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하지 않는 죽음' 김기덕의 명암
상태바
'슬퍼하지 않는 죽음' 김기덕의 명암
  • 황채원 기자
  • 승인 2020.12.15 09:18
  • 댓글 0
  • 트위터 411,32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기덕 감독. 사진=뉴시스
김기덕 감독. 사진=뉴시스

[시사주간=황채원 기자] 지난 11일 외신을 통해 소식이 전해졌다. <나쁜 남자>, <피에타>, <뫼비우스> 등을 만든 영화감독 김기덕(60)이 라트비아에서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그의 일생은 크게 둘로 나뉜다. 칸과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 등 세계 3대 영화제 본상을 수상하고 해외 영화계가 주목한 거장의 일생과 여배우 폭행, 성폭력 등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진 범죄 혐의자의 일생이 그것이다. 그로 인해 그의 사망 소식에도 국내 영화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김기덕 감독은 1996년 <악어>로 시작해 2000년 <섬>으로 베니스 영화제에 진출하는 등 해외 영화제가 인정한 감독이었지만 국내에서는 '여성 혐오', '극단 폭력' 등의 혹평을 받으며 작품마다 논란을 가져왔다. 특히 여성 평론가들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아왔지만 그는 우직하게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이어갔고 그 결과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빈집>으로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 2011년 <아리랑>으로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상, 그리고 2012년 <피에타>로 베니스 황금사자상을 안는 등 국제적인 거장으로 인정받아왔다.

하지만 국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김 감독은 한국 영화계의 비주류에 머물렀고 극장가의 외면을 받는 어려움도 겪었다. 2013년에는 <뫼비우스>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자 이에 항의하며 '찬반 시사회를 열고 30%가 반대하면 개봉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결국 약간의 손질 끝에 극장 개봉이 되는 일도 겪었다. 이전부터 영화 스타일, 촬영 과정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영화 팬들은 '비주류 감독에 대한 지나친 매도'라고 여기며 김 감독의 스타일을 인정해왔다.

그러나 지난 2017년 여배우 폭행 등의 논란에 휩싸인데 이어 2018년에는 자신이 연출한 영화에 출연한 배우로부터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다. 그리고 MBC 'PD수첩'이 그의 행적을 폭로하면서 비난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김 감독은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여배우와 MBC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모두 패했고 국내 활동은 사실상 중단됐다. 그가 만들었던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이 유바리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을 때는 여성단체들이 항의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내에서 그는 사실상 '매장당했다'.

물론 이후에도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는 등 활동을 했지만 사실상 '성폭행범'이라는 낙인은 국내외에 계속 찍혀 있었다. 그리고 라트비아에 자신의 거주지를 마련하려했지만 코로나19에 감염되며 생을 마쳤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 소식에 영화 팬들은 충격을 받았지만 이내 그의 행적을 생각하며 슬픔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고 있다. 

영화평론가이자 번역가인 달시 파켓은 "2018년 김기덕에 관련된 프로그램이 방영되면서 수업 때 그의 영화를 가르치는 것을 중단했다. 만약 누군가 실생활에서 사람들에게 그렇게 끔찍한 폭력을 가했다면 그를 기리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했고 평론가 피어스 콘란은 "그의 죽음에 대해 나쁜 말을 하고 싶은 것을 참아야했고 특히 서양에서 그에 대한 애도가 이어지는 것이 슬펐다. 영화계에 그가 남긴 업적은 잊혀지서는 안되겠지만 그의 끔찍한 성범죄의 희생자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물론 "한국 영화계의 크나큰 손실이자 슬픔"(전양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등의 애도 메시지가 나오고 있지만 그의 행적이 드러난 상황에서 사실상 그를 추모하는 분위기는 나오지 않는 게 현실이다. 한국영화감독조합도 "김 감독은 조합 소속이 아니다. 입장을 발표할 계획이 없다"며 선을 긋는 입장을 밝혔다.

그의 죽음은 분명 한 영화 작가의 죽음이기도 했지만 여성에게 폭력과 폭압을 가했던 범죄자의 죽음이라는 입장이 더 크게 사람들에게 다가왔고 그렇기에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죽음'이 되고 말았다. 비주류의 영화 인생, 굴곡진 영화 인생이 그의 작품 세계를 옹호한 바탕이 되었지만 '인간성'의 문제에서 그는 결국 낙오되고 말았다. 한 인간의 죽음에 씁쓸함을 느껴야하는 이유다. SW

hcw@economicpost.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