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잘한다, 잘해!" 정말일까요?
상태바
[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잘한다, 잘해!" 정말일까요?
  • 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 승인 2020.02.25 13:28
  • 댓글 0
  • 트위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pixabay
사진=pixabay

[시사주간=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오늘은 한 여인의 비운의 스토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에 유명한 TV 탐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도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정말 기가 막힌다는 생각을 가졌는데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국내에서 아주 어렵게 살던 한 여성이 주한미군 한 사람을 만나 결혼해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아이도 하나 두었지만 잘 살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은 미국으로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이혼을 했고, 여자는 타국에서 그야말로 혈혈단신(아, 아기가 있으니 단신은 아닌가요?)  외롭고 힘겹게 살아야 했습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어느 날 끔찍한 비극이 생깁니다. 아이가 자라니까 여인은 아이 혼자 방에 두고 일을 나가기도 했는데 이게 문제였습니다. 선반 위에 올려놓았던 TV가 앞으로 쓰러지면서 아기가 그만 깔려 숨지고 만 것입니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이 엄청난 사태에 어찌할 바를 몰랐고 겨우 이웃의 도움으로 경찰을 부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어에 아주 약하던 이 엄마, 경찰이 어찌된 일이냐고 묻자 통곡과 함께 “내가 죽였어. 아이는 내가 죽였다!”라 울부짖은 겁니다. 

그게 미국 경찰에게 통역이 됐고 그 여성은 ‘1급살인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내가 왜 아기를 죽이냐?"는 여인의 주장에 경찰은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당신은 이 아기가 짐이 돼 없었으면 하고 바랐다. 늘 사랑스럽게 키웠다는 증거를 대라".

이런 걸 두고 ‘환장할 노릇’이라고 하지 않나요? 결국 그 여인은 기소 후 실형을 언도 받고 긴 세월을 복역해야 했습니다.

우리의 언어습관 중에는 이런 게 있습니다. 어떤 일의 결과가 나쁘게 나올 때 자기 가슴이나 머리를 치며 ‘내가 죄인’ 또는 더 심한 말로 ‘내가 죽일 놈’ 어쩌고 하는 말로 책임을 감수하려고 합니다. 흔히 쓰는 반어법이죠.

왜 엄마, 아빠가 말 안 듣는 아이들 야단칠 때도 이렇게 말하잖아요. “잘한다, 잘해!!” 이게 절대 잘한다는 칭찬이 아니라는 건 하는 사람, 듣는 사람 잘 압니다.

제가 어릴 때 들었던 할머니들의 이 말도 한동안 이해가 안 됐습니다. 아기들은 다 예쁘잖습니까. 그런데 할머니들은 남의 집 아기, 주로 신생아를 포대기에서 뒤적뒤적 얼굴을 찾아서 한다는 말이 “고놈 참 밉게도 생겼다!” 이러더라니까요. 설령 못생겼더라도 밉상이라 하면 절대 안 될 텐데, 왜 저렇게 말하지? 참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이 반어법은 우리 전통사회에서 체면을 차리는 상황에서도 나오곤 했습니다. 요즘엔 잘 쓰지 않는데요, ‘쌀 팔러 간다’고 하면, 이게 진짜 파는 것이 아니고 산다는 거였습니다. 대부분 농사를 짓던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 쌀이 부족해 매입해야했던 사람은 이게 수치스럽게 느껴졌던 모양입니다.

말이라는 게 표현하려는 내용과 반대로 하면 오히려 어떤 의미를 강조하고, 수사효과를 높이는 경우가 생깁니다.  겉으로는 꾸짖고 부인하면서 속으로는 칭찬하고 인정하는 것이 있고, 그 반대로 겉으론 칭찬하면서 속으론 비난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니 겉과 속을 읽는 것이 혼동되지 않아야겠습니다.

소월 시에 있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이 구절은 사실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슬플 때라는 뜻이 됩니다.

“빨리도 오는군!”(늦게 오는 사람에게), “쳐봐, 쳐봐!”(때리라는 말 아니고), “그래, 죽여라! (‘너 죽을래?’ 하는 사람에게 크게 대드는 말) 하하! 주변에서 자주 듣는 반어법들입니다. SW

erobian2007@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