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칼럼]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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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칼럼]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 오세라비 작가
  • 승인 2020.07.20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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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화가 아르카디 플래스톱이 그린 톨스토이의 소설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삽화. 사진=TRETYAKOV GALLERY MAGAZINE
러시아 화가 아르카디 플래스톱이 그린 톨스토이의 소설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삽화. 사진=TRETYAKOV GALLERY MAGAZINE

[시사주간=오세라비 작가] 대한민국에는 하나의 신화가 있다. 바로 ‘부동산 불패 신화’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서울·수도권 아파트값은 크게 상승했다. 서울의 인기 있는 아파트 가격은 거의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 정부가 지난 3년간 쏟아낸 부동산 대책은 7·10 대책까지 22번째다. 그동안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규제정책은 사실상 실패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집값 상승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말해버렸다. 진 의원은 지난 16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했다. ‘집값 과연 이번에 잡힐까’ 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토론이 종료된 후 마이크가 꺼진 줄 알고 뱉은 말이 문제가 됐다. “그렇게 막 안 떨어질 겁니다. 부동산이 어제 오늘 일입니까” 바로 집값을 가리킨 발언이었다.

정부가 불과 며칠 전 7·10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으나, 정부여당 의원의 말은 마치 ‘백약이 무효’ 라는 뉘앙스를 풍기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진 의원은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이기에 이를 방송 중 일어난 단순한 실언으로 넘기긴 어렵다. 가뜩이나 젊은 층은 집값 폭등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은 점점 멀어지고 분노는 증폭되는 시점이다.

특히 2030 세대는 “이번 생애 집 사기는 불가능하다”는 토로를 쏟아내고 있다. 여당 국회의원들 중 다주택 보유자는 총선 당시 재산등록 현황 기준으로 40명에 달한다. 여당 의원들은 수도권에 여러 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다. 부동산 정책 실패와 함께 여론 악화와 눈총을 받는 대목이다. 정부 여당이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며 대책을 아무리 내놔도 민심은 부글부글 끓기만 한다.

한국인의 부동산 자산 비중은 지나치게 높다. 집은 아예 투자 수단이 됐다. 살고 있는 집을 모두가 투자 수단으로 여기는 이상, 부동산 불패 신화는 꺼지지 않을 것이다. 집과 땅을 소유하고 싶은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렇다고 세상을 떠날 때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레오 톨스토이의 작품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을 떠올린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대문호 톨스토이는 쉰 살 이후 문학적 전환기를 맞이했다. 그 전까지 그는 예술적 문학의 거장이었으나, 쉰 살이 넘어서 부터 죽음에 이르는 30년 동안 인생의 의미와 진리를 얻는 투쟁을 가졌다.

톨스토이 자신은 귀족이자 대지주였다. 그의 영지는 하루 종일 말을 타고 달려야 할 정도로 넓었다. 톨스토이는 ‘나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죽음은 무엇인가?’ 등 물음에 대한 열렬한 진리를 간구하며 쉰 살 이후 많은 단편소설, 창작민화를 남겼다.

그 시기에 쓴 단편집 중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는 땅을 얻기 위해 욕심을 내는 어느 농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골 농부 바흠은 어느 날 아내와 대화를 나누다 “어릴 때부터 밭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자신이 가진 땅은 아주 조금뿐이라며 땅만 많다면 악마 따윈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이때 난로 뒤에 숨어있던 악마가 바흠의 말을 엿 들었다. 악마는 “좋다. 너에게 땅을 많이 주지. 대신 그 땅으로 너를 내 손아귀에 넣으리라.” 이로써 악마의 장난이 시작되었다.

바흠이 사는 마을 근처에 작은 땅을 소유한 여지주가 땅을 판다는 소문이 돌았다. 바흠은 그 땅을 사기위해 망아지를 팔고 돈을 빌려 드디어 매입에 성공한다. 꿈에만 그리던 자신의 땅을 소유하게 됐다. 땅은 토양이 좋아 풍부한 경작과 목초로 그를 만족시켰다. 이웃마을 농부들의 가축이 그의 목초지에 들어오거나 곡식을 먹을라치면 사정 봐주지 않고 법정에 세우거나 벌금을 받아냈다. 마을에서 바흠의 인심은 날로 떨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농부로부터 볼가강 건너편에 아주 비옥한 땅이 널려있어 조합에만 가입하면 지금보다 더 많은 땅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바흠은 즉시 땅과 집, 가축을 모두 팔고 그곳으로 이주했다. 과연 토양은 비옥해 밀농사로 풍작을 거두었다. 이것도 잠시, 바흠은 더 많은 사유지를 갖고 싶어졌다. 그러다 지나가던 상인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마을에 광활한 땅이 널려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 마을에는 족장에게 잘 보이기만 하면 돈을 조금만 지불해도 원하는 만큼 땅을 소유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바흠은 곧바로 집을 떠나 족장을 만나러 갔다. 족장은 바흠에게 아주 적은 돈만으로도 원하는 만큼 땅을 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단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출발 지점부터 돌아다니는 만큼 땅은 모두 바흠의 땅이 될 것이며, 해지기 전까지 출발지로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바흠은 기쁜 마음으로 출발해 쉬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하니, 비옥한 땅은 자꾸만 펼쳐져 표시하기 바빴다. 그는 녹초가 될 때까지 걷고 또 걸었고, 걸리적거리는 조끼, 물병, 장화까지 다 벗고 땅을 넓혀갔다. 어느덧 해는 지평선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땅을 많이 확보했지만 몸 상태가 나빠져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바흠은 죽을힘을 다해 해가 떨어지기 직전에 출발지로 간신히 돌아왔다.

족장이 웃음을 터트리며 “많은 땅을 차지했군”이라 말을 하는 순간, 바흠은 고꾸라져 그대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바흠의 하인이 무덤을 팠다. 그가 묻힌 공간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6피트, 그 만큼이 그에게 필요한 땅의 전부였다. 톨스토이의 이 단편소설은 땅, 재물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의 욕심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를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톨스토이 말년의 작품은 한결같이 ‘삶의 의미’에 치열하게 매달렸다. 그는 쉰 살이 된 이후, 그 전까지 누렸던 허영과 자만심, 명예욕을 참회하며 한 편 한 편 작품을 완성해 나갔다. 그의 유언대로 톨스토이의 무덤은 생전 그가 살던 영지의 숲속에 뭍혀, 비석도 기념비도 없이 네모난 풀 무덤이 전부인 모습으로 있다.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무덤이자 그가 가진 땅의 전부다. SW

murphy8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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