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칼럼] 공직자들의 탐욕과 ‘이반 일리치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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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칼럼] 공직자들의 탐욕과 ‘이반 일리치의 죽음’
  • 오세라비 작가
  • 승인 2021.03.1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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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직원 투기 의혹이 확인된 경기 과천시 과천지구. 사진=뉴시스
LH 직원 투기 의혹이 확인된 경기 과천시 과천지구.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오세라비 작가] LH 임직원들은 투기 전문가들이었나? 공직자, 공공기관 임직원들의 땅 투기로 인해 공직 사회는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한다. LH 임직원 부동산 투기 파문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 땅 투기 수사가 시작되자  LH 간부 두 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신도시 부동산 투기에 연루된 여당 국회의원들의 이름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25년 간 환경운동에 전력한 경력을 발판으로 21대 국회에 입성한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의 모친 신도시 땅 투기는 냉소만 부른다. “어머니가 인근에 땅을 소유하고 계신 줄은 몰랐다”고 변명하고, 더불어민주당 양향자 최고위원은 “토지는 은퇴 후 전원주택을 짓고 노후대비하려는 차원에서 샀다”고 한다. 국민들은 분노할 기력도 잃었는지 대부분 허탈한 심경이다. 이들에게 도덕적 해이나 국민들에게 봉사할 책임을 묻는 것조차도 무의미할 정도다. 

대다수 국민들은 ‘맹지’가 무엇인지, 지분 쪼개기 등의 방식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이다. 누군들 노후대비 전원주택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없겠는가. 개발호재니 개발정보니 그런 말들은 본인과는 무관한 일로 여기며 살아간다. 

그런데 공직자들이라는 사람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땅 투기에 열을 올렸다. 왜 지난 몇 년간 부동산 가격이 그토록 폭증하고 정부가 25번째 부동산 대책을 내놔도 헛수고였는지 이제야 명확히 드러났다. 

LH 사태가 야기한 공직자들의 철면피한 탐욕은 정말이지 소름이 끼친다. 문득 한 작품이 떠오른다. 레오 톨스토이가 노년에 쓴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년)이다. 평생을 관료로 살다 끔찍한 죽음을 맞는 이반 일리치에 대한 얘기다. 죽음에 관한 최고의 문학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줄거리를 소개한다.

“여러분, 이반 일리치가 죽었군요!” 도입부는 일리치의 죽음을 알리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일리치는 법무부의 높은 직책의 재판관으로 근무하다 마흔다섯 살에 죽었다. 일리치의 부고가 날아들자 동료 관료들은 “남에게 일어난 것뿐, 나는 이렇게 살아있어” 라는 기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런 다음, 일리치의 장례식과 미망인에게 겉치레지만 위로를 해야 할 성가신 절차가 기다리고 있어 슬며시 귀찮은 마음이 들었다.

일리치와 가까이 지냈던 동료들은 그의 죽음에 대한 생각은 재빨리 치워버리고 일리치의 빈자리를 두고 각자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일리치의 자리에 누가 앉지? 그렇다면 후임의 자리에는 누가 갈까?” 동료들의 머릿속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일리치의 죽음은 그들에겐 승진의 기회요, 수당과 봉급 인상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생전 일리치와 가장 가까운 사이였던 표도르는 자신의 처남을 그 자리에 앉힐 생각을 하며 일리치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일리치의 인생이야기가 이때부터 펼쳐진다.

공직자로서 이반 일리치의 인생은 너무나 단순하고 평범했으나 그의 죽음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는 전형적인 관료주의 인간형이다. 일리치는 소도시 검찰관으로 근무하며 주어진 일만 하고 판결을 내리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처음에는 소도시 검찰관으로 생활비가 빠듯하였다. 자연히 아내의 잔소리는 그를 괴롭혔다.

고대하던 재판장 자리에서 탈락하자 그는 페테르스부르크로 이사했는데, 이때부터 행운이 따라 법무부에서 승진을 거듭하였다. 안분지족에 무사안일 관료주의자지만 그의 삶은 만사 순조로웠다. 자녀가 셋이 되자, 아내의 성화로 새 집을 사고 집을 꾸미는데 가구며 그림이며 사들여 호화롭게 장식하면서 돈을 아낌없이 썼다.

아내와 딸은 무도회를 열고 상류층 명사와 사귀기 시작했다. 그 무렵 일리치에게 병이 생겼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병은 점점 깊어갔다. 그가 병을 앓는 동안 아내와 딸은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외출이 잦았다. 일리치의 옆에는 오직 늙은 하인 한 사람만 남아 간병을 하였다. 일리치는 자기가 왜 죽어야 하는 지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했다. 평생 심각하게 죽음을 생각해 본 적도 없이 관료로서 또 재판관으로 있으며 타인에 대한 판결만 땅땅 내렸던 그였다.

일리치의 죽음은 처참했다. 죽기 전 사흘 동안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러댔다. 그가 위독한 상태가 되어도 가족들은 제각각 상류층 행세를 하며 집에 있지도 않았다. 일리치는 무심한 가족을 원망하며 죽지 않으려고 사흘이나 발버둥을 치다 임종 직전에야 죽음을 받아들였다. 고통을 멈추려면 죽음 밖에 없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톨스토이 후기 작품 중 걸작에 속한다. 짧은 단편 작품에 삶과 죽음, 도덕과 비도덕, 위선과 탐욕이 담겨있다. 평생을 관료로 살아왔으나 죽음 앞에는 한갓 비참하고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우리 국민들은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 사태를 보며 망연자실한 심경이다. “어쩌다 이지경이 됐나.” 혀를 찬다. LH 직원들의 땅 투기를 조사한다며 국무총리실 산하 정부 합동조사단에서 나섰다. 하지만 셀프조사에 가까운 발표는 불신만 증폭시키고 있다. 전국을 땅 투기판으로 만든 공직자들의 탐욕은 가뜩이나 코로나19로 국민들은 두 해째 우울한 봄을 맞고 있다. SW

murphy8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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