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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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 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 승인 2021.01.05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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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동현 기자
사진=임동현 기자

[시사주간=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제 휴대폰이 무겁다는 생각은 늘 했지만요, 새해 들어 폰 안의 저장물들 살펴보다가 놀라고 말았습니다. 저장된 전화번호가 우와~ 4998개! 이거 절대 자랑이 못된다고 보는데요, 딱 2개 모자란 5천 개의 번호를 갖고 있었던 겁니다.

제가 뭐 사교성 좋아 엄청나게 지인이 많거나 전화번호 이용해 무슨 영업하고 그런 건 아님에도 수량이 실로 장난이 아니어서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했더니, 아, 제 생활습관이 그랬습니다.

공공전화 번호까지도 미리 입력을 해뒀고, 길 가다 특별한 행사 안내 현수막에 있는 연락처 기록, 심지어 간판을 보고도 나중에 필요하겠다 싶으면 저장을 미리 해두는 철두철미 성격이 있거든요.

그래도 그런 공적 전화가 몇 백 개는 아닐 테니, 일단 전번이 무척 많습니다. 웬만한 정치인(특히 국회의원)의 전화번호 개수를 능가하지 않을까 싶네요.

요즘에야 휴대폰을 바꿔도 기왕에 들어있던 내용을 간단한 방법으로 그대로 옮길 수 있으니 편리합니다만, 예전에는 해가 바뀌면 손에 들고 다니던 수첩(비즈니스 다이어리)에 있는 지인(서로 아는 사람)의 번호를 옮겨 적느라 밤을 지새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달라진 번호 수정하느라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 계속 둬? 올해로 끝내?’ 삭제하는 데 망설이는 그 깊고 또 깊은 심사숙고를 거치느라 그랬습니다. 내게서 정리되는 사람의 규정은 1순위가 알 듯 말 듯 한 사람이지만, 거짓말을 자주 한다, 중요한 약속을 어겼다, 더 이상 미련이 없다 등도 포함됩니다.

물론 제 일방적 판단이어서 제 창고에서는 방출시켰지만 상대는 그대로 둔 경우가 있을 겁니다. 반대로 전 우호적이라 생각해 금지옥엽처럼 갖고 있는 전번이건만 상대는 이미 저를 바람에 재 날리듯 버렸을 수도 많겠죠.

인간의 정이라는 게 이를테면 134.65kg=134.65kg 이렇게 정확하게 계량되지 않으니까요. 한쪽이 크거나 많은 '>'나 '<'이 적잖은 법이죠.

그런데 전번에서 퇴출을 시키는 사람 중엔 여태까진 매우 친했던 사람이 있을 때 갈등과 번민이 큽니다. 이러면서 결론을 내리긴 하지요. “그가 그럴 줄 몰랐어!”, “내가 사람을 잘못 봤지!” 뒤의 사유는 내 우둔을 탓하니 자책을 인정하는 것 같지만 기실 둘 다 대상자가 나쁜 인간들이니 더 이상 사귈 까닭이 없다는 겁니다.          

자기가 보관하는 전화번호 분량이나 내용을 누가 뭐라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함석헌 선생의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가 생각났습니다.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그런 사람 있다면 온 우주 가치보다도 클 터, 다른 누구도 필요 없겠죠. 전화번호 리스트가 덕지덕지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느냐 이겁니다, 제 말은요!  

그런 한편 1사2형3우(一師二兄三友)라고 했으니 진정한 스승 한 분에 친형과 같이 더없는 선배 2인, 아무 거나 아무 때나 맘 통하는 친구 세 명은 있어야 한다고도 했죠.

참, 제 전화번호 보관함 5천여명 안엔 작년에 저 먼저 세상 떠난 사랑하는 동생과 몇 해 전 숨진 제 직전 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장 故 김덕상, 10년도 더 전에 저세상 가버린 절친 前 전남대 교수 故 최창남 등의 번호가 그대로 있습니다. 아, 한 사람 더요. 아내보다도 먼저 알았던 ‘그 여자’의 옛날 번호. 계속 둘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생 삐삐나 휴대전화기를 지녀보시지 못한 어머니, 아버지 전번은 없습니다. SW

erobian20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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