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 대법원의 엇갈린 판결, 기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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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 대법원의 엇갈린 판결, 기준이 없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1.02.2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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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훈련 거부자 '진정성 인정' 첫 무죄 확정
입소 거부자 2명 '진정한 신념으로 보기 어렵다' 유죄 확정
'양심'에 대한 서로 다른 판단, 군인권센터 "성의없는 판단으로 퇴행적 결론"
지난 25일 대법원 앞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법원 선고에 대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뉴시스
지난 25일 대법원 앞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법원 선고에 대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지난 25일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3건에 대해 엇갈린 판결을 내놓았다.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사람에게는 '양심의 진정성'이 인정된다며 무죄를 확정한 반면, 군 입대를 거부한 두 사람에게는 '진정한 신념으로 보기 어렵다'며 유죄를 확정한 것이다.

이날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이홍구)는 예비군법위반죄 등으로 기소된 A씨에게 "진정한 양심에 따른 예비군훈련과 병력동원훈련 거부는 예비군법과 병역법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된다"며 무죄로 인정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A씨는 지난 2016년부터 2년간 16회에 걸쳐 예비군훈련과 병력동원훈련 소집통지를 송달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이에 불응해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과 미군의 헬기총 난사로 민간인이 학살당하는 동영상의 영향으로 '인간에 대한 폭력과 살인'을 거부하게 됐고 어머니와 친지들의 간곡한 설득으로 군 입대를 했지만 회관 관리병으로 군 복무를 했고 이후 신념에 따라 예비군훈련을 거부해왔다.

원심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의 법리가 '양심을 이유로 예비군훈련과 병력동원훈련을 거부한 경우'에 그대로 적용되고 피고인의 경우 진정한 양심에 따라 예비군훈련과 병력동원훈련을 거부했다고 인정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대법원은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법률상 '정당한 사유'에 해당된다"며 원심을 확정했다. 이 판결은 종교적 이유가 아닌, 개인의 신념에 따른 예비군훈련, 병력동원훈련 거부를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정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하지만 대법원 1부(대법관 박정화), 대법원 3부(대법관 민유숙)는 '비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B씨와 C씨에 대해서는 "피고인이 병역거부의 사유로 내세우는 '양심'은 양심적 병역거부에서 말하는 진정한 양심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병역법위반죄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들은 '전쟁을 위해 총을 들 수 없다', '폭력을 확대, 재생산하는 군대라는 조직에 입영할 수 없다'는 개인의 양심에 따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했다. 하지만 원심은 B씨에 대해서는 "피고인의 병역거부가 비폭력, 평화주의보다는 권위주의적 군대문화에 대한 반감 등에 기초하고 있으며 거부의 사유로 내세운 군대 내 인권침해 및 부조리 등은 복무하는 부대 및 시기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어 양심적 병역거부의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우며 병역거부 이전 양심적 병역거부나 반전, 평화 분야에서 활동한 구체적 내용이 아무것도 소명되지 않았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또 C씨의 경우도 원심은 "모든 전쟁이나 물리력 행사에 반대하는 입장이 아니라 목적, 동기,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전쟁이나 물리력의 행사도 정당화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피고인 스스로도 이에 가담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유로 제기하는 군대 내 비리나 후진적 군문화는 그 자체로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으며 특히 과거 집회에 참가해 경찰관을 가방으로 내리쳐 폭행을 해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다"며 역시 유죄를 인정했다. 그리고 대법원은 "피고인이 병역거부의 사유로 내세우고 있는 양심은 양심적 병역거부에서 말하는 진정한 양심, 즉 그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인정한 원심을 수긍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병역거부를 하게 된 '양심'에 대해 서로 다른 판단을 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이 형평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입대를 기피하거나 예비군훈련에 불참하는 경우 처벌을 받도록 법이 제정되어 있지만 그 '정당한 사유'에 '개인의 양심'을 포함시켰음에도 이를 서로 다르게 해석하면서 서로 다른 판결이 나온 것이다.

지난 2018년 대법원은 여호와의증인 신도의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면서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을 밝혔지만 명확한 판단 기준을 세우지 못했다.

군인권센터는 26일 논평에서 "예비군 훈련 거부자의 무죄 선고 확정은 특정 종교인이 아닌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자유를 대법원이 인정하고 봇호했다는 면에서 큰 의미를 갖지만 B,C씨의 선고는 양심의 자유 보호라는 대체복무제도 도입의 취지가 무색한 판결로 병역거부자에 대한 사법부의 시계를 (첫 양심적 병역거부가 인정됐던) 2018년 이전으로 돌리는 퇴행적 결정이다"라고 밝혔다.

군인권센터는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내용은 법원이 판단할 내용이 아니고 다만 각자의 양심이 진실된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평화주의가 아니라 반권위주의이기에 양심이 될 수 없다는 식으로 내용을 문제삼거나 양심과 양심의 구체적 실천에 대한 맥락적이고 입체적인 접근을 하지 않은 채 단편적 상황만을 가지고 판단을 내렸다. 복잡하고도 심오한 인간의 양심에 대해 성의없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퇴행적인 결론을 내린 것"이라면서 "대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이제 이들을 관용하고 포용할 수 있어야한다'는 스스로의 입장을 어겼다"고 주장했다.

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를 시행하는 등 병역거부자를 수용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결국 '양심'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으로 인해 법적으로는 인정을 해도 개인적인 사례 등을 이유로 병역거부자를 범죄자로 규정짓는 이전의 상황이 재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양심의 진정성'을 의심받아야하는 현 체제에서는 아직도 '병역거부' 인정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여 앞으로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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