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칼럼] 이(利)만 남아 종간 합궁하는 정치판 어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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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칼럼] 이(利)만 남아 종간 합궁하는 정치판 어찌할까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20.04.07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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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는 행하기 어렵지만 보람있는 일
공리활동을 하면서 이(利)를 취해야
사진=국회 홈페이지 이미지 자료실
사진=국회 홈페이지 이미지 자료실

[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의(義)는 ‘righteousness’, 즉 의로움을 말하는 것이다. 불법을 행하는 자를 보면 모른척하지 말고 타이르고 어려운 자를 보면 도우라는 말이다.

의는 정의, 대의(大義)란 말로 '견득사의(見得思義)'란 말처럼 재물을 취해도 의로운 것인가 불의로 취한 것인가로 나눠서 취하는 것이다. 정치 혹은 경제활동을 해도 모리배(謀利輩)가 되지 말고 공리활동을 하면서 이(利)를 취하라는 말이다. 이득을 취하는건 인간 본연의 태도다.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공적인 분야로 들어가면 달라진다.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의 사사로운 이득 챙기기는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

《사회계약론》,《에밀》등을 쓴 장-자크 루소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과 또한 마음에 상처로 남아있는 사건들을 회상하며 정리한 기록인《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서 죽을 때 모두 놓고 떠나게 되는 것이 아닌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을 얻기 위한 노력을 이미 마흔 살 때부터 했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의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베푼 의를 계속 베풀어야만 하는 구속력을 갖게 되는 순간, 의를 행할 때 느끼는 즐거움이 짐처럼 느껴지고 만다고 아쉬워 한다.

또한 의를 행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마음이 맛볼 수 있는 가장 참된 행복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런 행복은 이미 오래 전에 자신의 능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 놓이게 되었고 지금 자신의 처지에서는 의미있게 의를 행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한탄한다.

이처럼 의는 행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인간은 의로운 행동으로 사회에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살아가면서 생긴 수많은 상처를 의를 통해 안식처를 마련하고 싶어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의는 강력한 중심의 위치에서 이(利)를 지배한다. 더러워져 가는 삶의 때를 응시하고 기억하도록 만들어 정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자존을 옹립하고 실존의 험상궂은 패러독스를 단번에 깨버리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의가 우선인 세상, 아니 의만이 정의인 세상은 그러나 왠지 스산하다. 그 까닭은 의가 주는 고(固)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의에 이를 접붙여 종간 합궁이라도 해보려 몸부림치는 것이다. 하지만 의는 없고 이만 남아 이리붙고 저리 붙어 국민을 우롱하는 정치판은 어찌 봐야 할까. 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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