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아, 만년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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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아, 만년필
  • 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 승인 2020.03.1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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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ixabay
사진=pixabay

[시사주간=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500년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 화가 말고도 10여 가지 이상 예술과 과학 분야 전문가인 이 양반이 만년필 연구가이기도 했네요. 그가 중력과 모세관 현상을 이용, 현대에 전해지고 있는 만년필을 만들어 단면도를 남겼습니다.

만년필과 엇비슷한 비슷한 필기구는 10세기 이집트에 있긴 했습니다. 거꾸로 뒤집어도 잉크가 쏟아지지 않는 필기구였다고 하네요. 만년필이 아직 이름처럼 만년(萬年)은 못 됐지만 천년(千年)의 역사는 있으니 '천년필'로 불러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마치고 중학생이 되자 가장 폼이 나는 건 초딩 꼬마애들이나 주로 쓰는 침 묻혀 쓰는 연필 아닌 잉크로 글씨를 쓰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그 쇠펜(철필?)은 걸핏하면 끝이 뭉개지거나 부러져 제대로 써지지 않고 글씨가 번지거나 심지어 공책(노트)을 찢기까지 했습니다. 손가락에 잘못 박혀 자동 문신을 만들기도 일쑤였고요.

잉크는 또 운반과 사용, 보관이 얼마나 힘들던가요?! 버스 안 책가방에서 샌 잉크가 가방 들어준 여학생 하얀 교복을 망쳤다는 등의 에피소드는 전 국민이 1편씩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시절 가장 부러운 건 파일로트(파카였을까...?) 만년필을 가진 한 반의 3~4명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만년필을 윗주머니에 머리통이 나오도록 턱 꽂고 으스댔는데, 2개 이상을 꽂은 친구들은 이광수나 이순신만큼 위대한 영웅처럼 보였습니다.

드디어 저도 전세계 만년필 사용자들 그 빛나는 대열에 들어선 대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대학생 신분으로 방송국서 돈 받고 극본을 쓰는 작가가 됐는데요, 맨 먼저 받은 글값으로 아, 천년만년을 몽매에도 그리던 만년필을 산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자식이 돈 벌면 먼저 부모님 내의부터 사드려야 하는 이 나라의 지엄한 국법을 어기면서 제 물건, 만년필부터 샀으니 제 불효 죄는 실로 막심합니다.

제가 썼던 코미디 대본들입니다. 40년이 훨씬 넘은 것들도 많습니다. 사진=김재화
제가 썼던 코미디 대본들입니다. 40년이 훨씬 넘은 것들도 많습니다. 사진=김재화

방송코미디 대본이라는 것이 무슨 지고한 문학성은 없는 대신 많은 양의 원고지에 고쳐 쓰고, 다시 쓰느라 만년필을 수도 없이 놀려대야 했습니다.

싸구려 만년필이니 당연히 그러랴 했습니다만, 글을 달리는 도중에 잉크가 막혀 글씨가 나오질 않으면 ‘주옥같은 아이디어’가 미처 문자로 완성되지 못하고 깊은 머릿속에 사장되고만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이후 제법 작가 소리를 들을 때 제 만년필사(史)에 영원히 남아 있는 일이 있었는데, 어마어마어마하게 고가품인 몽블랑 만년필을 산 거였습니다. 이 귀족 만년필은 먹는 밥(잉크)도 범상치 않아 아주 질 좋은 고급 잉크를 주입해 주어야 명문장을 써주곤 했습니다.

나중에 타자기랑 '와뿌'(워드프로세서의 일본인들 발음)도 구입해 썼는데, 여전히 몽블랑만년필로 쓴 원고가 옥고(玉稿)가 되는듯하여 컴퓨터가 일반화 됐을 때도 육필을 병행해서 썼습니다.

만년필 이야기를 이리도 길게 늘어놓는 이유가 있냐구요? 네, 있습니다.

이 몽블랑만년필을 드디어 찾았습니다. 이사 후 1년만에요. 사진=김재화
이 몽블랑만년필을 드디어 찾았습니다. 이사 후 1년만에요. 사진=김재화

이 몽블랑만년필을 이사 후 1년 만에 가까스로 찾아냈습니다. 사실 깊은 곳에 너무나 잘 두었다가 행방을 몰라 낑낑댔던 것이죠.

요리사나 검투사들은 칼, 군인이나 암살꾼들은 직업상 총을 쓰잖습니까. 흔히 총칼보다 무섭다고 하는 펜을 저도 굴렸었다 이겁니다. 그런데 제 펜은 누구 심장을 노리거나 상처를 입히지 않고 그저 웃음 정도를 만들어냈습니다.

옛 무기, 만년필 다시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 또 적잖은 지난 세월 애환도 보여 오랜만에 만난 자식인양 왈칵 끌어안고 입맞춤까지 했습니다.

“아, 네가 내 두 자식 분유값 기저귀값 다 벌어줬고 예쁜 아내 더 예쁘게 보이도록 옷가지도 사 입혔구나.
고맙고 또 고맙다! 배고프지 않아? 잉크 먹여줄까?” SW

erobian20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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