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죽음, 예의 그리고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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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죽음, 예의 그리고 정치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0.07.13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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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현지용 기자
사진=현지용 기자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지난 주말은 박원순 서울시장 별세 관련 이야기로 그야말로 시끄러웠다. 사망 원인, 서울특별시장(葬) 적격 여부, 조문 여부 등을 둘러싸고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애도가 먼저다', '잘못을 했으니 죽은 것'이라는 의견들이 팽팽히 대립되고 급기야 정치권은 조문 여부가 정쟁으로 번지고 '아들 재검'까지 거론하는 난장판이 계속 됐다.

성추행 혐의로 고발이 된 상태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박 시장을 두고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다. 경찰이 그의 죽음 후 바로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한 것도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다.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할 수 있는 장례를 굳이 서울특별시장으로 치르고 코로나19로 집회조차 열 수 없는 상황에 분향소를 마련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논쟁 역시 충분히 할 수 있다.

굳이 생각이 없다면 조문이나 애도를 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을 문제삼을 필요는 없다. 피해자를 생각해야하는 것은 당연히 옳고 사후에도 수사가 이루어져야한다는 의견도 분명 맞는 의견이다. 과보다는 공을 생각해야한다는 의견도 맞고 아직 고발에 불과하기에 섣불리 가해자로 규정짓지 말라는 의견도 분명 맞는 의견이다. 

분명한 것은 사람이 죽었고 그 사람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사람이 존재한다. 죽은 이의 가족도 큰 충격을 받았고 피해자도 큰 충격을 입은 상황이다. 애도를 하든, 비판을 하든 조심스런 부분이 있어야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렇지가 않다. 서로 감정을 쏟아내기에 바빴다. 한쪽에서는 피해자의 신상을 털겠다며 피해자에게 '음모론'을 덮어씌우고 한쪽에서는 고인에게 온갖 추악한 말을 하며 어떻게든 '파렴치한'을 만들려했다. 거기엔 존중도 예의도 없었다. 그저 '누가 하나 죽어야 끝날 문제'라는 악만 남아있는 듯했다.

심지어 기자는 이런 말까지 들었다. 그가 '동성애를 옹호했기 때문에 천벌을 받았다'는 것이다. 시청 앞 퀴어 퍼레이드를 허용한 것에 대해 반발했던 한 교인의 말이었다. 동성애를 찬성한 이를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고 그렇기에 차별금지법도 제정되어선 안 된다고 이 교인은 말하고 있었다. 혐오의 정서를 그에게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도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죽음 앞에서 서로 위하고 서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피해자와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이들도 있지만 이 역시 '정쟁'으로 묻혀갔고 조문을 가지 않겠다는 것을 마치 '구국의 결단'처럼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추모 메시지 없이 '선거 준비'를 말하는 야당의 대표도 있었다.

몇몇 정치인들의 모습은 여론을 발판으로 '한탕'을 하겠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반성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죽음, 한 사람의 피해도 정쟁의 도구로만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시인 구상은 '초토의 시'에서 전쟁에서 죽은 북한군의 시신을 묻은 묘지를 보며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 사랑보다도 다 너그러운 것이로다'라고 이들을 추모했다. '지금 상황에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하나?'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어떻게든 죽이려했던 적군이어도 목숨을 잃으면 남은 육신이라도 거두어 땅에 묻고 묘를 만들어줬던 것이 우리의 모습이었다. 하나 더, 피해자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조문을 가지 않겠다고 한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마지막에 이런 말을 썼다. "그러나 모든 죽음은 애석하고 슬프다". 어느 것도 죽음만큼 비극적인 결과는 없다. 

지금처럼 한다면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혐오 외에 남는 것이 없을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든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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