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안84 논란으로 드러난 여성계의 ‘만화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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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안84 논란으로 드러난 여성계의 ‘만화검열’
  • 현지용 기자
  • 승인 2020.08.2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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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복학왕’에 “성상납 은유적 표현”
여성계, 네이버에 연재중단 요구까지
원수연 “창작·표현의 자유에 대한 패륜”
‘만화 죽이기’ 검열의 끝은 파괴·독재
사진=유니브페미 트위터 캡쳐
사진=유니브페미 트위터 캡쳐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웹툰 작가 기안84에 대한 여성계의 연재중단 요구가 여론에 불을 일으켰다. 심지어 ‘성평등 작품 제작 기준’이란 식의 제작 지침까지 등장해, 사실상 문화계 전반에 대한 여성계의 검열 및 페미니즘 프로파간다를 확산시키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인식이 굳어지고 있다.

지난 11일 네이버 웹툰에는 기안84의 연재작 ‘복학왕’ 304화가 게재됐다. 해당 회차는 취업난을 겪는 캐릭터 봉지은이 이를 타개하고자 벌이는 모습을 담은 이야기로, 해달처럼 배 위에 조개를 올려놓고 깨는 장면을 묘사했다. 그런데 해당 장면을 두고 일부 네티즌은 이를 ‘성상납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해당 회차 수정과 작가, 네이버의 사과에도 비난하던 여론은 급기야 시위로까지 벌어졌다. 지난 19일 기본소득당 젠더정치특별위원회와 유니브페미 등 여성단체는 네이버웹툰 본사 앞에서 기안84 작가에 대한 웹툰 연재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원수연 만화가 페이스북 캡쳐
사진=원수연 만화가 페이스북 캡쳐

심지어 일부 페미니즘 그룹과 작가진은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여론에 ‘성평등 작품을 위한 주의점’이라는 보도지침과 같은 가이드라인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90년대 만화 ‘풀하우스’로 큰 인기를 끈 원수연 만화가까지 나타나 이에 대해 일침을 날리기도 했다.

원 작가는 지난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누가 이들에게 함부로 동료작가들을 검열하는 권한을 줬나. 만화계에 오랫동안 벌어진 검열의 역사를 제대로 아는가” 라며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거꾸로 돌리는 행위이자, 만화계 역사에 암흑기를 다시 오게 하려는 패륜적 행위”라고 날선 비판을 가했다.

원 작가가 말한 만화계 검열은 이승만 정권 시절 故 김성환 시사만화 작가의 ‘경무대 똥통 사건’부터, 1961년 세워진 만화 사전심의제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세워진 한국아동만화윤리위원회는 정부 주도하에 만화가와 출판사의 작품에 대해 사전심의를 거치도록 강제했다. 또 관련 기준 강령을 세워 출판금지, 심하면 연재 중단 및 작가에 대한 법적 제재까지 가하기도 했다. 원 작가가 보낸 90년대도 청소년보호법에 따른 ‘청소년 유해매체’라는 낙인이 횡행하던 시절이었다.

과거의 만화검열이 총칼과 공포, 정치적 권위에 바탕을 둔 방식이었다면, 오늘날의 만화검열은 특정 유권자를 의식한 정체성 정치와 이를 등에 업고 ‘정치적 올바름’·‘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사회적 낙인으로 무장한 방식을 띄고 있다. 이미 지난해 2월 여성가족부의 성평등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 배포 및 페미니즘 비판 유튜브 모니터링 선언 등 문화계에 대한 검열 논란 이력이 쌓여왔기 때문이다.

故 김성환 시사만화가가 동아일보에 연재한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의 1958년 1월 23일 연재분. 해당 만화가 이승만 독재 정권의 권력 부패를 풍자했다. 사진=동아일보
故 김성환 만화가가 동아일보에 연재한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의 1958년 1월 23일 연재분. 이승만 정권의 권력 부패를 풍자했다. 사진=동아일보

이 때문에 원 작가의 일침은 여러 의미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과거 엄혹한 시기를 보낸 원로 만화가들에 대한 모욕 및 ‘창작의 자유’에 대한 가치 훼손만이 아닌, 그 때의 만화검열이 21세기에 다시금 재현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반영했다고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 같은 만화에 대한 성평등 제작 지침은 창작의 자유 제한을 넘어 극단적 페미니즘의 사상을 주입시키는 프로파간다로도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여성계와 현 정권에 대한 시민사회의 ‘호가호위’, ‘지록위마’란 비판을 보면 수긍이 갈만한 대목이다.

검열과 프로파간다는 수용자의 눈과 귀를 가린다는 공통된 본질적 특징을 가진다. 더욱이 이 둘은 나치 괴벨스의 성공적 사례처럼 인류 역사에서 언제나 혼합된 형태로 이뤄졌다. 그렇기에 자유 민주주의 국가 내에서는 어떠한 창작자가 프로파간다적 작품을 생산하거나 해당 창작품이 선동적 목적으로 쓰인다는 논란을 받지라도, 그것이 국가·국민의 안전과 개인의 자유 등 헌법을 침해하지 않는 영역 내에서는 이를 보장하도록 할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작품에 대한 수용자의 판단, 개인의 자유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반면 특정 사상을 명분 또는 근거로 가하는 검열은 해당 사회와 문화를 권위주의적·전체주의적 형태로 흘러가게 할 가능성이 높다. 여성계의 만화검열에 대한 원로작가와 여론의 반발 또한 프로파간다만큼, 혹은 더욱 위험한 검열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작금의 논란을 또 시작된’ 극단적 선동이 아닌 만화-문화 검열이라 읽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사는 검열과 프로파간다의 끝이 언제나 독재·파괴로 귀결됨을 기록해왔다. 건전하지도, 자유롭지도 않은 ‘만화 죽이기’만 보일 뿐이다. SW

hj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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