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 “그 아새끼들이 애국자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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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칼럼] “그 아새끼들이 애국자구먼”
  • 양승진 논설위원
  • 승인 2020.03.0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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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단둥과 북한 신의주를 연결하는 압록강철교(왼쪽)와 단교에 눈이 왔다.
중국 단둥과 북한 신의주를 연결하는 압록강철교(왼쪽)와 단교. 사진=양승진 논설위원

[시사주간=양승진 논설위원] 북한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의전 서열 3위인 박봉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이 내각총리로 있을 때다. 하루는 탈북자들의 송금문제가 대두된 적이 있다. 박 내각총리가 탈북자들이 송금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얼마나 되는가하고 물으니 한 참모가 대략 한화로 500억원(4170만달러) 정도 됩니다했더니 박 내각총리가 무심결에 그 아새끼들이 애국자구만이라는 일화가 있다.

북한당국도 탈북자들이 송금하는 것을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또 브로커(북한화교 또는 중국인)들이 수수료 명목으로 최고 50%까지 떼거나 아니면 아예 잠적하는 일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예전에는 20~30%를 뗐으나 탈북이 어려워지면서 이것도 덩달아 오른 셈이다.

서울에 사는 탈북자가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100만원을 보내면 수수료를 떼고 50만원 정도를 받는다. 중국 계좌 주인이 먼저 떼고 북한에 들어가 있는 브로커가 또 떼게 되는데 위험도에 따라 비용이 상승하는 구조다.

요즘같이 신종코로나로 국경이 봉쇄되면 송금 수수료는 그야말로 천정부지로 치솟게 된다. 최근엔 북·중 접경지역에서 활동하는 브로커들을 국정원과 내통했다는 죄목으로 잡아들여 지금은 이 시장이 살벌한 지경이 됐다.

박 내각총리에게 참모들이 얘기한 송금액 500억원은 누적 송금액으로 보인다. 통일부가 탈북자들을 집계하기 시작한 1998년을 기준으로 약 20년 동안 매년 25억원, 매월 2억여원이 올라간 듯하다. 한국 돈 100만원이면 북한에서 대략 780만원 정도다. 쌀 가격이 15000원 정도 하니까 한 가족이 월 20을 먹는다고 가정할 때 브로커 비용을 떼고도 3년 동안 밥은 먹을 수 있는 돈이다.

이렇게 시작된 대북송금 얘기는 수수료까지 산정할 만큼 가깝게 진행됐다. 하지만 남북의 은행격차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한국에서는 길거리마다 ATM기계가 있어 아무 때고 입출금이 가능하지만 북한은 고작 군 단위에 은행이 하나씩 있을 정도고, 주민들 입장에서는 입출금 할 게 없으니 은행은 있으나 마나한 상태다.

더 웃긴 건 한국에서 송금을 하면 북한에서는 은행원이 이를 북한돈으로 바꿔 각 가정에 배달을 하는데 이를 핸드폰으로 촬영해 한국으로 전송하는 방법을 쓰기로 했다는 점이다. 북한당국도 브로커들이 하는 수법을 다 알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어쨌든 대북 송금과 관련해 탈북자들에게 의중을 물어봤더니 만나는 탈북자마다 밑도 끝도 없이 안 된다는 애기만 했다. 설령 송금사업이 시작된다 해도 북한을 어떻게 믿고 또 돈을 받은 가정에서는 불안해서 살 수 없게 된다는 얘기였다. 그러잖아도 탈북자 가족이라고 경계대상인데 돈까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 가만두겠느냐는 게 한결같은 지적이었다. 북한을 너무 순진하게 본다면서 핀잔까지 줬다.

결국 대북송금사업은 대북제재로 인해 더 이상 진척이 되지 않았고, 실무를 맡았던 곳에서는 지금쯤 이 자료가 캐비닛에서 자고 있을 듯하다.

일이 이렇다보니 요즘엔 대북송금이 북한의 앵벌이형으로 변질됐다. 보위부원들이 탈북자 가정을 방문해 한국에 있는 탈북자에게 송금하라며 수시로 괴롭히는 모양이다. 위에서 할당이 내려왔는지 얼마간 삥을 뜯기 위함인지 전화기까지 빌려주면서 재촉한다고 한다.

안에서나 밖에서나 누가 애국자인지 참 모호한 지경이다. SW

ysj@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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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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