편을 넘어 소외를 받거나 불이익을 당하기도 한다. 마스크를 쓴 가게 주인이 물건 값을 이야기하는 경우, 직장에서 마스크를 쓰고 업무 지시를 하는 경우, 마스크를 쓴 주차직원이 주차를 지시하는 경우, 공공기관 직원이 마스크를 쓰고 민원을 보는 경우 등 청각장애인들이 마주하는 난감한 상황들이다. 경우에 따라서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얼마 전 한 청각장애인이 공무집행 방해죄로 입건됐다. 비장애인과 소통이 안 되어 옥신각신 하는 과정에 경찰이 출동했고, 그 과정에서 청각장애인이 출동한 경찰의 마스크를 억지로 벗겨버려 연행된 것이다. 하지만 수어통역사가 오자 청각장애인은 죄가 없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당시 경찰이 수어를 할 줄 몰랐으며, 마스크를 낀 채 무어라고 지시하는 것 같아 마스크를 벗겼다는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도 다르지 않은데, 일본 언론에서 공감을 얻고 있는 글이 우리 언론에서 소개된 적이 있다. 소개된 내용은 일본에서는 봄이 되면 꽃가루 등으로 마스크를 많이 끼는데 그때마다 청각장애인들의 의사소통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글을 올린 청각장애인은 “청각장애인들은 입술의 움직임이나 표정으로 상대의 감정이나 말을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면 사람과 단절된다.”며 배려를 당부하기도 했다.(세계일보, 2017.02.27.) 

특수효과의 선구자라고 할 만한 큐브릭(Stanley Kubrick, 1928~1999) 감독의 1986년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 이런 장면이 있다. 우주에서 인공지능 컴퓨터 할(HAL9000)이 통제에서 벗어나자 두 승무원이 컴퓨터를 없애기로 한다. 하지만 컴퓨터는 이들의 대화를 입술모양으로 읽어내고 컴퓨터가 승무원을 없애버린다.(최근에는 입술모양을 판독하는 AI도 나왔다) 이처럼 독화법이 가끔 영화 등에서 오락거리로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청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독화법은 오락거리가 아니다. 구화를 하는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에 필수적인 요소이고 인간다움을 지키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청각장애인을 만날 때마다 마스크를 벗을 수는 없다. 요즘같이 전염병이 돌 때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다. 청각장애인임을 알았을 때, 소통이 어려울 것이라 판단하여 회피해버리면 안 된다. 마스크를 벗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글씨를 쓰면(필담) 어느 정도는 소통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소통의 창은 열린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마스크를 썼더라도 표정이나 몸동작, 글씨 등을 사용하여 대화하려는 노력이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지금의 상황은 분명히 좋지가 않다. 이러한 시기를 잘 넘기기 위해서는 각자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럴 때 일수록 우리 주변을 살필 수 있는 마음이다. 신종 코로나 감염증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은 없는지, 청각장애인들처럼 마스크 착용으로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없는지를 말이다. SW

k6469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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