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말 좀 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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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말 좀 하며 삽시다!
  • 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 승인 2020.07.0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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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가 없는 시대에 벽화를 그렸다는 것은 그만큼 내 마음을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사진=픽사베이
문자가 없는 시대에 벽화를 그렸다는 것은 그만큼 내 마음을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사진=픽사베이

[시사주간=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아무래도 편협한 저는 어떤 모임에 더 이상 나가지 않으려 했던 적이 있습니다. 특정 1인의 대화 독점이 무척 싫어서입니다.

10여명이 만나니 한 사람이 두어 마디씩만 분배해서 한다 해도 그날의 3시간여 자리는 곧 끝나고 맙니다. 이때 “그렇군!”, “꼭 그럴까?” 정도의 추임새 말고는 창의적인 몇 단어 이상으로 구성한 자기 생각은 한 문장도 못하고 마는 사람이 5,6명은 됩니다.

아는 것 많고, 잘난 체 잘하고, 목소리 큰 그가 대부분의 시간을 자기 이야기로 채워버리기 때문입니다.

판이 끝나고 회장에게 슬쩍 그를 칭하며 눈을 흘기기라도 하면, 맘씨가 태평양보다 더 넓은 그 장로님(우리 회장)은 저를 꾹 누르며 “놔둬. 그냥 들어주기만 하자고. 동조 안하면 될 거 아냐!”라며 오히려 말립니다.

이번엔 말이 없어서 타인을 답답케 하는 경우입니다. 오늘 하고픈 이야깁니다.

절 만난 모 단체의 회장이 말했습니다. “곧 정식 출범식을 갖습니다. 오셔서 축사 한 말씀 좀 해주시면...” 아니, 막강한 사람들이 많이 오는 자리일 텐데, 내게 축사 순서를 주려 하다니 다소 계면쩍었지만 기분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출범식은 여러 군데 공지를 하는 걸로 날짜와 장소를 알게 됐지, 제게 개인적 연락이 없더군요. 사실 초대 의사를 표해준 것만으로 충분히 반가웠는데. 느낌이 차츰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날짜가 임박하고 그래서 실무를 맡아 한다는 사무총장에게 연락을 취해봤습니다. “글쎄요. 회장님이 아무래도 금품협찬을 하는 사람들 초대를 우선하는 것 같아서... 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전화했다는 것이 전달됐을 텐데, 그저 아무 말이 없습니다. 물론 저야 그 자리엘 갈 필요가 없지만 몹시, 굉장히, 아주, 대단히, 겁나게, 허벌나게 뻘쭘하기... 이를 데 없는 기분입니다.

제가 어색한 생각을 갖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건지 궁금해서 누군가에게 이 말을 해봤더니, 답이 “그냥 알아서 생각해야지, 답변을 들을 필요가 있을까요?”였습니다. 가만 보니 그 사람은 곤란한 상황이면 입을 다물어버리거나 전화조차 받지 않는 스타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말없음)으로 내게 메시지를 줬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도대체 그 마음을 알 수가 없습니다.

역사상 고백하지 않고 이루어진 사랑은 어떤 문헌에도 나오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표현되지 않는 마음은 무효이다’라는 말도 있고요.

하다못해 문자가 없는 옛날에도 원시인들은 알타미라 동굴 같은 곳에 벽화를 그렸잖습니까. 그래야 내 마음을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에 그렇죠. 마음을 전하려는 소리내기, 쓰기, 그리기, 만들기 등은 단순소통을 넘어 역사 기록물이 됐고, 오늘날엔 예술로 발전했습니다.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안쪽에만 달려있다”. 철학자 헤겔이 우리에게 중요한 화두를 남겼습니다. 마음의 주인이 먼저 입을 떼서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물론 짐작도 하지 못한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아니, 적어도 저는 말이죠, 척하면 척하기, 부처와 가섭처럼 연꽃 한 송이와 머리카락만한 미소에 우주의 진리를 깨닫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탁월한 ‘눈치’ 는 0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가만 생각하니 제 모임의 누구처럼 차라리 떠들어대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골라서 들을 수 있으니까요. ‘...’ 이거 참 답답합니다.

아셨죠, 제 얘기?! 분별력 있는 침묵이 함부로 놀리는 말보다 훨씬 훌륭하다는 것이지, 모든 ‘말 없음’이 절대적으로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말 좀 하세요, 말 좀 하며 삽시다!! SW

erobian20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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