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김봉렬 총장 릴레이' 항의, 해프닝으로 끝낼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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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김봉렬 총장 릴레이' 항의, 해프닝으로 끝낼 수 없는 이유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0.05.02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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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희망 캠페인 릴레이'에서 다음 주자로 블랙리스트를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송수근 계원예대 총장을 지목해 물의를 빚은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사진=한국예술종합학교 페이스북
'코로나19 희망 캠페인 릴레이'에서 다음 주자로 블랙리스트를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송수근 계원예대 총장을 지목해 물의를 빚은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사진=한국예술종합학교 페이스북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지난달 28일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한예종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코로나19 희망 캠페인 릴레이에 참여했다. 그런데 김 총장이 캠페인의 다음 주자로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실행을 진두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송수근 계원예술대학교 총장을 지목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어났다.

김봉렬 총장은 응원과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다음 주자로 송수근 계원예술대학교 총장,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지목했다. 이 중 송수근 총장은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기획조정실장, 제1차관을 역임하면서 블랙리스트를 설계하고 실행을 지휘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이 때문에 지난 2019년 8월 계원예대 총장 임명 당시 문화예술계의 거센 반대가 있었지만 학교는 임명을 강행했다.

김봉렬 총장의 글이 올라온 직후 한예종 총학생회는 성명에서 "예술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배제하며, 수많은 문화예술인과 국민에게 피해를 입힌 블랙리스트 사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김 총장의 송수근 지목은 예술가를 꿈꾸는 한예종 학생들과 많은 피해 예술가들에 대한 모욕"이라면서 "한예종 사태라는 뼈아픈 예술 탄압의 역사를 겪은 본교의 최고 권한자가 문화예술계를 탄압하던 인물을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창의적 예술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본교의 교육 이념에도 어긋나는 행위이며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라며 김 총장의 사과와 함께 학교 본부가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총학의 항의에 김봉렬 총장은 29일 "부적절한 인사가 포함됐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미처 살피지 못한 면이 있었다는 점을 말씀드린다. 기관장급 지인들 중 아직 캠페인에 참여하지 않았던 인사를 지목했는데 그 행위가 단순한 지명을 넘어 '공식적 지지'로 비추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이를 인지해 즉각 해당 게시물을 내리고 릴레이 주자 조목을 철회했다"면서 "마음이 불편하셨을 학내외 여러분들에게 심심한 유감의 뜻을 전하고 모든 결정은 저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학교 본부 직원들로부터는 게시물 게재를 위한 실무적 도움을 받았을 뿐"이라는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총학은 "사과문 어디에도 본 사태의 핵심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언급, 피해자에 대한 사과의 말이 없었고 '지목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말을 통해 김 총장이 여전히 검열과 탄압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총학은 사과문이 공식 페이스북에 오르지 않은 것을 문제로 들며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게시하지 않은 것도 김 총장의 판단이라고 이해하면 되는가?"라며 본부에도 의혹을 제기했다.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도 30일 성명에서 "김 총장은 지난 2019년 9월 송 총장의 취임식에서 학연, 지연 등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축사를 통해 노골적으로 과시하는 추태를 보인 바 있다. 당시 취임식장에는 총장 취임에 반대하며 피켓을 든 계원예술대학생들과 시민사회단체가 있었지만 김 총장은 아무렇지 않게 축사를 했다. 이미 여기에서 송 총장에 대한 지지를 표했고 이는 자신도 문화예술계의 권력 집단이자 적폐세력의 일원임을 밝힌 것이나 다름없다. 사과문의 '간과'라는 표현은 기만적 말장난에 불과하다"하며 김봉렬 총장의 퇴진까지 요구했다.

단순한 '해프닝'이라고, 한예종 학생들과 문화예술계 관계자들이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문화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이 나오지 않았고 사태의 책임이 있는 이들이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문화계로 돌아오는 상황을 비추어보면 김 총장의 행동에 대한 반응을 '지나친 민감함'으로 가볍게 여길 수가 없다. '기득권자들끼리의 놀음' 그들에게 보여진 김 총장의 행동이다.

아무 것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계속되는 지적에도 블랙리스트, 미투 운동 등 예술인들의 아픔을 해결하는 정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예술가의 권리 보호'를 목표로 제2의 블랙리스트, 미투를 막기 위한 법안인 '예술인권리보장법'은 국회 논의조차 중단된 채 이대로 5월 8일이 지나면 폐기된다. 예술인들이 SNS를 통해 '#예술인권리보장법_제정하라'는 해시태그를 달며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기득권을 가진 이들은 지금도 침묵한다. 침묵하며 '잊자'고 한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뭉치는 모습만을 보여준다. 

젊은 문화예술인들의 좌절은 경제적인 문제도 물론 있지만 기득권의 벽에 막혀 자신의 목소리조차 내기 힘든 것도 포함이 된다. 해결되지 않는 '문화계 적폐'에 코로나19 영향까지 겹치며 장래를 걱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득권자들의 반성없는, 과거를 잊은 모습을 어떻게 지나갈 수 있을까? 포스트 코로나와 4차 산업혁명 시대, 문화가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지금, 문화계에 쌓인 먼지를 청소해야하는 일이 더 시급해졌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사건처럼 기득권을 향한 분노의 목소리는 더 거세질 것이고 기득권자들이 형식적 사과만 전하면서 먼 산만 바라보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문화 발전'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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