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칼럼] 북한에 대한 '팬덤'적 사랑은 조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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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칼럼] 북한에 대한 '팬덤'적 사랑은 조현병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20.06.2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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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적 사랑은 분열적이고 말세적
비이념적인 의식만이 막을 수 있어
주장환 논설위원
주장환 논설위원

[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이념이 개입된 순간 관심은 간섭이 된다. 사랑이 쓰디쓰게 변하고 증오가 앞에 서는 이유다. 사랑를 빙자한 보호는 감옥이 된다. 모든 사랑 중 일부는 아주 교할하다. 조건을 만들고 그 조건을 따르지 않으면 올가미를 씌우고 폭력으로 길들이려 한다.

팬덤(fandom) 현상은 사회의 맹목성과 폭력성을 보여준다. 그건 사랑의 과도함이다. 이런 사랑은 분열적이다. 그것이 도구화되고 이념화되고 종교화되면 조현병을 만든다. 이런 것에 사로잡힌 사람은 경박하고 말세적이다. 이들은 자신은 늘 정당하며 옳고 다른 사람에게는 늘 ‘주홍글씨’를 새긴다. 자신의 의견에 부합하지 않으면 꼬리표를 붙이고 그 꼬리를 따라 천만리길 원정도 마다 않는다. 권력을 기득권화 하고 누군가를 맹종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한 짓은 모두 음모로 보기도 한다. 싸움은 이들이 생존 전략 중 하나이며 타인에 대한 배척은 자신의 삶의 의미를 충족시켜 준다.

그러나 이들이 다른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불행하게 만든다면 자신도 그 구렁텅이에 빠지게 될 것이다. 존재는 자신의 메아리이기 때문이다. ‘인과응보’라는 고전적 응징론이 아니더라도 세상 이치는 반드시 그렇게 돌아간다. 팬덤적 사랑은 달콤하기 그지 없다. 그러나 사람의 내면에 갈등과 긴장을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 사랑은 보통 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 마침내는 앙쪽에서 잡아당겨 가랑이가 찢어진다.

어떤 사람은 “진보가 오히려 더 비민주로 치닫는다” “독선적이다”라고 비판한다. 그렇다. 팬덤적 사랑은 원래 민주적이지 않고 독선적이다. ‘데이트 폭력’이 왜 일어나겠는가. 북한에 대한 일방적 사랑이 왜 일어났겠는가. 비이념적인 의식만이 이런 우매하고 몰염치한 행위를 막을 수 있으련만 철 지난 이념으로 가득찬 이들에게는 ‘연목구어(緣木求魚)’다. 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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