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형 성추행', 침묵이 또 다른 피해자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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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형 성추행', 침묵이 또 다른 피해자를 낳았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0.04.2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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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퇴한 오거돈 시장 "신체접촉 강제추행임을 깨달아, 경중 떠나 용서 못받아"
피해자 "명백한 성추행, 경중 없다" 여성단체 "가해자들의 정형화된 전략"
"성찰없는 태도가 성폭력 사건으로 이어져, 바뀌지 않으면 계속될 것"
지난 25일 성추행으로 사퇴한 오거돈 부산시장. 사진=뉴시스
지난 25일 성추행으로 사퇴한 오거돈 부산시장.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지난 23일 오거돈 부산시장이 성추행 문제로 전격 사퇴하면서 이른바 공직자들의 '성인지 감수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특히 오 시장의 성추행 행위는 물론이고 기자회견문에서도 성추행 문제를 가볍게 여기는 듯한 발언을 한 점에 대해 피해자와 여성단체들이 반발하면서 공직자들이 여전히 성추행에 대해 무감각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오거돈 시장은 사퇴 기자회견에서 "한 사람에게 5분 정도의 짧은 면담과정에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했다. 강제추행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경중을 떠나 어떤 행동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 모든 허물을 제가 짊어지고 용서를 구하면서 나가고자 한다. 피해자분께서 또다른 상처를 입지 않도록 보호해달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오 시장에게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는 입장문에서 "그곳에서 발생한 일에 경중을 따질 수 없다. 명백한 성추행이었고, 법적 처벌을 받는 성범죄였다. '강제 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경중에 관계없이' 등의 표현으로 되레 제가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비칠까 두렵다. 두 번 다시 이같은 표현이 등장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피해자와 함께 여성단체들도 오 시장의 기자회견문에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5분 동안', '경중에 관계없이'라는 말로 명백한 범죄를 '사소화'하는 전략을 사용했고 '과오를 짊어지고 가겠다'며 마치 자신의 잘못에 비해 과도한 책임을 지는 것처럼 묘사했다. 이는 범죄의 의미를 축소하고 피해를 '사소화'하여 자신의 범죄에 대한 사회적 비난을 회피하려는 가해자들의 전형적인 전략이다. 현직 시장의 성폭력 범죄 사실에 더해 전형적인 가해자의 모습을 목격하며 더욱 분노한다"고 밝혔다. 

또 석영미 부산여성단체연합 대표는 2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면담은 5분이었겠지만 그 여성에게는 마치 5시간, 평생과 같은 시간으로 굉장히 길게 느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성폭력 사건에서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1초든 5분이든 5시간이든 피해자에게는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시각이 이렇게 극명하게 다르고, 자신이 했던 행위를 굉장히 짧게 축소하려는 이런 시도는 전형적인 권력형 성범죄 가해자들의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시간 논리에 휘둘려 본질을 호도하면 절대 안 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고위공직자들이 여전히 여성을 '아랫사람'으로 여기고 있고 이로 인해 위력으로 인한 성추행을 범죄로 인식못하고 '성추행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 식으로 파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8년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수행비서의 성추행, 성폭력 폭로로 인해 사퇴하고 정치인들에 대한 '미투'가 연달아 일어나면서 자정의 노력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미투 운동' 이후에도 고위공직자들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됐다는 게 여성계의 입장이다.

피해자를 지원했던 (사)부산성폭력상담소는 "이번 사건은 오거돈 전 시장이 당선 이후 성희롱, 성폭력 전담팀 구성을 미뤘던 모습이나, 지난 2018년 회식 자리에서 여성노동자들을 양 옆에 앉힌 보도자료 등에서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었다. 낮은 성인지 감수성과 이를 성찰하지 않는 태도는 언제든 성폭력 사건으로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사퇴로 끝나면 안 된다. 부산시는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해 피해자 회복에 최선을 다하고, 2차 가해를 예방해야한다. 지금이라도 서둘러 부산시에 성희롱-성폭력 전담기구를 구성하고 성평등 교육을 통한 조직문화와 인식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석영미 대표는 "피해자는 업무시간에 업무상 호출이라는 말에 서둘러 집무실에 간 이유밖에 없는데 평범한 직장인이지 한 여성노동자의 일상이 업무상 위력 앞에 완전히 무너지는 거다. 제2도시의 수장이라는 사람이 권력형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는 동안 공직사회는 침묵했다. 오 시장으로 대표되는 공직사회의 권력형 성범죄 등이 이렇게 표면화되어 있지 않다고 하면 언제든지 이런 똑같은 결론들이 나올 위험이 있을 것이라 본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피해자에 대한 지나친 관심, 성폭력 문제를 '여자 문제' 등의 사적 문제로 치부하는 언론 보도 등이 모두 '2차 가해'가 될 수 있기에 피해자에 주목하기보다는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시선을 바꾸어야한다는 말도 나온다.

정치권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 논평을 내고 더불어민주당이 사과를 했지만 이 사건을 '정쟁의 도구'로 삼기보다는 공직자들과 여야 정치인 모두 반성을 하는 자세가 더 필요하다는 게 많은 이들의 생각이다. 비난만 하면서 또다시 아무 것도 바꾸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똑같은 일이 다시 생길 수 있기 때문이며 지금도 피해를 입고 있음에도 힘에 눌려 말을 하지 못하는 여성들을 생각해야 하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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