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보물' 승격 후보, 대정 향교에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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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보물' 승격 후보, 대정 향교에 가보니
  • 오영주 기자
  • 승인 2020.04.28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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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 제4호에서 문화재 보물 승격 대상에 오른 명륜당과 대성전
'전학후묘' 배치 기법 잘 살린 건축양식이 특징, 현재까지 예절 교육 등에 활발히 사용돼
대정향교의 모습. 사진 = 오영주 기자
대정향교의 모습. 사진 = 오영주 기자

[시사주간=오영주 기자] 향교는 조선시대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각 지방관청의 관할하에 세운 교육 기관이다. 지방의 학생들에게 유학을 가르치면서 선현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유현(儒賢)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받들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제주 향교는 19세기 제주로 유배 온 추사 김정희의 역사적 자취가 서려 있는 뜻 깊은 곳이다. 제주도 유일한 향교인 이곳의 명륜당과 대성전은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된데 이어, 최근 문화재 보물 승격 대상으로 오르기도 했다.

올해 1월, 문화재청에서 추진하는 시·도 건조물 문화재(서원·향교) 보물 지정 계획에 의거, 보물 승격 대상으로 선정됐으며, 이에 따라 제주도 문화재위원회(유형분과)은 본격적으로 보물 승격을 위한 행정적 절차를 진행해 나갈 예정이다. 최근 높은 경쟁률을 뚫고 보물 승격 대상 16 곳 중 순위에 들었으며, 금년 말 최종 심사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대정향교의 모습. 사진=오영주 기자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 위치한 이 곳을 직접 방문해 보니 잘 관리된 한옥과 오래된 고목들에서 고즈넉한 품위를 느낄 수 있었다. 편하게 방문해 머리를 식히고 산책을 해도 좋을 만큼 경관이 훌륭했다. 실제로 이곳은 관광객들 사이에서 추천 명소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이곳에 터를 잡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조선 태종 16년(1416)에 처음 세워졌으나 터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이곳저곳 옮겨져야 했던 것이다. 효종 4년 계사(1653)에 어사 이경억이 부지가 비좁고 지세가 나쁘다고 계정함에 따라 목사 이원진이 상지하여 지금의 단산하 현 위치에 이건했다. 보물 승격 대상인 명륜당은 영조 48년(1772), 대성전은 헌종 원년(1834)에 중건했다. 

추사 김정희가 유배생활을 할 때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 이곳은 김정희 선생 친필을 청해 동재에 의문당 맥을 달았으며, 2단으로 정지된 부지에 타 지역에서 보기 힘든 초창 당시의 건축적 요소와 기법을 잘 간직하고 있다. 기단 상부에 제주도 대정지역에서만 발견되는 암석인 사암판석, 우주의 공포에 사용된 고식 수법, 첨주(덧기둥)를 사용해 출목도리를 받는 기법 등은 제주에서도 대정향교와 제주향교 대성전에만 나타나는 독특한 건축적 특징이다.

보물 승격 대상인 대성전의 모습. 사진=오영주 기자

특히 눈길을 사로잡는 명륜당과 대성전에는 이러한 건축적 특징과 역사가 더욱 짙게 배어있다. 6년 째 이곳을 지키고 있는 이자신 교장은 “39개의 보물 후보 중 16위 안에 들 수 있었던 것은 명륜당과 대성전이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전형적인 배치 기법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전학후묘는 앞쪽에 학업용 건물, 뒤쪽에 묘당을 배치하는 것으로 문묘, 서원, 향교 등에서 발견되는 전통적인 건물 배치 방법이다. 대정향교의 강학공간인 명륜당(明倫堂)은 우측에 동재(東齋), 좌측에 서재(西齋)를 배치한 전당후재(前堂後齋)의 배치형식으로 구성했으며, 전국 향교의 명륜당 중 유일하게 우진각지붕을 가졌다. 또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로 조영되었으나 퇴칸으로 4면을 둘러싼 평면이 매우 독특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향교의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인 대성전(大成殿)은 공자(孔子) 이하 성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의식을 치르는 곳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를 지닌다. 공자를 주벽으로 모시고, 안자, 증자, 자사자, 맹자 4성을 좌우에 배향하며, 송조 4현, 신라의 설총, 최치원을 비롯한 18현을 종향해 모두 27위를 봉안하고 있다. 

세계유산본부 고순향 본부장은 “대정향교 대성전과 명륜당은 조선시대 그 어느 지역보다 척박했던 대정지역의 향토성과 역사성을 투영시켜 소박하고 절제된 양식으로 표현해 낸 유교 건축물인 동시에 19세기 제주로 유배 온 추사 김정희의 역사적 자취가 서려 있는 등 학술적 ․ 건축학적으로 보물로 승격될만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며 “보물 승격 추진에 심혈을 기울여 제주도 유림(儒林)을 비롯한 도민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는데 최선을 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정향교 이자신 교장. 사진 = 오영주 기자
대정향교 이자신 교장. 사진=오영주 기자

이곳은 보물로써의 가치 외에도 방문하는 관광객과 도민에게 여전히 많은 기쁨을 주고 있다. 이자신 교장은 추사 김정희의 얼이 서린 이곳에서 전통 및 인성 예절 교육 등 많은 것을 가르치며 향교로써의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서예교실과 의전당에서 진행하는 전통 다도교실, 시조 창 교실 등 성인과 학생 가리지 않고 다양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전통혼례와 성년회 등 많은 행사도 치루고 있다. 

대정항교에서 진행하는 교육 및 행사를 소개하는 팜플렛. 사진=오영주 기자

이날 대정향교를 찾은 한 관광객은 “문화재라고 하면 어딘가 엄격하고 따분한 분위기가 있을 줄 알았는데 운치가 좋고 아름다워 머무는 동안 마음이 편안했다”면서 “전통 건축물이 아름답다는 것을 느낀 적이 많지 않았는데 이곳에서 그 아름다움을 느꼈을 뿐아니라 문화재로서의 의미도 깊다는 것을 알게 돼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SW

oyj@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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