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애꿎은 명태만 “짜악~ 짝” 찢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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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애꿎은 명태만 “짜악~ 짝” 찢나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21.03.18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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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술이 거나하게 취한 다음 날 아침, 안방마님이 해장국이라며 가져다주는데 가만 보니 명태국이다. 아아! 이 얼마나 시원한 국물인가? 카타르시스다! 거기에 명태의 야들야들한 살에서 나오는 메티오닌이니 시스테인이니 하는 화합물 등이 간 기능에 좋다고 하니 누가 빼앗아 먹을까봐 뒤돌아보지도 않고 단숨에 싸악 비워버린다.

그러나 마님께서 “간도 안 좋으면서 자꾸 술 마시고 다니면 어떻게 하냐”며 눈을 외로 꼰다. 어흠 흠…. 할 말이 별로 없어 간교한 정치인들처럼 국가와 민족을 내세운다.

“코로나로 어려운데 나라도 술을 마셔줘야 경제가 술술 하면서 돌아가지. 술 먹으면 술집 장사가 잘되지 명태 잘 팔리지, 또 간장 보호제라도 먹어야 하니 제약사도 신나지, 이러면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 이른바 경제학자들이 이야기 하는 선순환구조를 이루게 돼 경제성장률이 올라가지 않느냐 이 말이여!”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에 마님은 결정타를 날린다.

“아 맨날 술 먹고 다니면 우리 가정 경제가 먼저 파투 나는데 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여. 명태는 그래도 이름이나마 천세만세 만만세 남기기라도 하지….”

아뿔사! 그러고 보니 비록 ‘짜악~ 짝’ 능지처참 당해 고춧가루를 듬뿍 덮어쓰고 누워있을지언정 그 순간만큼은 명태의 삶이 불멸로 다가왔다.

양병문의 ≪명태≫란 시를 한 번 보자. 노래는 개인적으로 오현명 것이 좋다.

검푸른 바다 바닷밑에서

줄지어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 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고 춤추고 밀려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던 원산(元山)구경이나 한 후

이집트의 왕(王)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소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고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쨔악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은 남아 있으리라.

'명태'라고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시 ≪명태≫는 인간 삶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그것은 동해 바다 어디 차디찬 물 속에서 유유자적 행복한 삶을 영위하다가 재수 옴 붙어서 인간의 술 안주거리로 전락한 슬픈 생물의 ‘짜악~짝 찢어’진 삶을 4연 16행의 의인과 활유로 절규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부조리한 삶을 사는 인간에게 “너희들도 나처럼 몸은 없어질지라도 최소한 이름만은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고 일갈하고 있다.

사람이 죽기 전에 어떻게 이 세상에 자기 이름을 남겨야 하는지 ‘명태’가 돈오(頓悟)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남의 흠집이나 잡고 과거를 탓하며, 별 잘못도 아닌 것을 들춰내 괴롭히며, 자신의 잘못은 모두 선으로 뒤집고 타인의 선의는 악으로 되받아치며 살아가는 자들에게 던지는 일종의 경고로 보인다.

마틴 루터 킹은 인권, 조지 워싱턴은 자유민주주의, 마오저뚱은 문화대혁명을 통한 대량학살, 아르헨티나의 에바페론과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는 포퓰리즘으로 나라를 박살내면서 불멸의 반열에 섰다. 우리는 무엇을 통해 이름을 남길 것인가? 방탄소년단처럼 노래로? 아니면 ‘짜악~짝 찢어’진 명태로? 아니면, 문재인 정부처럼 일만 터지면 맨 날 남 탓하는 재미로? 그도 아니면 박영선 처럼 생태탕 집을 선거판 놀이터로 만드는 재미로?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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