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위 '성평등 지수 정책', '희망' 혹은 '역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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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위 '성평등 지수 정책', '희망' 혹은 '역차별'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0.12.2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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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감독, 여성 영화에 지원 및 공모전 '가산점 부여'
청와대 청원 "여성이라는 이유로 점수 차등, 공정성 문제"
영진위 "소외됐던 여성 영화인에 기회, 문제 발생 시 재검토"
지난 18일 유튜브를 통해 진행된 2021년 영진위 사업설명회에서 주성충 지원사업본부장이 '성평등 지수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
지난 18일 유튜브를 통해 진행된 2021년 영진위 사업설명회에서 주성충 지원사업본부장이 '성평등 지수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영화진흥위원회가 최근 재능있는 여성 영화 인력 유입과 한국영화산업의 성별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성평등 지수 정책'을 도입하기로 했다. 남성 위주로 기울어진 한국영화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취지에서 나왔지만 성별로 시나리오 지원을 평가한다는 것은 공정하지 않고 '역차별'을 일으킬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18일 영진위는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진행한 '2021년 사업설명회'에서 "성평등 지수 정책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영진위는 "한국영화산업 내 핵심 창작인력에서 과소대표된 여성 인력과 여성 주도 서사의 비율을 늘려 성별 균형을 유지해 한국영화산업의 성별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경력 단절로 영화산업 내에서 경력을 지속해 나가지 못했던 재능 있는 여성영화 인력을 적극적으로 유입해 참신성과 창조성을 확대하고자 한다"며 사업 목적을 밝혔다.

이에 따르면 한국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시나리오 영화화 연구지원사업 등 한국영화기획개발지원사업에서 여성 작가, 여성 서사(제1여주연)로 이루어질 경우 5점의 가산점이 주어지며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에서도 여성 감독, 여성 프로듀서, 여성 작가, 여성 서사로 구성될 경우 최대 5점의 가산점을 받게 된다. 특히 한 사람이 감독, 프로듀서, 작가 등을 맡는 '1인 다역'의 경우도 각각 독립적으로 점수를 부여해 가산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난 6월 나온 영진위 연구서 <한국영화 성평등 정책 수립을 위한 연구>에서 저자들은 "한국영화는 90년대 중반부터 때때로 좋은 평가를 받은 여성 감독이 등장하면서 크게 주목받았지만, 지난 30년간 전체 상황은 그리 크게 좋아지지 않았다. 특히 지난 10년간 영화학과의 여학생이 50%를 꾸준히 넘었고, 여성 관객도 50% 이상이었음을 고려해볼 때 10%를 겨우 넘는 여성감독 비율은 매우 문제적이다. 한국영화도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등하게 세우고 변화를 향해 나아가야 할 때다"라고 주장하면서 심사평가 기준에 '성평등, 다양성' 항목을 포함하고 △감독, 프로듀서, 작가 중 2인이 여성일 경우 △주연이 여성 △다양한 정체성 혹은 주제 재현 등에 가산점을 줘 성별 균형이 적절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최근 여성영화들과 여성영화인들의 약진이 코로나 시대에 얼어붙은 영화계를 살리고 있지만 아직도 배우 캐스팅이나 영화 제작 등에서 남성 위주 배우와 캐릭터, 남성 중심의 영화들이 나오고 있는 점에 비추어보면 여성 영화인들과 여성 서사의 영화들을 지원해 성 비율을 맞추고 다양한 관객들의 취향을 맞추자는 의미에서 이 제안이 주목받았다.

그러나 이를 두고 영화계에서 '역차별'이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이 정책의 재검토를 요청하는 내용의 청원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실렸다. 지난 22일 청원을 올린 청원인은 "문화의 다양성, 기회의 공정성, 소통과 공감에 대한 측면에서 이번 정책은 문제가 있다. 성평등 지수 정책에 이의를 제기한다"고 밝혔다.

청원인은 "특정 성별이 주인공인 서사를 인위적으로 유도한다면 다양한 연령과 성별, 인종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작품은 만들어지기 어려울 것이며 작품 자체만으로 평가해야할 국가기관 시나리오 심사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점수에 차등을 둔다는 것은 공정성과 거리가 멀다.  성평등 지수 정책은 여성을 존중하기보다는 여성이 쓴 작품은 남성이 쓴 작품보다 불리한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왜곡된 성인식이 내제되어 있다. 영진위는 이미 확정된 사업이기에 변경이 불가피하다고 하는데 많은 반대 여론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강행한다는 건 납득하기 어려운 소통방식"이라고 주장했다.

또 남녀를 구분하는 평가로 인해 실력있는 여성 영화인들이 '가산점 때문에 덕봤다'는 편견에 부딪힐 수 있기에 오히려 여성 영화인들에게 더 안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성 비율을 맞춘다면서 여성 영화를 강요하는 것은 역효과를 낼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영진위 관계자는 "충분히 우려와 걱정, 비판을 할 수 있는 사항"이라면서 "각종 통계나 연구를 통해 여성이 남성 위주의 영화계에서 소외됐다는 결과가 나와 이를 바탕으로 결정한 사항이고, 성평등소위원회 측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 소외된 부분을 좀 더 반영하자는 차원에서 결정했다. 다소 의도적인 부분이 있고 역차별 문제도 우려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번 정책을 통해  소외당해온 여성 영화와 여성 영화인들에게 기회를 주자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시행 중 우려했던 부분이 현실이 되거나 부작용이 나타난다면 당연히 개선책을 검토할 것이다. 어느 정도 평등이 맞춰진다면 그 때는 다른 방법으로 전환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침체됐던 올해 한국영화계였지만 <남매의 여름밤>, <69세>,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그리고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보건교사 안은영> 등 여성 감독, 여성 서사의 영화가 관객들의 인정을 받으면서 그동안 소외당했던 여성영화들이 일어서는 계기가 마련된 해가 올해였다. 성별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만들어진 이번 정책이 영진위의 생각대로 이루어질 지, 아니면 '역차별'이라는 비판 속에 사라질 지가 내년 영화계를 보는 하나의 관심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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