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칼럼] 장애가 업보? 관점을 바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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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칼럼] 장애가 업보? 관점을 바꾸라
  • 김철환 활동가
  • 승인 2021.02.16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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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울'의 한 장면.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 '소울'의 한 장면.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시사주간=김철환 활동가]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장애를 개인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불교의 영향으로 장애를 과거 전생의 업보(業報)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전생에서 후생으로 간다는 윤회(輪回)는 힌두교에서 나왔지만, 오랜 세월 불교와 함께 재생산되면서 우리 삶 속에 뿌리를 내렸다.

하지만 전생의 죄업으로 장애인이 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피상적인 것이다. 설령 죄업으로 장애인이 되었다 하더라도 환경적인 요소를 간과했다. 현재 우리는 눈부신 과학문명을 비롯하여 복잡하고 다양한 국제질서 속에 살아가고 있다. 과거의 업보 논리는 설득력을 얻기 쉽지 않다. 이제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전통적인 관점도 바뀌어야 할 때다.

인간을 중심으로 본다면 세계를 거시적인 세계, 미시적인 세계로 나눌 수 있다. 거시적 세계는 우리가 사는 곳에서부터 광활한 우주까지 말할 수 있다. 이 세계는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고, 사과는 밑으로 떨어지는 등 운동의 법칙인 원인과 결과가 지배한다. 

하지만 원자 단위의 미시적 세계에서는 다르다. 원인과 결과가 안 먹히는 경우도 있으며, 존재와 비존재가 혼재하여 확률로만 계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 몸 안에서, 지구의 밑바닥에서, 우주를 이루는 작은 단위에서 현재도 일어나고 있는 것들이다. 물리학에서는 이를 양자역학(量子力學)으로 설명하고 있다.

양자역학은 20세기부터 논의되어 왔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낯설다. 그럼에도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며 양자역학을 빼놓을 수 없듯이 우리에게 비중 있게 다가오고 있다. 개발되고 있는 양자컴퓨터는 슈퍼컴퓨터가 1만년이나 처리할 연산을 3분 20초에 끝낸다한다. 이처럼 양자역학은 앞으로 AI(에이아이)의 구현 등 무궁무진하여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올 것이다.

이러한 환경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고나 가치관도 바꿀 것이다. 원인은 반드시 결과로 이어진다는 생각이나 개인이 모여 사회나 국가를 형성한다는 개인중심적인 가치도 수정될 것이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장애인이나 불교에서 말하는 업보에 대한 관점도 그럴 것이다.

불경에서 업보와 관련한 내용을 보면, “불법승 삼보를 훼방하여 눈멀고 귀먹고 벙어리의 과보를 받는다”(<지장보살본원경>), “마음속으로 업을 지어도 벙어리와 소경의 과보를 받는다”(<대반열반경>) 등이다. 이러한 업보가 장애인으로 태어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불경의 관점에서 장애의 시작은 질병이다. 장애의 원인이 포괄적이라 원인과 결과의 상관성도 약하다. 종교이기 때문에 장애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보살(菩薩)의 힘에 기대는 방법이 최선이다. 그렇게 신체적인 장애를 벗은 상태가 최적의 상태라고 불경에서는 보고 있다. 

지금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내용이다. 설령 과거의 행위의 결과로서 장애가 생겼다 할지라도 환경적인 요소가 빠져 설득력도 약하다. 인간은 태어나고 자라는 과정에 환경의 지배를 받는데 이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한 인간의 행위에 포함된 수많은 요소들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현대는 양자역학을 이야기하는 시대이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업보를 재해석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난 달 국내에서 개봉한 디즈니 픽사의 애니메이션 영화 <소울(Soul)>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사후세계의 영혼들이 순간순간 차원을 달리하며 변모한다. 서로 합쳐졌다가 접혀지거나 굴절되기도 한다. 현재의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로, 양자역학에 빗대어 해석하는 이들이 있다. 영화를 통해 장애 문제도 다시 해석할 필요가 있다. 

거시적 세계는 원인과 결과가 지배하지만 미시적 세계인 내면세계는 그렇지가 않다. 불교에서 말하는 개인이 살아 있는 동안 행위가 어떻게 재생산 되는가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이 가졌던 경험이라는 내면세계는 그대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정한바 없이 얽힌 상태(중첩)로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정해 놓은 사고나 문화의 틀에 의하여 장애가 결정되는(관찰자 효과) 것일 뿐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참다운 업보의 개념일 것이다. 더 나아가 장애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을 불식시킬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SW

k6469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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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2021-02-16 20:24:29
불교도 이제는 바뀔 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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