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 함정수사를 허하라" 높아지는 여론
상태바
"디지털 성범죄, 함정수사를 허하라" 높아지는 여론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0.04.20 16:40
  • 댓글 0
  • 트위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대 소녀 위장 가입' 외국은 보편화됐지만 한국은 '불법'
범죄유발 함정수사 '위법' 판결 영향, 모니터링에만 의존
경찰청 "공감대 형성되어야 가능", 신중함 속 도입 가능성 열어
성착취 범죄를 저지른 조주빈이 검찰에 송치된 지난달 25일, 한 시민이 종로경찰서 앞에서 조주빈과 가담자들의 처벌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성착취 범죄를 저지른 조주빈이 검찰에 송치된 지난달 25일, 한 시민이 종로경찰서 앞에서 조주빈과 가담자들의 처벌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최근 'n번방'으로 대표되는 성범죄, 성 착취 사이트 범죄를 잡기 위해 '디지털 함정수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신속한 적발을 위해서는 범죄자들이 범행을 하려 할 때 바로 체포할 수 있는 '유인수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적법성 문제 때문에 도입이 어렵다는 입장이 있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지난 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아동으로 위장한 수사기법 허용하고, 지속적 수사시스템 구축해야 성착취에서 아이들을 구합니다'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온라인 성범죄조직에 짓밟히기 전에 우리 아이들을 구하려면 수사관들에게 채워진 족쇄를 먼저 풀어달라. 눈앞에서 짓밟히는 아이들을 포기하는 것이 가장 야만적이다. 더도 덜도 말고 마약 수사 기법처럼 허용해달라"고 밝혔다. 

외국의 경우 수사관이 여고생을 가장하고 채팅방에 들어가 미성년자의 성을 매수하려는 남성들을 적발해 체포하는 예가 많지만 국내의 경우 이 부분에 제약이 많다. 범죄를 저지를 생각이 없는데도 말이나 행동 등으로 범죄를 저지르도록 유도해 범행을 저지르는 순간 체포하는 '범의유발형' 함정수사는 그동안 법원에서 '위법' 판결을 받아왔다. 따라서 이 수사 방법을 통해 범인을 잡는다해도 '위법성'에 발목이 잡힐 가능성이 크며 법 위반 문제 때문에 재판에서도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또 함정수사의 분류가 아직 명확치 않다보니 수사를 위한 행위가 오히려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일례로 최근에 문제가 된 '박사방'의 경우 범죄단체조직죄가 적용될 수 있는데 이렇게 될 경우 단순 가담자도 불법으로 판단이 된다면 함정수사를 위해 가입한 수사관도 자칫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어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상 함정수사를 허용해야한다는 주장이 조금씩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음성적으로 이루어지는 범죄이기에 모니터링에만 의존하는 수사 방법을 바꾸어야한다는 점과 함께 이미 외국에서 실효성을 거둔 함정수사가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으로 몰리는 것에 대한 반발이 작용한 것이다. 이번 문제를 청와대에 청원한 청원인은 "경찰이 피해소녀로 가장해 가해자를 잡으면 불법이고, 성 구매자로 가장해 피해자를 잡는 한국식 함정수사는 합법인가?"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20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함정수사 같은 경우는 범죄를 저지를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 범죄를 유발한다는 차원이기 때문에 현행법상 불법에 해당된다. 외국처럼 아동을 가장해 위장수사를 한다고 하면 그 상황에서 수거된 여러가지 정보들이 증거로 활용될 수 있는 절차를 열어줘야한다. 경찰이 아동, 소녀인양 접근하는 것도 지금은 금지되어 있고 그로 인해 얻어진 증거물은 효력을 갖지 못한다"고 현 수사 체계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디지털 성착취 범죄는 온라인상에서 충분히 위장수사를 허용해야한다"고 밝혔다. 

또 최영희 전 국가청소년위원장은 4월 초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n번방이 알바를 미끼로 피해자를 유인했는데 이 단계에서 적극적인 위장수사, 함정수사를 해야한다. n번방도 여대생 두 명이 위장 잠입해서 취재하고 공론화했다. 마약 수사 수준의 함정수사가 필요하다. 물론 지금도 성매수자로 위장하는 수사는 하지만 미성년자로 가장하면 법원이 인정을 안해준다. 채팅 앱에 '16살 여자'라고 접속하면 십분 안에 수십개의 메시지가 쏟아진다. 성매수자들이 상대가 경찰일 수 있다록 조심하는 것만으로도 범죄예방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민갑룡 경찰청장은 지난 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원래 범행 의도가 있는 상황에서 신분을 감추고 접근해 범죄 정황이나 행위자를 확인하는 것은 법적으로 함정수사가 아니다"라면서 "법적 문제, 국민들의 수용성 문제 등을 신중하게 살펴볼 부분이 많다고 본다. 사회적 논의를 지켜보면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제도 도입이 가능할 것이라 본다"면서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경찰청 관계자는 "잠입수사의 경우 판례에 의해 다 허용이 된 사항"이라면서 "청장님 말씀도 나왔기에 입법 등에 대해서는 더 심도있는 논의를 진행하고 발표가 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성범죄가 밝혀져도 가벼운 처벌로 끝나는 경우가 많고 음성적인 사이버성범죄를 막지 못하는 상황에서 '디지털 함정수사'가 현행법의 문제를 극복하고 도입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SW

ldh@economicpost.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