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위, 디지털교도소에 ‘면죄부’를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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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위, 디지털교도소에 ‘면죄부’를 주다
  • 현지용 기자
  • 승인 2020.09.15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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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심의위, 디지털교도소에 전면차단 불허
“사라지긴 아쉽다”, “사회적 환기점 공유해야”
네티즌 ‘사적제재 옹호이자 전체주의적 사고’
독재정권의 유산, 검열 넘어 ‘가치부여’ 망언까지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공익적 목적’이란 이유로 ‘디지털교도소’의 전면 차단을 거부해 여론이 들썩이고 있다. 이 때문에 방심위는 검열 논란을 넘어 사적제재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디지털교도소는 지난 3월 한 네티즌이 살인·성범죄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신상정보를 무차별로 공개하도록 개설한 불법 웹사이트다. 이에 경찰은 지난 9일 개인정보 유포 혐의로 사이트 운영진 검거를 위해 인터폴에 국제 수사 공조 요청을 하는 등, 수배령을 내린 상태다. 특히 가짜뉴스 살포 및 성범죄자 허위 지목·조작으로 무고한 피해자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해, 모 대학 교수가 피해를 입고 고려대 학생 1명이 숨지는 등 사건사고를 일으킨 바 있다.

이에 디지털교도소 전면 차단 여론이 불붙고, 방심위에도 전면 차단을 요구하는 민원이 쌓였다. 이에 방심위는 지난 14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통신심의소위원회를 열어 디지털교도소에 대한 정보통신심의규정 위반 여부를 심의했다. 그런데 방심위는 사이트 접속 전면 차단에 대해선 ‘해당없음’을 결정하고 사이트 내 명예훼손 정보 7건, 성범죄자 신상정보 10건 등 총 17건에 개별 정보에 대해서만 접속차단 및 시정 요구의 결정을 내렸다.

◇ 심의위원 입에서 나온 “사라지긴 아쉬운 사이트”

방심위의 결정이 일으킨 논란은 심의위원들의 회의 발언으로 크게 폭발했다. 미디어오늘 등 복수의 보도에 따르면 심영섭 위원은 “허위사실 게시글 등 공적 질서 위반과 범법행위를 저지르는 사이트는 확실하나, 사이트 전체를 차단해 얻는 이익보다 그냥 둠으로서 얻는 공적 이익 측면이 있다”며 사이트의 자체운영을 허가하는 발언을 했다.

강진숙 위원은 해당 사이트가 “75%의 범법률을 갖고 있지 않아 전체 차단은 과잉규제”라며 사이트 내 불법 정보 비율을 전면 차단 불허의 근거로 내세웠다. 심지어 전면 차단의 필요성을 말한 김재영 위원도 “2기 운영진이 밝힌 대로 사라지긴 아쉬운 사이트일 수 있으나, 좋은 취지라도 위법해선 안된다”며 디지털교도서의 위법행위에 대해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처럼 심의위원들이 적법성에 근거하지 않고 ‘가치판단’적 근거를 내세우는 발언은 절정에 다다랐다. 강 위원은 “불법정보는 개별심의로 진행하면 된다. 사적 심판으로 개인의 희생이 있을 수 있으나, 디지털교도소가 환기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디지털교도소의 활동이 주는) 사회적 환기점을 공유해야한다”고 말했다.

사진=디지털교도소
사진=디지털교도소

◇ 네티즌 ‘사적제재 옹호’, ‘월권’, ‘전체주의 사고’

방심위 위원들의 회의 발언이 언론에 공개되자 여론은 즉각 반발했다. 방심위는 설립 이래 명목상 방송 및 통신에 대한 심의 활동을 한다고 하나, 실질적으로는 검열행위를 한다는 논란을 꾸준히 받아왔다. 이 때문에 네티즌은 1차적으로 심의위원들의 이번 발언이 ‘디지털교도소의 사적제재를 옹호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특히 심의위원들의 발언이 도마 위에 올랐다. 위원들이 사석이 아닌, 회의록이 남는 공식 석상에서 사실상 법 절차와 헌법 가치를 무시하고 ‘전체주의적 사고’에 기반한 가치판단을 내뱉었다는 이유다.

성범죄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앱 ‘성범죄자 알림e’조차 현행법에 따라 타인에게 해당 앱에 등록된 성범죄자의 개인정보를 무단 공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를 볼 때 심의위원단들의 발언은 사실상 월권행위 논란까지 받고 있다. 심지어 네티즌은 심의위원단의 페미니즘 연구 및 전보 언론단체 출신 등 과거 이력까지 추적하며 편향성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 독재정권의 전신, 헌법을 우회하다

방심위의 전신은 1962년 방송윤리위원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신체제 하에 관권검열, 민간검열로 출판 검열의 선봉에 앞장섰던 방송윤리위는 이후 1980년 언론통폐합을 거쳐 1981년 방송심의위원회, 2007년 정부조직 개편으로 방송통신위원회, 2008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이르게 된다.

역사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방심위의 태생과 본질은 ‘국가 주도의 검열’이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방심위는 민간 자율심의기구이면서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18조를 따라 설치 근거를 법적으로 두고 있다. 그러면서 방심위 위원장과 상임위원은 대통령과 국회가 위촉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 같은 구조는 방심위가 검열 논란에도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근거이자, 위력이 발휘되도록 보장한다. 정부 직속 산하로 두면 관리가 용이한 반면, 헌법 제18조·제21조가 명시하는 ‘통신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 제한 금지에 걸린다. 이를 우회하고자 만들어진 이 같은 구조는 결과적으로 정부의 입김이 닿도록 가능케 한다고 볼 수 있다.

사진=구글
사진=구글

◇ ‘https 차단’...文 정권 방심위의 화려한 이력

방심위의 결정은 국가인권위원회와 달리 실질적인 ‘호가호위(狐假虎威)’적 위력을 뽐내고 있다. 지난해 2월 방심위에도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명분으로 국내 네티즌의 해외 웹사이트 접속을 차단하는 이른바 ‘https 차단 사태’를 벌였기 때문이다. 이에 KT 등 대형 통신사 3사는 방심위 결정을 전면 수용하고 상당수 해외 웹사이트들에 접속차단 조치를 내렸다.

문재인 정부 아래 방심위는 2018년 해외 불법 사이트 차단에 DNS 차단 방식을 동원해, 박근혜 정부의 카카오톡 사찰과 같은 감청·검열 논란을 받은 바 있다. 그럼에도 지난해에는 https 차단 조치를 대대적으로 강행해 여론의 강력 반발로 부랴부랴 해명한 전례도 있다.

이 때문에 이번 방심위의 전면차단 불가 조치 및 심사위원단의 발언은 기존 검열에 대한 반발을 넘어, 사적제재란 범법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법치 훼손 및 방조, 월권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검열 넘어 가치 부여...인터넷 자유 중진국이란 민낯

방심위는 민간 자율독립기구이면서 실질적으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헌법재판소는 2012년 방심위에 대해 국가행정기관이라 간주한다는 판결을 냈다. 방심위의 조치가 표현·출판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위력을 갖고 있기에, 기본권 보호 및 권리보장을 위한 소송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판단이다.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디지털교도소 전면 차단은 법치주의 회복과 더불어 ‘무고한 일반인의 피해를 하루 빨리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모인 결과라 읽을 수 있다. 사법기관의 수사와 판결에 따른 사이트 전면 차단 결정까지 걸릴 긴 시간을 최대한 줄이자는 목적인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시민사회 스스로가 검열 논란을 쌓아온 방심위에 웹사이트 차단을 요청하는 슬픈 풍경까지 와버렸다.

인터넷 속도 측정 웹사이트 ‘스피드테스트(Speedtest)’에 따르면 한국의 광대역 인터넷 속도는 싱가포르의 뒤를 이어 세계 2위, 모바일 인터넷 속도는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씽크탱크 프리덤하우스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주요 선진국들을 포함한 65개국 중 20위(부분 자유)에 머무르고 있다.

독일, 미국, 일본보다 뒤떨어지는 한국의 인터넷 자유는 방심위 사태로 급변하는 모습이다. 더 이상 시민사회는 인터넷 선진국이란 표상보다 인터넷 자유 제한이란 실상에 주목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방심위는 검열을 넘어, ‘면죄부 발급’이란 논란까지 이력에 새기게 됐다. SW

hj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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