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칼럼] ‘정치적 올바름’ 과잉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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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칼럼] ‘정치적 올바름’ 과잉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들
  • 오세라비 작가
  • 승인 2020.07.0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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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한 장면.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한 장면.

[시사주간=오세라비 작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명작소설 ‘앵무새 죽이기’와 ‘허클베리 핀의 모험’, 미국 드라마 ‘초원의 집’, 디즈니 애니메이션 명작 ‘인어공주’ 등등. 문화계 전반에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이 불어 닥쳤다. 열거한 명작들 모두 PC주의의 잣대질로 수정, 심하면 삭제 조치까지 당하고 있다.

작금의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사회운동인 소위 ‘PC주의’는 소수자, 사회적 약자들을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표현을 쓰지 말자는 것을 중심으로 삼는다. ‘인종, 민족, 성별, 성 정체성 등에 대해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방향’이라는 사회운동이다. PC주의를 정치적 올바름, 혹은 정치적 공정함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가깝게는 소수자, 사회적 약자 우대 정책이라 정의한다.

PC주의는 1970년대 미국 좌파 정치담론에 등장한 정체성정치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페미니스트,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내세우는 집단들의 정체성을 정치화하면서 시작됐다. 정체성 정치는 1990년 초 미국 학계에 등장한 PC주의와 결합해 발전했다. 미국 대학의 여성학계에서 PC주의를 적극 받아들였고, 2013년 무렵부터 활발한 PC주의의 사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오늘날 PC주의는 언어나 용어 순화를 넘어 영화, 소설, 드라마, 게임물 등 문화 산업에 대해 ‘평등한 역할 배분’에 중점을 두라며 더욱 확장되고 있다. 이런 PC주의 운동이 정말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공정한 것일까?

필자의 10대 성장기는 고전 명작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받은 감동이 평생 간직돼 있다. 영화는 미국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거대한 몸집의 흑인 하녀가 스칼렛의 드레스 입기를 도와주기 위해 코르셋을 한껏 조여 주던 장면 등 인상적인 장면을 담았다. 흑인노예 제도가 지배하던 남부를 무대로 펼쳐진 드라마였고, 또 영화가 개봉되었을 그 당시에도 흑백분리주의가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최근 이 영화에 대해 ‘인종차별적 묘사와 노예제가 담겨있다’는 이유로 일부 온라인 영화서비스 사에서는 서비스 제공을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미국 작가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또한 마찬가지다. 1960년에 발표한 이 장편소설은 세계 문학사를 통틀어 언제나 최고의 자리에 있다. 필자도 소설은 물론이요, 그레고리 팩 주연으로 영화화돼 명작의 반열에 오른 이 작품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그런 이 작품도 PC주의의 직격탄을 맞았다. 똑같이 ‘인종차별적 표현이 등장한다’는 이유다. 지금 시대에서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흑인(nigger)’이라는 멸칭이 수십 번 소설에 등장한다는 이유다.

그런 소설 속 무대는 1930년 대 중반 미국의 경제 대공황 시대, 남부 앨라배마 주에 있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소설에 묘사된 앨라배마 주는 미국 남부의 전형적인 모델로 당시 흑인 인구가 가장 많았으며, 그로 말미암은 흑백 갈등은 흑인 민권운동의 진원지가 되기도 했다.

소설은 마을 변호사인 홀아비 애티커스의 두 자녀 스카웃과 젬이 유년기 겪었던 사건을 주제로 한 일종의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당시 앨라배마 주는 미국 남부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경제대공황 시기 흑백 분리라는 관계, 수다쟁이 아줌마들, 알코올 중독자, 아이들 눈에 비친 느릿한 남부 백인 노인들의 묘사, 가난에 찌든 백인 자식들이 여럿인 평판의 집안들이다. 이런 동네에서 ‘흑인이 백인 처녀를 강간했다’는 누명을 쓴 흑인을 애티커스가 변호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흑인을 변호하게 되자 애티커스 변호사 가족은 곤경을 치르지만 작품은 휴머니즘적 인간관을 묘사해 명작 중 명작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PC주의는 소설에 묘사된, 요즘 시대는 통하지 않는 흑인을 가리킨 ‘니거’란 표현이 문제가 된다고 부르짖었다. 이 때문에 소설은 ‘소수인종을 경멸했다’는 명분으로 미국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제외되고야 말았다.

그런가하면 국내에도 방영돼 큰 인기를 얻은 1970년대 미국 TV드라마 ‘초원의 집’은 어떤가. 미국 서부 개척시대 가족을 이끌고 정착하는 이 가족드라마는 당대 미국의 일상사를 볼 수 있는 소중한 역사적 풍속도이자 유산이다. 강인하고 자상한 아버지, 가난한 살림이지만 파이를 굽고 소박하게 자급자족하며 자녀들을 건강하게 양육하는 어머니 등 서부 개척시대의 전통 방식의 삶이 옛날 한국인들의 전통 가정에 대한 향수도 자아내는 드라마였다.

하지만 서부 개척사에 있어 필연적으로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던 원주민 인디언과 흑인을 묘사한 부분은 인종차별이라는 요즈음의 PC주의 경향에서도 벗어날 수 없었다. 초원의 집을 쓴 여류작가 로라 잉걸스 와일더상이 아동문학상 이름에서 빠지게 됐다.

여기에 지난해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실사화 영화에 주인공으로 흑인 여배우가 캐스팅되자 큰 논란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디즈니사의 PC주의 지향성은 이미 영화에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백인 남성 전용이던 영웅물은 흑인, 여성, 아시아계, 성소수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문화적 다양성을 수용하고 있으나 그 반영의 정도는 대중의 반발을 일으키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PC주의를 찬성하는 측은 소수자, 성별, 인종, 종교 등에 대해 편견을 갖지 말고 배려하라 주장한다. 그것이 불평등을 해소하고 문화적인 편견, 정치적 권력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 근거다. 반면 반대 측은 백인을 무조건적인 인종차별주의자로 인식될 우려를 표하며, 소수자 우대정책이라는 것이 매우 부자연스럽고 억압적이며 역차별을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PC주의의 사조는 그 시대의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산물에 대해 도외시하는 경향을 낳을 우려가 있다. PC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고전 명작을 제외하거나 원작을 지나치게 변형하는 것은 문제가 없는 것인가. PC주의를 비판 없이 수용하기에 앞서 살펴보고 생각해봐야 할 점이 많겠다.

역사학을 보는 관점 중에 ‘휘그주의 역사학’이 있다. 이것은 과거의 맥락을 도외시하고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의 사건을 서술하는 역사 서술 방식을 말한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으로 PC주의도 자칫 그릇된 경향을 띌 수 있다.

앞서 상술한바와 같이 필자의 10대, 20대의 향수가 오롯이 담겨있는 내가 사랑한 영화와 명작들이 인종차별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무대에서 사라지고 가치가 폄훼되는 것은 정말 서글프다. PC주의 사조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또 다른 성차별, 인종차별과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도 있듯, PC주의의 과잉은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 PC주의에도 ‘오컴의 면도날’이 필요하지 않을까. SW

murphy8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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