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다' '가혹하다'에 묻혔던 체육계 학교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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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다' '가혹하다'에 묻혔던 체육계 학교폭력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1.02.1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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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드러난 배구선수들 중징계, 팬들 "더 강한 처벌 필요"
대한체육회 "청소년기 무심코 저지른 행동, 출장정지 등 가혹" 논란
'최숙현법' 통과됐지만 비관론 우세 "보여주기에 그칠 것"
최근 학교폭력 사실이 폭로된 흥국생명의 이재영(왼쪽)-이다영 자매. 사진=뉴시스
최근 학교폭력 사실이 폭로된 흥국생명의 이재영(왼쪽)-이다영 자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최근 '학교폭력' 폭로로 프로배구가 큰 타격을 입은 것을 계기로 학교폭력 가해 선수에 대한 강력한 대응과 예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지난해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가 미진한 조치로 일관했고 이번에도 대한체육회가 학교폭력 가해 선수들을 옹호하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구제를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체육회가 학교폭력 해결은 커녕 숨기기에 급급하고 '성적지상주의'를 여전히 강조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10일 한 포털사이트에 올려진 '현직 배구선수 학폭 피해자들입니다'라는 글을 시작으로 현재 프로에서 뛰고 있는 배구선수들에게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피해자들의 폭로가 이어졌다. 여자배구 흥국생명의 이재영-이다영 자매, 남자배구 OK금융그룹의 송명근, 심경섭이 학폭 가해자로 지목됐고 이들은 모두 사실을 인정하고 자숙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흥국생명의 두 선수는 숙소를 나와 두문불출 중이며 OK금융그룹의 두 선수는 잔여경기 출전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팀은 이를 수용했다.

이후 흥국생명은 두 선수에게 '무기한 출전정지'를 결정했고 대한배구협회는 '학폭 가해자들은 국가대표 선발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배구팬들은 소속팀이 '분위기가 잠잠해질 경우 다시 출전시킬 빌미를 만든 것'이라며 더 강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지난 18일에는 남자배구 한국전력 소속의 박철우 선수가 2009년 국가대표 코치 당시 자신을 폭행했던 이상열 KB손해보험 감독을 공개적으로 저격했다. 이 사건은 선수에게 폭력을 가한 지도자가 몇 년 뒤 아무렇지도 않게 프로팀 감독으로 복귀해 피해자와 만났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줬다. 이상열 감독뿐만 아니라 프로팀에서 선수에게 폭력을 가했던 감독들이 모두 돌아왔다는 점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됐다.

조용구 대한배구협회 사무처장은 지난 1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2014년 '스포츠 4대 비리 근절'이라는 큰 타이틀을 갖고 체육계에 일종의 '정풍 운동'이 일어났다. 그 이후에 체육계도 상당히 큰 변화가 있었고 특히 성폭력, 폭력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교육과 인권교육이 실시되어 그 이후에는 사실 폭력사태가 많이 줄어들었는데 지금 현재 발생한 건은 그 이전의 것이라 문제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를 두고 대한체육회가 가해자를 두둔하는 뉘앙스의 입장을 밝히면서 논란이 더 커졌다. 지난 18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인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개한 체육회 답변서에서 체육회가 "청소년기에 무심코 저지른 행동으로 평생 체육계 진입을 막는 것은 가혹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을 낸 것이다. 가해자 두둔은 물론 학교폭력을 '청소년기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무마한 답변에 대한 비난이 대한체육회에 쏟아졌다.

논란이 커지자 대한체육회는 "가해자에게도 사회에 재진입할 수 있도록 기회 제공이 필요하다는 일부 표현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면서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징벌 및 규제를 우선적으로 실시하되, 가해자가 청소년인 점을 감안해 향후에도 동일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범방지 굣육, 사회봉사 명령 등을 통해 교화해 올바른 자세로 사회를 살아갈 수 있도록 병행해 프로그램 마련이 제도적으로 필요하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난해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이 발생하고 가해자들이 형사처벌을 받는 과정에서 대한체육회의 노력이 보이지 않았음을 알고 있는 이들은 이번에도 대한체육회가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19일부터 개정 국민체육진흥법(일명 최숙현법)이 시행된다. 이 법은 체육인에게 체육계 인권침해 및 비리 발생 시 즉시 신고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누구든지 신고자에 대한 정보를 공개, 보도, 누설하거나 신고의 방해 및 취소 강요, 신고자에 대한 불이익이 발생할 시는 책임자 징계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스포츠윤리센터의 조사 권한을 강화하고 지도자의 폭력 및 성폭력 신고를 받을 경우 곧바로 피해자 등에 대한 긴급보호 등을 하게 하며 인권침해가 계속될 시 침해한 기관 및 단체와의 접촉 금지, 가해자의 업무 배제 등의 조치를 하도록 권고할 수 있게 했다. 가해자는 최대 5년까지 체육지도자 자격이 정지되며 특히 폭력 및 성폭력을 저지른 지도자는 10~20년까지 자격 취득이 제한된다.

그러나 법안이 강화된다고 해도 신고에 대한 불이익이 계속되고 이로 인한 우려로 신고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학폭 피해가 계속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로 지목되고 있다. 실제로 교육부가 지난해 초중고교 학생 선수의 폭력 피해를 익명으로 알릴 수 있는 온라인 신고센터를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7개월간 신고가 접수된 사례는 10건에 불과했다.

지난해 故 최숙현 선수 사건을 알렸고 역시 폭력의 피해를 입었던 정지은 전 트라이애슬론 선수는 16일 MBC 라디오 '김종대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소속팀이 갑자기 '공황장애 약을 먹고 있어 훈련을 못하기에 데리고 가기 힘들다'며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일주일 만에 태도가 바뀌었다. 현직 선수들도 2명만 남고 다 그만두거나 재계약이 불발됐다. 세상에 비리와 폭행을 고발한 게 원인이 됐다"고 전했다.

정 선수는 이어 "무기한 정지를 내려도 여론이 잠잠해지면 다시 복귀시킬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한다"면서 "근절을 하겠다, 대책을 내놓겠다고 하지만 전혀 바뀌는 것이 없다고 봐야한다. 보여주기 식으로 하는 것에 불과하고 당사자로서 느낀 것은 오히려 피해받은 사람에게 피해가 더 왔지 덜 오진 않는다. 어떻게든 메달 하나 따자는 것이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된 황희 장관이 "2021년은 체육계 인권보호의 원년"임을 밝혔고 연임에 성공한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이 "메달과 성과는 폭력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고 했지만 현재의 상황은 이들의 말 역시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것이라는 비관론이 지배하고 있다. 

여전히 성적 지상주의와 엘리트 위주의 체육이 계속되고 있으며 '무기한 출장정지' 등의 징계도 언제든 풀릴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징계이기에 결국 가해자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기 때문이다. '몰랐다'고 발뺌하는 지도자, '가혹하다'라고 하는 체육단체의 입장이 계속 되는 한 최숙현법도 '무용지물'에 그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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