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향해 절하는 남자 '영원한 속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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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 향해 절하는 남자 '영원한 속죄'
  • 황채원 기자
  • 승인 2020.07.30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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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자생식물원에 설치된 조형물 '영원한 속죄'. 사진=한국자생식물원
한국자생식물원에 설치된 조형물 '영원한 속죄'. 사진=한국자생식물원

[시사주간=황채원 기자] 한복을 입은 소녀에게 한 남자가 절을 한다. 최근 강원도 평창에 위치한 한국자생식물원에 설치된 '영원한 속죄'라는 제목의 조각 작품이다. 이 작품을 놓고 일본 정부가 절을 한 남자가 아베 일본 총리라면서 "국제 의례상 용납할 수 없다"고 크게 비판하고 나섰고 우리 외교부도 "외국 지도급 인사에 대한 국제 예양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작품 속 절을 한 남자를 아베 총리로 단정짓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과 함께 굳이 우리 정부가 이 작품에 대한 입장을 밝혔어야했는가라는 입장도 나오고 있다.

'영원한 속죄'는 2016년 왕광현 조각가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사죄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최근 김창렬 한국자생식물원 원장이 8년 만의 식물원 재개관을 맞아 자비를 들여 설치한 것이다.

그러자 일본 언론과 정부 인사들은 절을 한 이가 아베 총리를 형상화한 것이라며 이 작품을 거세게 비난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28일 오전 정례 기자회견에서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직 확인하지 않았지만 사실이라면 일한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자민당의 나카야마 야스히데 외교부회장은 "외국의 정치가가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듯한 모습을 흉내낸 형태로 동상을 만드는 것은 상식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다. 이상한 행위다"라고 비난하며 "세계에서도 신용이 깎일 수 있는 위험이 발생한다는 것을 한국이 인식해야한다. 한국 정부에게도 감독 책임이 있지 않은가"라며 한국 정부를 겨냥했다. 

그런데 28일 외교부 브리핑에서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국제사회에서 국제예양이라는 것이 있다. 어느 나라건 간에 외국 지도급 인사에 대해서는 국제예양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물론 이는 스가 관방장관의 발언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지만 외교부가 작품에 대한 파악도 없이 절하는 남자를 아베 총리로 단정짓고 '국제예양을 고려했어야한다'고 성급하게 입장을 내놓은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실제로 조각상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면 남성의 얼굴이 아베 총리의 얼굴과 전혀 닮지 않았다는 것이 조각을 본 이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이 점을 생각해보면 외교부가 '국제예양'을 거론한 것은 일본의 비판에 너무 쉽게 꼬리를 내린 것이 아닌가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김창렬 원장은 2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절하는 남자에 대해 "아베 총리가 아니지만 (그 남자가) 아베 총리였으면 좋겠다는 말은 했다.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사죄를 하고 이렇게 좀 갔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표현한 것인데 아베가 사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베일 것이고 다른 분이 사죄를 한다고 하면 그분이 대상일 수 있다.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조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식물원 측은 논란이 지속되자 당초 다음달로 예정한 제막식을 취소했다. 하지만 김창렬 원장은 인터뷰에서 "조각상을 치울 생각은 전혀 없다. 우리집 마당에 만들어놓은 것을 이웃집에서 뭐라 그런다고 창고에 갖다 놓을 수 없는 거다. 그냥 오는 사람들이 '와서 이거구나' 볼 수도 있고 사진도 찍을 수 있고, 그냥 놓을 것이다"라며 철거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영원한 속죄'는 아베를 공격하는 내용의 조형물이 아니라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를 하길 바란다는 마음을 담은 작품이지만 이를 정치적으로 해석한 일본 정치인들의 발언과 여기에 부화뇌동한 외교부의 발언으로 논란으로 비화되고 말았다.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속을 보지 않고 겉만으로 판단하는 이들 때문에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바가 왜곡됐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소녀상을 보고 절하는 남자. 얼굴은 아베와는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아베 총리이기를 바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정말로 일본의 정치인들이 그간의 망언과 무례를 사과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이 작품을 보게 될 지도 모른다. 속죄를 받아야하는 우리에게는 '국제예양'이란 말은 통하지 않는다. 작품의 뜻을 한 번은 생각해 볼 만하다. SW

hcw@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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