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칼럼] 한 개그우먼의 죽음을 애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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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칼럼] 한 개그우먼의 죽음을 애도하며
  • 오세라비 작가
  • 승인 2020.11.0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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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KBS
사진=KBS

[시사주간=오세라비 작가] 만인에게 웃음을 안기는 코미디언의 갑작스런 죽음은 충격과 안타까움을 준다. 그것도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경우 더욱 그렇다. 개그우먼 故 박지선 모녀가 함께 목숨을 끊은 사건은 생전 대중에 안겨준 웃음만큼 많은이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줬다.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안타까움까지 밀려온다.

고인은 2007년 KBS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하자마자 곧바로 인기 개그우먼이 됐다. 당시 높은 인기를 누리던 코미디 프로 ‘개그콘서트’에 고정출연하며 단번에 이름을 알렸다. ‘멋쟁이 희극인 박지선’이라는 익살맞은 고인의 트위터 아이디가 뜻하듯, 그녀는 코미디언이라는 직업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을 보였다.

원래부터 코디미를 좋아하는 필자는 그녀가 주역으로 고정 출연한 개그콘서트의 ‘조선왕조부록’ 코너를 가장 즐겁게 시청했다. 그녀는 후궁 ‘원빈’을 맡아 신분이나 외모 때문에 임금이 가끔 처소로 찾아왔다가도 도로 줄행랑을 치는 과정을 에피소드로 그렸다. 그녀를 본격적인 희극인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린 출세작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후 십 여 년 간 코미디 부문에서 활약을 하며 많은 상을 수상했다. 오락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해 박지선만의 ‘유니크’한 개그를 선사했다. 그녀의 개그는 가히 ‘무공해’라 불러도 될 만큼 순수한 웃음의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생활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과장하지 않고도 충분히 반전하던 웃음 포인트부터 자신의 외모를 두고 자학 개그를 해도 결코 자존심을 낮추지 않기도 했다. 에피소드를 무리하게 끌어가거나 타인을 비하, 또는 거친 말로 이어가는 개그가 아니었다. 대중들은 그녀의 그런 점을 공통적으로 좋아했던 것이다.

그녀는 학생 시절 반장도 도맡으며 뛰어난 학업 성적으로 상위권 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직업으로 희극인을 선택했다. 코미디 프로에서 인기를 펼치자 외부 초청 강연도 다니며 인기 강사가 됐다. 가요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순수하고 청량한 목소리까지 뽐냈다. 양친과 각별한 가족애를 보이며 대중에 긍정의 에너지를 발산하던 그였다.

이 때문에 30대라는 한창 좋을 나이, 인생의 황금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데 대해 대중의 슬픔 또한 큰 모습이다. 그녀의 웃음 뒤에 가려진 병마 혹은 심적 고통이 얼마나 컸기에 그런 선택을 했을지 안타까움이 밀려든다.

속담에 ‘든 자리를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그녀에 대해 대중들은 그 죽음을 애도하며 문득 느낀다. “아, 참 좋은 개그우먼이었지!” 그녀는 자극적이거나 품격 낮은 언행없이 큰 웃음을 선사했다. 그녀가 SNS에서 남긴 말들, 전성기를 누리던 때의 개그코너를 다시 봐도 유머에는 선량함이 있다.

한국에서 개그우먼을 직업으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기성 개그우먼들의 가정사 불화나 스캔들이 터지면 유독 언론과 대중의 시선은 차가웠다. 사생활 문제로 한 번 물의를 빚으면 훗날 재기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 많은 개그우먼들이 기라성 같은 코미디 프로에서 활약했지만, 프로그램이 끝나고 살아남아 다른 장르로 변신을 하는 이들도 소수다. 대중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개그우먼에 대한 세간의 평판 역시 다른 연예인들에 비해 박한 것도 사실이다.

그녀는 첫 데뷔 시절부터 피부 알레르기로 화장을 전혀 할 수 없어 맨 얼굴로 출연했다던 고충을 토로한 바 있다. 그럼에도 대중은 그녀를, 있는 그대로의 박지선을 인정했다. 외모가 큰 부분을 차지하는 연예계이기에 희극인 이전, 한 여성으로서 박지선의 고민은 여기에 있었을까. 그녀가 사생활에 있어 어떤 고통에 처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청소년 시절 심한 여드름으로 인한 심각한 피부 질환에 시달렸다고 한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을까. 그녀의 죽음도 그것과 관련된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을까 짐작할 따름이다.

근래 들어 정통 코미디물이 하락을 면치 못하고 방송 프로그램조차 종적을 감춘 시대다. 코미디 소재가 메마르고 방송에서 활약하던 그 많은 희극인들이 코미티 프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시절이다. 희극인들의 심적 부담은 상당할 것이다. 여타 개그우먼들은 더러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로, 버라이어티 쇼 혹은 리얼리티 쇼 등에 단골로 출연해 입담을 과시한다.

그들의 고충을 감히 짐작할 순 없으나, 코미디언들은 ‘웃겨야 산다’는 말처럼 대중에게 웃음을 줘야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는 것으로 안다. 갈수록 대중의 입맛이 까다롭고 변덕이 심한 세상 속에서 웃음을 주고 개그 소재를 찾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고인은 평소 여러 사람들 앞에서 그들을 웃길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해왔다. 그녀가 떠난 자리, 유튜브에는 예전 출연한 프로그램에서 항상 긍정적이고 따스한 익살이 넘치는 작품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필자는 가장 좋아했던 ‘조선왕조부록’ 몇 편을 찾아서 다시 본다. 여전히 그녀의 연기에 웃음이 나온다. 코로나19는 여전히 우리의 삶을 옥죄고, 가을은 퍽 깊어간다. 가을과 함께 우리 곁을 떠나간 멋쟁이 희극인 故 박지선, 그녀를 애도한다. SW

murphy8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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