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칼럼] '쓰레기 소각시설' 갈등 해결한 '공동체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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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칼럼] '쓰레기 소각시설' 갈등 해결한 '공동체의 힘'
  • 이정현 환경운동연합 사무부총장
  • 승인 2020.06.0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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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고창군 소각시설 공론화 협의회’ 가 대장정을 마치고 유기상 고창군수와 조규철 군의장에게 합의서를 전달했다. 사진=이정현 제공
지난 1일 ‘고창군 소각시설 공론화 협의회’ 가 대장정을 마치고 유기상 고창군수와 조규철 군의장에게 합의서를 전달했다. 사진=이정현 제공

[시사주간=이정현 환경운동연합 사무부총장]  고창군청 앞 천연기념물 멀구슬나무 연보라 꽃이 환하게 피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라는 싯구처럼, 폭풍과 눈보라와 벼락을 견뎌 냈을 것이다.

200살도 더 먹었다 하니 흰옷 입은 동학 농민의 함성을 들었을 것이다. 머리띠를 동여매고 군청을 찾은 소각장 반대 주민들도 너른 멀구슬나무 그늘에서 잠시 더위를 피하곤 했다. 격한 대립과 논쟁, 반목 속에 일 년 넘게 이어온 고창군 생활폐기물 소각장 싸움도 공론화를 통해 대타협의 꽃을 피웠다. 

6월1일, 전라북도 고창군 생활폐기물 소각시설 공론화 협의회 위원들은 합의서에 최종 서명하고 군수에게 전달했다. 이로써 1년 반 가까운 소각장 설치 갈등이 군수의 사과와 치열한 쟁점 토론, 이해관계자 간 대화와 양보로 마침표를 찍었다. 

쓰레기처리시설은 어딘가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시설이다. 하지만 비민주적인 부지 선정과 시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는 환경관리 기준 논란으로 전국 곳곳에서 갈등을 빚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국 최초로 공론화를 통해 쓰레기처리시설 갈등을 해결한 고창군의 사례는 시사하는 점이 많다. 대타협의 전제가 공동체 회복과 지역 내 쓰레기 발생량을 줄이고 자원순환을 늘려 지속가능한 고창을 만들자는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크다. 

갈등의 양상은 복합적이었다. 현재 운영 중인 고창군 생활쓰레기 매립시설의 영향권 설정과 관리 주체 구성이 다른 지역과 달랐다. 폐기물처리시설 주변 영향지역 지정과 주민지원협의체 구성을 담은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하 폐촉법)” 은 매립장은 주변 2km 이내, 소각장은 200m를 간접영향권으로 정하고 있다. 피해가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전제 아래 매립장으로 인한 건강 영향이나 재산상 피해가 큰 인근 주민을 우선 지원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고창군은 예외규정을 적용해서 생활쓰레기 매립시설이 있는 아산면 지역 전체를 간접영향권으로 설정했다. 폐촉법에 의한 주민지원기금, 반입 수수료를 아산면 전체 기금으로 사용했다. 매립장이 들어설 당시 지역민 모두가 투쟁기금을 마련하고 교대로 번을 서고 집회에 나섰기 때문에 그 성과로 얻어진 기금은 면민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기금과 운영을 감시하는 매립장 주민지원협의체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간접영향권 내 주민들도 폐촉법에 명시된 자신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기는 하나 지역 사회의 합의를 따랐다. 그런데 고창군과 매립장 주민지원협의체가 현 매립장이 거의 들어찼다면서 부지 내에 소각장을 짓겠다는 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근 주민은 소외되고 배제당했다. 소각장 공사가 시작하고 나서야 이를 알게 됐다. 주민들이 분노는 폭발했고 집단행동에 나섰다. 군청 앞 집회 5차례, 천막농성, 일인 시위에 나섰다. 

소각시설 공론화협의회는 지난해 7월, 고창군수, 고창군의장, 소각장반대대책위 3자 면담에서 합의되었다. 고창군과 아산면 소각시설 반대위가 갈등전문가와 전문가 자문단의 주재로 주민 사전교육, 2차례 준비모임과 4차례의 실무회의, 수차례의 비공식 조정 회의를 거친 끝에 10월1일 공론화협의회가 출범했다. 공론화 회의를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소각시설 건설공사도 멈췄다. 

공론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원점에서 부지 재검토를 주장하는 반대대책위와 간접영향권 재조정과 그에 따른 주민지원협의체 구성, 수도권 대용량 규모의 안전기준 적용, 주민지원 확대로 문제를 풀어가려는 고창군의 입장 차이가 컸다. 고성이 오가기도 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일도 있었다. 최장 7시간의 릴레이 회의를 갖는 등 8차례의 회의를 가졌다. 

갈등의 한 축인 ‘매립장 주민지원협의체’와 간담회, 수차례의 조정 회의, 공론화 틀이 깨지지 않도록 위해 지역주민들의 물밑 노력이 45일간 이어졌다. 주민들은 이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

어떻게든 공동체 화합을 깨지 않겠다던 주민들의 노력으로 고창군과 반대대책위 간 잠정 합의서가 만들어졌고, 보완 협의를 통해 최종 합의서가 작성되었다. 공론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인근 마을을 돌며 합의서 내용을 일일이 설명하고 설문조사를 통해 주민동의를 물었다. 

공론화 합의서는 공동체 회복을 위한 상호 간의 노력을 담았다. 구체적인 합의 내용도 일반 소각장 관리기준을 크게 뛰어넘었다. 소각시설은 △내구연한 15년 운영 후 중단 △ 다이옥신 연속시료 채취 장치 등 환경오염방지시설 보완 △ 정례적인 주변 환경성 조사 △ 배출가스 TMS(원격감시 시스템) 데이터를 실시간 공개 △ 소고창군 직영으로 책임성 강화 등 환경과 건강을 염려하는 주민 의견을 최대한 반영했다. 

더욱 돋보이는 점은 고창군의 쓰레기 감량 정책 추진이다. 지역주민과 전문가가 참여한 가운데 ‘고창군 자원순환 기본 조례’를 제정하여 시행하고, 생활폐기물 관리 정책을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선진화하기 위해 ‘고창군 자원순환정책실천협의회’를 구성을 약속했다. 자원순환 실천마을 확대 등 관리 정책도 추진할 계획이다.

고창군은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고창 갯벌과 운곡습지, 세계문화유산인 고인돌 유적지, 아름다운 선운사 등 자랑거리가 많다. 군 전체가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고창 갯벌의 세계자연유산 선정도 코앞이다. 여기에 지속가능한 자원순환 도시라는 또 하나의 자산이 추가된 것이다. 유네스코자연유산, 문화유산 도시에 걸맞는 품격을 갖춘 것이다.

고창군 아산면에서 벌어진 실험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을 공동체의 힘이었다. SW

leekfem@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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