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쿠팡, '사실 무근' 아닌 '책임' 보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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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쿠팡, '사실 무근' 아닌 '책임' 보여야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0.03.1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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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맨' 김모씨 '허혈성 심장질환' 사망, 열악한 환경 드러나
쿠팡 "사인은 해석하기 나름, 과로라 생각된다면 그게 맞을 것" 모호한 입장
"심장질환, 과로 때문 아니다" 보도는 "오보", 노조 주장 "주장일 뿐" 일관
지난 18일 쿠팡 노동자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쿠팡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증언했다. 사진=뉴시스
지난 18일 쿠팡 노동자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쿠팡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증언했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지난 3월 12일 새벽 2시, 경기 안산시의 한 빌라 건물에서 '쿠팡맨'으로 근무하던 김모(45)씨가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는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으며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 '허혈성 심장질환'이 사인으로 밝혀졌다. 허혈성 심장질환은 과로와 스트레스, 업무 부담감 등이 발병 요인으로 꼽히고 있는 질환이며 김씨는 관상동맥의 4분의 3 정도가 막혀있는 상태였다.

김씨는 올 2월 중순 경 비정규직으로 채용된 후 3개월간의 트레이닝 기간을 거치던 중이었으며 일반 쿠팡맨의 50~60% 정도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고 쿠팡 측은 전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배달 물량이 엄청나게 늘어난 상황에서 50%의 분량은 사실상 보통 때의 배정 물량과 맞먹는 것이며 50% 적게 준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쿠팡맨들의 이야기다.

지난 18일 열린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 기자회견에서 노동자들은 쿠팡의 무리한 근무체계를 낱낱이 밝혔다. 해마다 1인당 배송 물량이 증가하면서 한 가구당 배송기간이 더 길어지고 그만큼 휴식시간은 사라진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여파로 배송량이 더 늘어났다. 대부분 5분 이내, 길어야 10~20분 안에배송이 이루어지다보니 사실상 쉬는 시간 없이 근무를 해야하는 것이다.  

새벽배송이 늘어나자 쿠팡은 '나이트직'을 새로 만들었다. 비정규직에게 할당하는 물량의 75%를 처리하게 한 것이다. 이들은 더 많은 물량을 처리해야 임금이 오르고 일반 비정규직으로 계약할 기회를 얻는다. 숨진 김씨의 경우 '트레이닝'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재계약'을 미끼로 한 쿠팡의 무리한 경쟁 속으로 들어간 것이었고 결국 숨을 거두었다. "나이트는 비정규직 전환을 위해, 비정규직은 정규직 전환을 위해, 정규직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 쿠팡맨 쥐어짜는 쿠팡만 웃는다". 회견에 참석한 한 노동자의 말이다.

쿠팡은 김씨의 죽음에 대해 "지금은 유족의 뜻을 존중해 최선을 다해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인의 프라이버시이기에 자세한 것을 말할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고 노조 측의 주장에 대해서는 "노조의 주장일 뿐, 사실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쿠팡은 김씨의 심장질환이 과로와 압박감 등으로 인한 것이 아니냐라는 질문에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해석하기 나름인 것 같다. 기자님이 '과로와 압박감 때문이다'라고 생각하면 그게 맞는거다. "라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모호한 입장을 밝혔다.

이런 가운데 한 매체에서는 쿠팡 관계자가 "허혈성 심장질환을 꼭 과로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관상동맥이 이렇게 막혔다면 이미 오래 전부터 징조가 있었을 수 있는 것 아니냐"라는 말로 회사의 책임이 아니라는 식의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물론 쿠팡은 이에 대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오보다"라고 밝혔고 해당 기사는 내려간 상황이다.

그러나 쿠팡이 김씨의 사인에 대해 애매모호한 입장을 보이는 것 자체만으로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은 무의미하게 됐다. 쿠팡이 해야할 말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가 아니라 '책임을 지겠다'는 말이다.  아무리 비정규직이라도 자신의 회사를 위해 일하다 사망한 사람이라면 책임을 먼저 이야기해야하는게 도리다.

쿠팡은 아직 '책임'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도리어 사람이 죽어도 그 원인을 알고 고치려는 게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면 그게 맞겠지'라는 식으로 넘기려하고 있다. 이런 쿠팡의 자세를 보면 문제의 그 말은 입으로 말하지 않았을 뿐인, 쿠팡의 속마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쿠팡맨'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어려움을 증언한 것에 대해서도 '노조의 주장일 뿐, 우리는 그렇지 않다'로 일관하는 것도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다. 배송 물량의 급증으로 '50%제'가 무의미해진 상황임에도 쿠팡은 '우리는 신입에게는 50%만 한다'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인원을 충원한다고는 하지만 충원은 오히려 '나이트제'로 대표되는, 비정규직간의 경쟁을 부추길 뿐이다. 

그들은 변하지 않으려한다. 사람이 힘들어해도, 사람이 그만두어도, 심지어 사람이 죽어도 그 빈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채우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이다. 변화없는 쿠팡 아래 쿠팡맨들은 오늘도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다.

"코로나19로 늘어난 물량과 배송을 데이터로만 표현하는 그 곳에는 사람이 없다. 고객을 위한 편한 서비스 '새벽배송'은 있어도 배송하는 쿠팡맨을 위한 휴식과 안전은 없다. '계약직'의 존재는 불안과 경쟁을 유발했고 '레벨제도'라고 하는 직무급제는 그 경쟁을 무한 가속했다. 더 이상 누군가의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자본의 탐욕 앞에 무한질주와 비인간적 노동에 내몰리는 쿠팡맨이 없도록 해야한다". 기자회견에서 나온 쿠팡맨들의 목소리다.

'사람을 위한 편한 서비스'는 고객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같이 일하는, 회사의 이름을 건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쿠팡은 '차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쿠팡에게 필요한 것은 '최선'이 아니라 '책임', 그리고 '일하는 사람을 위한 서비스'다. 계속 '사실 무근'의 뒤에 숨어있지 말아야한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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